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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21. 2020

계절 무상, 단오(端午) 날에

그림: 혜원 신윤복의 < 단오 풍경>

날씨가 쾌청하다. 중부지방을 지나 북상했던 저기압 전선이 다시 남하하는지 어제 하루 무덥던 날씨가 서늘해졌다. 오후나 저녁 즈음엔 비가 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하행선을 질주하던 고속버스가 선산휴게소에 정차했다. 서대구로 가는 연계버스는 제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오질 않는다. 문상 길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휴게소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원 저수지, 그 너머로 보이는 산 어드메에 15대조 송촌공 할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다. 오가며 들르는 휴게소 먼발치에서 쳐다만 볼 일이 아니요 시간을 내서 한 번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세월도 뭐가 그리 급한지 참 빠르게 어디론가 흘러간다. 나이가 들면서 책임의 무게는 날로 더해지는데 속절없이 가는 세월만 탓하고 있을 순 없는 일이지 싶다.

가끔 가왕 조용필의 노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가사처럼 우린 무얼 찾아 떠돌고 잃고 버리며 방황하는지, 그래서 우리 앞에 남아있는 것은 또 무엇인지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친구 안부 메시지에 잊고 있던 계절을 헤아려 보다.


지난 금요일 시골 친구 모친 문상하러 내려가는 길, 북상 중이던 태풍급 저기압이 전날 저녁부터 뿌리기 시작한 비는 그치지 않고 부슬부슬 내리고, 한적한 금오산 기슭에서는 속절없이 뻐꾸기가 소리만 들려왔었다.

마침 그날은 음력 오월 오일, 중국인 친구 닝이 보낸 단오절 축하 메시지를 보고서야 '오늘이 단오절이구나'하고 새삼 계절이 어디쯤인지 가늠하게 되었다. 중국 단오절 음식 '쫑쯔(粽子)'가 생각났다. 찹쌀에 대추, 등을 섞어 대나무 잎에 싼 후 쪄내음식이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전통음식 중 하나인 쫑쯔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합종연횡(合縱連横)의 외교가 횡행하던 전국시대 초나라의 비운의 정치가이자 시인, 굴원은 기원전 278년 5월 5일 멱라강에 투신하여 무능한 군주 아래에서의 굴욕적인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어부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대나무 광주리의 쌀을 물속에 뿌렸다. 그 후 단옷날마다 찹쌀과 말린 대추 등을 댓잎에 싸서 찐 음식 즉 쫑쯔(粽子)를 강물에 던져 물고기들이 그의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풍속에서 유래된 쫑쯔는 단옷날 중국의 대표적 음식이 되었다.


쫑쯔(粽子), 북경세관 구내식당

2004년 음력 5월 5일 북경 해관 5층 구내식당, 점심 식단에 쫑쯔가 딸려 나왔다. 중국인 동료들이 '강릉단오제 유네스코 구전 무형문화유산 등록 추진' 뉴스를 언급했다. 단오는 중국 전통 절기가 아니냐며 항변 조의 질문을 던지던 기억과 인민일보 등 다수의 현지 언론들이 '문화적 약탈'이라는 논조의 논설을 실었다는 얘기도 떠오른다.

단오는 설날, 한식, 한가위와 더불어 우리 민족 4대 명절의 하나다. 지방에 따라 쇠코 뚫는 날, 소 시집가는 날, 며느리 날, 과부 시집가는 날 등으로도 불렸고, 씨름, 그네뛰기, 창포물에 머리 감기, 부채 선물하기 등은 우리의 오랜 단옷날 풍속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공통의 습속이나 전통도 있기 마련인데 '문화적 약탈'이라는 중국 언론의 논조가 억지스럽다. 단오가 유형의 문화재라면 모를 일이지만.

문상을 마치고 서대구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몇몇 고속버스가 정차하는 이 간이 터미널 매표창구 위 벽면에 걸린 시간표는 동대구터미널 출발 기준이다. 통상 동대구에서 출발한 버스는 15~20여 분이면 이곳에 도착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30분이 훌쩍 넘어서 도착했다.

"고속도로 진입로는 알지요?"
"예~"

터미널 매표원 아저씨와 운전기사가 주고받는 대화다. 기사분이 여성인데 이 노선은 초행이란다. 가야 할 길은 3시간 반이 소요되는 어두운 밤길 278.3km다. 출발에 앞서 기사님이 승객 인원을 체크하고 나서 "미안합니다"하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자신이 잡은 운전대에 서툴거나 자진의 조직을 어디로 끌고 가야 할지도 모른 채 키를 잡는 CEO도 허다하다. 익숙지 않아 조금은 느리지만 기사분의 겸손과 진지함이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리게 한다. 처음은 떨리고 조금 미숙하기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테니까.

기사님의 장거리 초행 운행이 여성 특유의 장점을 살려 섬세하고 안전한 여정이 되길 바랄 뿐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훌쩍 자정이 지났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악보 속 노랫말엔 물음표가 없다. 타인에게 던지는 물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던지고 스스로 찾아야 하는 물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L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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