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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Mar 15. 2021

강남 고진(江南古鎭) 봄봄

난샹꾸쩐(南翔古镇)

드디어 두 주일 간의 격리가 끝났다. 내부순환로 바깥의 격리지에서 임시로 거주할 사무실 부근 호텔로 이동하면서 빽빽한 빌딩 숲과 마천루, 입체적인 차도, 도로를 가득 메운 각양각색 온갖 국적 브랜드의 차량 등에서 새삼 거대 도시 상하이를 실감하게 된다.

격리 해제 후 자유로운 첫 주말, 날씨마저 더없이 화창한 날을 어떻게 보낼지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다. 개통한 중국 현지 휴대폰으로 지도 앱을 들여다보다가 멀지 않은 곳 난샹꾸쩐(南翔古镇)에 마음이 끌렸다.

아침을 거른 대신에 점심을 일찍 넉넉히 든 후에 택시로 상해 중심부에서 서쪽 외곽에 떨어져 있는 그곳으로 향했다. 얽히고 설힌 도로와 도로변 끊임없이 늘어선 빌딩 숲이 가슴을 짓눌러 숨이 막힐 듯하다.

짧은 중국어로 젊은 기사 양반과 열심히 이러저러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중 '중국이 사회주의 나라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본주의 국가'라고 했다가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고 고쳐 대답한다.

길거리 빌딩 벽에 붙어 있던 '新时代中国特色社会主义'라는 시진핑 주석이 강조했다던 모토가 떠올랐다. 천진市는 금년부터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과정을 개설키로 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있었다. 거스름돈을 내미는 손을 물리치자 미소를 보이는 기사를 뒤로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난샹(南翔)은 남조 양나라(南朝 梁) 때인 505년에 세운 백학(白鹤) 전설을 간직한 사찰 난샹쓰(南翔寺)에서 따온 이름으로 상하이 4대 고전 마을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작은 난샹이 소주와 겨룬다(小小南翔赛苏城)"라는 찬사를 받으며 4A급 명승지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중국 국가여유국(国家旅游局)이 2007년부터 문화적 역사적 예술적 가치와 여행자의 접근성 편의성 등을 평가하여 A~5A 다섯 등급의 국가 A급 관광구(国家A级旅游景区)를 지정하는데, 이곳은 최고 등급 바로 아래 등급인 셈이다.

난샹에는 오대(五代) 시기 운상사(云翔寺), 북송 때의 쌍탑(双塔), 명나라 때의 단원(檀园)과 고아원(古猗园) 등의 고적이 남아 있다.


먼저 양나라 때인 505년 백학 남상사(白鹤 南翔寺)라는 이름으로 개창된 운상사(云翔寺)로 발길을 옮겼다. 당나라 때 전성기를 구가했고 남송 때 운상사라 개칭했으며 청 강희제가 사액했던 이 절은 그 후 천재 인화로 훼손되었던 것을 철근 콘크리트 등을 사용해서 전형적인 당나라풍의 사찰로 재건했다고 한다.

관음전, 대웅보전, 가람전, 종루와 고루, 문수전, 보현전 등 우리나라 사찰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의 전각들과 불상들, 길고 굵은 향을 사르며 두 손 모아 깊이 허리를 굽혀 기원하는 사람들 모습은 여느 중국 사찰들과 다를 바가 없다.

오른손에 청룡언월도를 들고 왼쪽 손으로 긴 수염을 쓸어내리는 모습이 관우를 연상케 하는 가람(伽藍)을 모신 가람전이 입구를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관음전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생소하고 특이했다. 가람은 가람 땅의 수호신이자 불법의 수호자라고 하니 중국인에게 용맹 충절의 표상이자 재신(财神)으로 추앙받는 관우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웅보전 지하에 조성된 거대한 규모의 봉안당인 만불당(万佛堂) 또한 특이한 점이다.

문수전 뒤 연못을 유유히 노니는 잉어 떼와 먹이를 던져주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물속과 밖이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처럼 보인다. 산문에서 한 발을 내딛으면 이내 저잣거리다.

지척에 있는 쌍탑은 두 탑 모두 촘촘히 엮은 비계 위에 가림막을 덮어쓰고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남상사 경내 양쪽에 서있던 쌍탑은 전형적인 당송 시대 목조 건축양식의 8각 7층의 높이 11미터 전탑으로 남상 팔경 중 제1경 “双塔晴霞”로 알려져 있다. 현존 탑은 옛 탑 모습을 1982년부터 복원한 것이라 한다. 쌍탑 앞 유리 덮개 아래 각각 하나씩 자리한 고대 우물 유적 옆을 연신 관광객들이 스쳐 지난다.

수로와 나란히 난 좁고 긴 골목은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인파로 북적이고 길 양쪽으로는 상점과 식당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샤오롱 빠오(小笼包)를 파는 식당도 간간이 눈에 띈다. 샤오롱빠오는 장쑤성 창쩌우(江苏省 常州)에서 청 선종 때(1821-1850)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일설에는 그 기원이 북송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한다.

장강 이남 강남지역의 전통음식인 샤오롱빠오는 창저우는 신선한 맛, 우시는 단맛, 쑤저우는 아름다운 맛 등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고 한다. 청 목종(同治, 1862-1874) 때 유래되었다는 이곳 상하이 난샹 샤오롱빠오도 국내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인파로 넘치는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단원(檀园)으로 들어서니 인적이 적고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진다. 명나라 문인 이유방(李流芳,1575-1629)의 개인 정원인 단원은 연못 정자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강남 정원의 멋들어진 아름다움을 뽐낸다.

중국 양쯔강 이남 장쑤  안후이 저장 성 등을 이르는 강남(江南) 지역은 당나라 말 이후 남송 때를 거치면서 농업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수운의 개통 등으로 점차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황금빛 주홍빛 등 화려한 비늘의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 회랑과 정자를 장식한 싯귀 글씨 그림 등을 둘러보니 정원을 짓고 시를 외우고 그림을 그리며 친구와 지인과 어우러져 세워을 낚던 강남 부유한 귀족들 생활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난샹 마을에서 긴 수로 옆길을 따라 1km 남짓 거리 고아원(古猗园)으로 향했다. 고아원은 명 가정제(嘉靖帝, 1522-1566년) 때 조성된 원림으로 아름답고 푸른 대나무로 인해 붙은 이름이라 한다. 정자, 누대, 누각, 긴 회랑, 연못, 대나무를 비롯한 각종 수목이 어우러진 녹지, 회랑 한편에서 켜는 노부의 이현금(二胡)과 정자에서 울리는 죽적(竹笛) 소리 등이 한껏 우아하고 고상한 정취를 자아낸다.

귀산(龜山)이라 쓰인 표지석이 있어 5~6미터 높이 둔턱 위 정자에 오르니 전면에 '수(壽)'라고 새긴 커다란 비석이 돌거북을 기단 삼아 자리하고 있다. 거북목에 올라앉은 어린 손자를 지켜보는 할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한 곳에 뿌리를 모으고 배추 포기처럼 무성한 줄기를 하늘 높이 뻗은 푸른 대나무, 화사한 연분홍 매화, 농염한 자태의 자목련 등 초목들, 연못 속의 물고기, 상춘객들이 함께 유유자적 강남의 정취를 만끽하는 무르익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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