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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Mar 22. 2021

프랑스 조계지와 임정 청사

상하이에 도착하여 코로나 19 방역 격리로 2주를 허비한 후 첫 일주일간 출근을 하고 맞이하는 첫 주말이다. 점심을 들고 숙소를 나서 처음으로 유료 공용 자전거(共享单车)를 타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10호선 교통대학 역에서 내려 우캉루(武康路)를 따라 옛 프랑스 조계 지역을 둘러보며 신천지역 부근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곳까지 걸어볼 요량이다.

상해국제무역센터 빌딩 앞에서 길을 건너 신홍교중심화원(新虹桥中心花园)을 가로질러 공원 정문으로 나오니 이리루 전철역 4번 출구가 기다린다. 승차 앱은 여전히 불통이라 일반 교통카드 대신 기념으로 간직할 겸 카드값 20원이 포함된 여행자용 교통카드 50원짜리를 뽑았다.

화샨루(华山路)와 화이하이쫑루(淮海中路)가 교차하는 교통대학 역에서 내려 7번 출구로 나왔다. 우캉루 쪽 옛 조계 지역으로 향하는 길은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일반적인 상하이 시내 모습과는 달리 낮은 주택들이 몰려 있어 갑자기 시간을 거슬러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전철역 근처 길 옆에 컨테이너 박스처럼 보이는 목조 단층의 부동산 사무실(地産) 두 곳이 눈에 띄어서 차례로 들러 보았다. 주말이라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걷기로 했고, 또 주변 옛 주택들의 임차료 수준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중개인이 거실 하나 방 둘인 80m² 전후 주택의 월 임차료가 1500위엔 내외라고 친절히 설명해 준다. 2200위엔 수준인 비슷한 면적의 사무실 부근 고층 아파트보다 많이 저렴한 편이다. 부동산 사무실을 나서니 비가 가늘게 흩날린다.


전철역에서 300여 미터 거리 화이하이루와 우캉루(武康路)가 교차하는 곳 모퉁이에 우캉 빌딩(武康大楼)이 불쑥 모습을 나타낸다. 1920년대  유입 인구 증가로 조계지가 확장됨에 따라 1924년에 건립된 8층 30여 미터 높이 건물로 당시 상해 제일의 베란다식 공동 주택이었다고 한다. 일층에 서점 아이스크림 가게, 서점 등이 있는 이 건물은 프랑스 옛 조계지 투어의 기점을 알리는 랜드마크나 다름없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 긴 줄은 좀체 줄어들 을 모른다.

화이하이중루 1843번지 쑹칭링(宋庆龄, 1892-1981) 고거(古居)에 20위엔 입장료를 내고 들어섰다. 기념관 앞에서 팔걸이의자에 앉은 온화한 얼굴의 그녀 동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기념관은 격랑의 한 세기를 꼿꼿이 살다 간 그녀 일생의 흔적과 역사에 남긴 굵직한 족적들을 세세히 상기시켜 준다.

삼민주의(民族 民權 民生)를 제창한 반청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손문(1866-1925)의 부인으로 정치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그녀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부주석을 지내기도 했다. 중국 국민당으로부터 국부(國父)로 불리는 손문과 함께 국모(國母)로 추앙되고 있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위대한 애국주의, 민주주의, 국제주의, 공산주의 전사'로 칭송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 선박업자가 1920년대에 지었다는 4800m² 규모의 이 가옥은 그녀가 1949년 봄부터 별세할 까지 거주한 곳으로,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2층 가옥과 수령이 오랜 나무들이 둘러선 정원,  홍치 등 2대의 자동차가 주차된 차고 등 그녀 삶 일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캉 빌딩 쪽으로 돌아와서 타이안루(太安路)를 거쳐 우캉루(武康路)로 가는 길, 구멍가게처럼 작은 '배화(盃华)'라는 도자기 상점에 앙증맞고 예쁜 도자기들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아담한 체구에 곱상한 전형적인 강남 여인 모습의 젊은 여주인이 엷은 미소를 머금고 맞이한다. 도자기로 유명한 경덕진 가마에서 도공 남편(老公)이 만든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문외한의 눈으로도 꽃 물고기 동물 산수 등 도자기 속 그림들에 담겨있는 정성과 예술성을 읽어낼 수 있다. 매화가 그려진 작은 찻잔은 1500위엔이라고 한다.

거리 양쪽으로 각기 독특한 외양의 1~3층 높이 아담하고 우아한 옛 건물들이 줄지어 섰고, 거리 쪽으로 창문처럼 난 바(bar)에서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들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서 있다. 우캉로에서 푸씽중루(复兴中路)를 만나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바꾸어 걸음을 옮긴다.

중간중간 여러 유명인사들의 고거(故居)들이 눈에 띈다. 혁명가이자 소설가인 빠진(巴金, 1904-2005)의 우캉루 고거는 대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볼 수 없다. 푸씽루로 들어서니 극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커링(柯灵, 1909-2000)의 고거가 열려 있어 둘러보았다.

'티츈(提纯) 예술전'이라는 제하 젊은 남녀 작가들의 작품전이 열리는 쉬후이(徐汇) 미술관에 들어섰다. 짙고 화사한 터치로 질박하게 담아낸 당나라 풍 여인들의 기마도 시리즈,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한 말(馬) 연작 등이 1, 2층 벽에 전시되어 있고, 관람객은 조계 지역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대다수다.


비도 마음 가는 대로 그쳤다가 가늘게 흩날렸다 한다. 기린 하마 순록 조각상이 서있는 교향악단 건물, 1924년 미국인이 지은 건물로 지금은 서점 카페 소품점 등이 들어서 있는 헤이써 아파트(黑石公寓) 등을 둘러봤다.

펀양루(汾阳路)를 건너고 샹양루(襄阳路) 건널목을 지나 푸씽중루(复兴中路) 1251호 식당에 들러 샤오롱 빠오 한 접시(5개 8위엔), 그리고 다시 한 접시시켰다. 입속에서 터지는 특유의 담박하고 뜨거운 즙, 한 번 먹어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맛을 미각이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때때로 어떤 장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경험한 잊을 수 없는 음식 맛 때문인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시각 미각 후각 청각 촉각 등 사람의 감각은 어떤 대상에 대해 호불호의 감정이나 관념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아샨루(嘉善路)를 건너니 상하이 이공대학 정문이 나온다. 정문 입구에 비닐봉지에 싸인 배달 음식 꾸러미가 수북이 놓여 있고, 학생들은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주문해 놓은 음식 꾸러미를 찾아서 집어 들고 정문으로 들어선다.

샨시난루(陕西南路)를 건너고 상해 문화광장을 지나고, 마오밍난루(茂名南路), 루이진알루(瑞金二路), 쓰난루(思南路), 충칭난루(重庆南路), 단수이루(淡水路)를 차례로 건너며 이어지던 부흥중로는 마땅루(马当路)와 교차하며 신천지역에 닿는다. 신천지 전철역은 이름대로 외관과 내부 모두  독특한 디자인으로 매력을 발산한다.

오늘 최종 목적지 마땅루(马当路) 302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旧址)는 신천지역 6번 출구에서 지척인 150여 미터 거리에 있다. 거리엔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쇼윈도 불빛이 밝은 옷가게 시계점 커피가게 등이 늘어선 2층 건물들 사이에 굳게 문이 닫힌 채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있는 302호, 동판 표지가 임시청사임을 알려준다.

독립투사들이 저 작고 초라해 보이는 건물에 깃들어 독립의 웅지를 품고 불굴의 투쟁을 이어갔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옛 청사 앞 좁은 인도는 행인들이 바삐 걸음을 옮길 뿐 누구 하나 관심 두는 이 없다. 왕복 2차선 좁은 길 건너에서 온전한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전철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공용 자전거, 전철 승차카드, 공원, 현지 부동산, 서점, 명사들의 구거, 미술관, 샤오롱 빠오 식당, 길거리 커피, 골목 야시장, 옛 조계지 주택들과 현대식 건물들 등 다양한 모습을 둘러보고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상하이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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