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이다. 상하이 민항구 칭니엔루(青年路)에 위치한 치빠오 옛 거리(七寶老街)로 향했다. 전철 10호선 이리루역에서 항쭝루(航中路) 역까지 가서 자전거로 1.5km를 달리면 닿을 수 있다. 전철 9호선을 이용하여 치빠오역에서 내리면 지척이지만 환승을 하고 둘러가야 해서 번거롭다.
이제 전철과 유료 공용 자전거 타기는 익숙해졌다. 상하이와 그 인근 지역은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는 평평한 지형이라 자전거 타기가 전혀 힘들지가 않다.
치빠오는 한나라 때 형성되어 송나라 초기 발전하고 명청 시대에 번영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동서로 뻗은 칭니엔루에 접한 옛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좁은 폭의 푸후이탕(蒲汇塘) 강 위로 아치형 돌다리 세 개가 놓여 있다. 그중 규모가 가장 큰 가운데 놓인 탕치아오(塘橋) 남북으로 좁고 긴 거리를 따라 남쪽은 먹거리 북쪽은 공예품 골동품 서화 등을 파는 상점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張小泉'이란 눈에 익은 이름을 내 건 가게에 들어가서 크고 작은 다양한 용도의 칼 가위 집게 등을 구경하고, '탄무쟝(譚木匠)' 간판이 걸린 가게에서 물고기 뼈 형상의 머리빗 하나를 골랐다. 먹거리 골목에서는 취두부(臭豆腐) 맛이 궁금해서 일부러 긴 줄이 늘어선 가게를 골라 줄을 서보았다. 색다르고 귀중한 경험을 위해서는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해야만 한다.
안내소 부근에는 '친한후통궈쉐(秦漢胡同國學)'라는 현판이 붙은 3층 건물이 있어 발을 들여 보았다. 예전에 북경에서 보았던 마당을 가운데 두고 폐쇄된 ㅁ자형 전통 가옥인 후통(胡同)을 닮았는데 규모가 큰 점이 달랐다. 현판의 글귀대로 후통 형식을 띤 교육용 가옥이 아닐까 생각된다.
도서열람실과 칸칸 구분된 방에서 국문 교실 꾸쟁 등 악기교실 서예교실 등에서 어린 학생들이 책을 읽거나 교습을 받고 있고, 부모들은 방 밖 복도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말로만 듣던 상하이 학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이 살짝 엿보인다.
칠보 노가에 접한 마을 골목에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정육점 생선가게 채소가게 이발소 과일가게 곡물가게 등이 길 양쪽으로 줄지어 있다. 정육점 처마에 猪두껍, 오리, 닭 등을 매달아 진열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생선가게 주인장은 인파로 북적이는 칠보 노가 상가와는 달리 찾는 손님이 없어 탁자에 얼굴을 묻고 잠에 빠져 있고, 소흥주를 파는 상점도 찾는 이가 없어 진한 술 내음만 풍길뿐 주인 내외 얼굴엔 무료함이 깃들어 있다.
다리를 건너 옛 마을 동편에 있는 칠보교사(七寶敎寺)로 향했다. 칠보교사의 역사는 오대십국 시기에 루빠오위엔(陸寶院)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송나라 때 이곳으로 이건 했고 2002년에 중건했으며, 불당 건물은 한당(漢唐) 시대 건축 양식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찰과 다를 바 없이 천왕문 대웅보전 관음전 지장전 등이 자리하고, 이에 더하여 구릿빛 얼굴 긴 수염에 청룡언월도를 꼬나쥔 관우를 닮은 신을 모신 재신전(財神殿)과 비래불전(飛來佛殿) 등도 자리한다. 사찰 안에 모란 정원, 연꽃 연못, 방생지, 정자 등이 있고 정원의 고목 나뭇가지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즐겁게 한다.
오후 네 시가 조금 지난 시각 대웅보전에서는 예불이 한창이다. 대웅보전 난간 아래 정원에서 여러 종류의 새들이 염불 소리에 배경음악이라도 깔듯 경쾌하게 지저귀고 동백은 가지에는 붉은 꽃을 품고 땅바닥에는 빛바랜 연분홍빛 꽃을 떨궈 놓았다.
다산이 강진 유배생활을 할 때 애지중지하며봄에 먼저 핀다고 하여 선춘화(先春花)라 불렀다는 동백, 누군가는 동백꽃을 두고 "나무에서 한 번, 땅에 떨어져 두 번 핀다."라 했고, 어떤 이는 마음속에서도 피어 세 번 핀다고도 했다. 내게도 십여 년 전과 3년 전 겨울 발령지 부산에서 동백꽃을 보고 짝사랑에 빠져버린 기억이 있다.
대웅전 높은 계단을 내려와 회랑을 지나서 천왕전 옆문으로 나서니 좌측에 높이 솟은 7층 보탑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일제히 바람에 춤을 추며 합창을 한다. 1층부터 7층까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오르니 차례로 호재 수복 비사문천왕, 관음보살, 약사불, 아미타불, 지장보살, 문수보살, 문곡성군이 먼 타국을 유랑하는 중생을 맞아준다.
텅 빈 연지(蓮池) 물 위로 뉘엿뉘엿 기우는 태양이 햇빛을 반사하며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고 귀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