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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an 17. 2021

팔당과 예봉산

주말 아침이다. 평일과 달리 몸은 단박에 잠자리에서 떨쳐 일어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 어제저녁에 맞춰 둔 알람이 울릴 시각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그저께 저녁에 얹힌 쳇기가 내려가지 않아 아직도 명치 부근이 꽉 막힌 듯 답답한 몸 상태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삶은 매 순간이 결단이요 미거적거리며 결단을 늦출수록 삶에 뒤쳐지기 마련이다. 배낭을 챙겨서 팔당으로 향했다. 팔당대교를 건너 팔당역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30여 분이니 충분했다.

예봉산이 팔당 역사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오봉 일월도를 보는 듯 인상적이다. 예정된 시각 전철이 역사에 내려놓은 승객은 예전과 달리 스무여 명 남짓이다. 코로나 19가 기세를 올리다가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높은 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먼저 도착한 M과 역사를 빠져나오는 H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울 근교에 산, 강, 호수, 고찰 등을 고루 갖춘 산이 얼마나 될까? 예봉산은 팔당호를 내려다보면서 예빈산, 견우직녀봉, 적갑산, 운길사 등 서로 이웃한 산을 능선을 따라 걷는 산행의 묘미를 알려준 고마운 존재다.

통상 팔당 2리 마을 뒤쪽을 들머리 삼는 예봉산-철문봉-적갑산-운길산-수종사 코스 대신에 오늘은 팔당대교 북단 쪽 줄기에서 시작하는 철문봉-예봉산-율리봉-직녀봉-견우봉-승원봉-팔당댐 코스를 잡았다.


차고 신선한 아침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쉬며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게으른 겨울 태양이 한강 쪽으로 내리 닿는 예빈산 줄기 위로 부스스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성긴 노송 숲을 지나고 고도가 높아지며 드르럭 대는 굴착기 소리, 기차 바퀴 구르는 소리, 차량 웅웅 대는 소리 등은 점점 멀어져 가고 팔당대교와 좁은 댐에 갇혔다가 해방된 한강의 넓은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봉산 1km여 앞둔 능선은 좌측으로 가파른 절벽과 함께 툭 트인 드넓은 조망을 선사한다. 가파른 검단산 기슭이 한강 줄기를 따라 경계를 긋고 있다. 강 건너 저 어디쯤에 백제 개루왕의 짓궂은 시험을 물리치고 정절을 지킨 도미부인과 두 눈을 잃은 도미의 이야기를 전하는 도미나루가 있을 것이다.

산행 중 밀려드는 고통과 무료함을 달래는데 이러저러 잡담만큼 좋은 것이 없다.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연예, 문학 등 주제에 제약이 없고 개똥철학일망정 비난받을 우려 없이 마음껏 펼칠 수도 있다. 얘기가 1993년 K대학 산행팀의 설악산 공룡능선 조난사고로 이어졌다. 일상의 삶에서 처럼 산행 중에도 실족 부상 조난 등 불의의 사고와 맞닥뜨리는 일을 드물지 않게 접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편이라는 병법의 금언은 산행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해발 630m 철문봉(喆文峰)으로 올라서니 주변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마다 잎사귀 대신 온통 상고대를 피워 놓았다.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삼 형제가 조안면 마재의 여유당 본가에서 이곳까지 올라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안내문 설명이다.

바람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던 안개가 밤새 차가워진 공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곧바로 얼어붙는 승화(desublimation) 현상을 통해 저리 환상적인 모습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예봉산 쪽 능선을 따라 걸으며 친구들과 함께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연신 스마트폰 셔트를 눌렀다.

상고대 터널을 지나고 철문봉과 예봉산을 잇는 능선 안부의 억새밭을 지나 돔형 지붕이 인상적인 기상관측소가 자리한 해발 683m 예봉산 정상에 올라섰다. 관측소 뒤로 기세가 오른 태양이 강한 햇빛을 내리치고 있다. 뒤쪽 서편은 너른 나무데크 난간 너머로 백옥같이 흰 상고대를 이고 있는 숲과 그 너머로 황갈색 낙엽과 짙푸른 소나무 숲이 또렷한 경계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저번 홍천의 공작산 정상부에서 만났던 녀석과 같은 모습의 새 두세 마리가 주위를 맴돈다. 딱새인지 박새인지 아니면 곤줄박이인지 알 수가 없으니 우리 주변의 흔한 텃새에 대한 무관심을 스스로 탓해 본다. M에게 얼른 견과를 꺼내어 손 위에 올려놓으라 주문했다. 주린 배 때문에 두려움을 내려놓은 듯 연신 번갈아 가며 손바닥 위를 오가는 녀석들이 안쓰럽다.


예봉산 정상을 뒤로하고 율리봉을 거쳐 팔당역으로 내려가는 안부의 갈림길에서 700여 미터 철쭉 군락지를 치고 올라 예빈산 직녀봉 정상에 올라섰다. 액자 프레임을 닮은 구조물 속으로 쏙 들어오는 한강과 팔당호를 배경 삼아 젊은 산객들의 사진을 담아 주고 우리도 사진 속에 추억 한 장을 남겼다.

직녀봉은 그 옆에 나란히 솟아 있는 견우봉과 함께 예빈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음력 7월 7일 칠석날이 되면 세상의 모든 까마귀가 모였고, 새들은 높이 올라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잔돌을 쌓아 만든 돌탑과 함께 견우봉에 서 있는 안내판이 견우와 직녀의 얘기를 들려준다.

중국 후한(25~220년) 말경에 견우와 직녀 두 별을 인격화한 설화가 꾸며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강서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408년)에 은하수 사이에 견우와 직녀가 등장한다고 한다. 설화 속 인물을 산봉우리 이름으로 붙인 상상과 재치가 남달라 보인다. 한편으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으로 시작되는 헌법 전문(前文)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긴 역사만큼이나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풍부한 전설, 설화,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북한 남포시 덕흥리 고분의 견우직녀도와 팔당댐

견우봉 아래 바람이 없는 아늑한 곳에 바스락대는 낙엽을 치우고 앉아 따뜻한 물에 누룽지를 불리고 떡, 곶감, 바나나, 귤, 빵 등을 배낭에서 꺼내 출출해하는 배를 달랬다. 고도를 낮춰가던 능선이 마지막으로 해발 474m 승원봉을 내놓으며 팔당호 쪽으로 가파르게 내리 닿는다. 능선 좌측의 더없이 아늑해 보이는 성당 공원묘원 위쪽 가장자리를 지나면 그 오른편으로 절벽처럼 뚝 끈긴 능선 아래로 팔당댐이 한눈에 굽어 보인다.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이 하나로 만나는 곳 바로 아래, 팔당댐이 예봉산-예빈산-견우직녀봉-승원봉 긴 능선이 내려앉는 조안면 쪽과 검단산 줄기 하나가 내려앉는 하남 쪽 한강의 남북단을 가로막으며 드넓은 팔당호를 펼쳐 놓았다. 팔당호 수면은 깊고 푸른 밤하늘의 은하수 마냥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1973년 완공된 팔당댐은 높이 29m, 제방길이 510m, 총저수량 2억 4,400만 톤, 연간 발전량 2억 5,600kw의 한강 본류 유일의 다목적 댐이라고 한다. 팔당호는 유역 면적 23,800㎢, 수몰 면적 17.1㎢의 거대한 인공 호수로 서울, 인천, 경기 일원에 하루 260만 톤의 식수를 공급한다고 한다.

팔당(八堂)이라는 이름은 호수 둘레에 당집이 여덟 군데 있어서 붙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팔당댐 북단과 남단 쪽에 각각 성당과 사찰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경이롭도록 황홀한 풍경을 마주하니 신령스러운 힘을 빌어 뭇 중생들의 행운을 점치고 화를 미리  경계하는 무인(巫人)들의 당집이 몰려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폄하하는 듯한 어감의 '점쟁이'라는 우리말에 비해 행운을 불러올 듯한 '포츈 텔러(fortune-teller)'가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팔당댐 북단 다산로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팔당댐 정류소에서 한참을 기다려서 버스에 올라 한강변 도로를 따라 팔당역으로 향했다. 차창으로 햇빛이 들이쳐 눈이 부시다. 차창 밖 한강은 햇살에 반짝이며 흐름을 읽을 수 없이 느리지만 쉬지 않고 찬찬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흐르는 시간의 물결을 따라 찬찬히 쉬지 않고 유영해야 할 것이다. 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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