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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pr 05. 2021

셔샨과 텐마샨

상하이 최고봉

청명절이 일요일과 겹쳐 월요일 하루 더 휴일이다. 청명절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로 한식(寒食)과 겹치거나 바로 전날일 경우가 많은데, 이날 산소를 돌보고 찬 음식을 먹는 날이라고도 한다.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격리생활 중에 웹 서칭으로 찾아보았던 셔샨(佘山)과 텐마샨(天马山)을 상하이에서 유학중인 후배 Lee와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전철 10호선 홍챠오루역에서 3호선으로, 이샨루(宜山路)역에서 다시 순환선인 4호선으로 갈아탔다. 지하로 달리던 전철이 지상으로 나오며 30여 분 만에 아홉 번째 정거장인 셔산(佘山) 역에 내렸다. 종점인 송쟝(松江) 남역까지는 아직 여섯 정거장을 더 가야 하니 상하이가 거대 도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자전거(共享单车)를 타고 4km여 거리의 A4급 국가 풍경구 셔샨 국가산림공원으로 향했다. 녹음을 뽐내는 숲, 호수, 내(川), 별장, 조각공원, 골프장 등 스쳐 지나는 풍경이 절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을 준다.

위에후(月湖)와 연결된 도로변 하천에서 노인 한 분이 낚싯대를 던지고 있어 자전거를 세우고 내려가 보았다. 자신을 이곳 사람 '번띠런(本地人)'이라 소개하는 이 강태공은 70세로 은퇴 후 조용히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더란다. 은퇴 후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햇볕이 없고 서늘하기까지 한 날씨에 까오리앙징교(高梁泾桥) 등 두어 개 다리도 건너며 잘 닦인 도로를 지쳐 나가는 자전거 페달이 가볍기만 하다. 셔샨 국가산림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입장객이 드문드문하다. 중국인들은 스마트 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여 인적사항을 등록하고 입장을 하는데, 우리는 외국인이라 수기로 적고서 공원으로 들어섰다.

동셔샨위엔(东佘山园) 아치형 정문으로 들어서니 명나라 때의  지리학자이자 문학가요 여행가였던 서하객(徐霞客, 1587-1641) 동상이 맞이한다.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았고 22세 때부터 평생 21개 성 시 자치구를 답사하였고, 60만 자에 이르는 <서하객 유기(徐霞客 游记)>를 남겨 '천고기인(千古奇人)'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오악에 올라보면 여느 산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황산에 올라보면 오악이 눈에 차지 않는다(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岳)"는 그의 말은 아직도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못 위 돌다리를 건너니 산정 중간까지 368개 계단과 그 위로 이어진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눈앞에 나타난다. 한 발 한 발 너른 계단을 오르는데 시원한 미풍에 양쪽의 무성한 녹나무(香樟, Cinnamomum camphora) 고목들이 우수수 잎사귀를 떨군다.


계단 아래쪽에서 한 젊은이가 뛰어오르며 "오르는 뒷모습을 찍었다"며 사진을 건네주겠단다. 셔산이 위치한 송강구(松江区)에 있는 대학 1년생으로 고향은 청두(成都)라고 한다. 작지만 쉽지 않은 호의로 멋진 추억의 사진 한 장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와 서셔산까지 동행하며 여러 얘기를 나눴다.

동셔산 정상은 해발 74m로 산 전체에 녹나무와 함께 대나무가 울창하고, 능선을 따라 장군정(将军亭) 상취정(尝翠亭) 건륭정(乾隆亭) 목어석(木鱼石) 등 볼거리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은은한 불경 소리에 끌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불향천(佛香泉)으로 내려갔다. 연못으로 약수가 흘러내리는 약병을 손에 든 순백 약사여래, 연못 속에서 유유히 노니는 컬러플한 잉어들, 연못 가에서 물속을 들여다보는 천진스러운 아이들이 동심의 세계인 듯 천상의 세계인 듯 평화로워 보인다.

동셔산을 내려와서 길 건너 서셔산 공원 입구로 들어서서 넓은 돌계단을 오르면 맨 먼저 북송 태평흥국 연간(976-984)에 건립된 월영탑(月影塔)으로도 불리는 약 20m 높이 7층 8각 수도자 탑(秀道者塔)이 맞이한다.

산허리를 휘돌아 정상부에 오르면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1874년 시건 되고 1935年 중건된 성모 대교당이 자리한다.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는 붉은 벽돌로 지은 성당은 고성처럼  당당하고 고풍스럽다. 나무, 못, 철강, 들보를 쓰지 않은 4무(無) 기법과 비대칭 구조로의 이 성당은 당시 건축양식의 전범(典範)이라고 한다.

성당 옆에 1900년에 건립한 셔산 천문대가 천문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자리하고 있다. 이 박물관 입구에 '사산의 정상'을 의미하는 “佘山之巅”이라는 비석이 눈에 띄어 반갑기 그지없다. 해발 99미터로 상해에서 제일 높은 산의 표지석 앞에 마주 섰기 때문이다. 천문박물관, 중산 천주당, 성모와 예수像 등을 둘러보고, 녹나무와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계단을 두어 번 오르내리며 여러 출구 중 열려있는 출구를 찾아 나오니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마침 도로변에서 옆집 할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의 다꽁(打工 호객꾼) 한 분이 근처의 사산 농가채(佘山农家菜) 식당으로 안내한다. 원형 식탁 예닐곱 개가 놓인 자그마한 식당 창가에 앉아 옆 테이블로 곁눈질을 해가며 계란 스크램블(土鸡蛋) 죽순 고기볶음(笋烧肉) 콩씬차이(空心菜) 왕라오지(王老吉) 등 반찬 밥 음료를 시켰다.

시골밥상 느낌의 오찬을 맛있게 들고 5km 여 거리 셔샨 9봉 12 산 중 하나인 천마산 입구까지 따처(打车)를 했다. 성명 전화번호 여권번호 등 인적사항을 적고 입장료를 낸 후 공원으로 들어섰다.

높지 않은 해발 98.2미터 산정 쪽으로 곧바로 이어진 돌계단 길이 만만찮게 힘들다. 내려오는 사람들 중 두어 명의 손에 어른 팔뚝만 한 죽순이 하나씩 들려 있다. 죽순 차, 복숭아, 마름(紅菱)과 함께 죽순이 셔샨의 4대 특산이라고 하니, 그 옆 이곳 천마산도 대나무 숲이 무성하니 으레 죽순도 많이 나올 터이다.

능선 마루에 올라서면 류운각(留云阁), 원나라 때의 문인 杨维桢, 钱惟善, 陆居仁 등 3고사(三古)의 묘, 오나라 왕 합려의 명으로 간장(干将)이 이곳에서 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간검정(看劍亭) 등이 연이어 모습을 보인다. 간검정 지붕의 처마는 하늘로 날아오를 듯 치켜 들려 조금은 체신머리 없고 가벼워 보인다.

사방 높은 담장이 둘러쳐진 산정에 자리한 금빛 동관음(铜观音)이 이곳이 옛 상봉사(上峰寺) 터임을 알려준다. 그 바로 아래에 우뚝 솟아 있는 탑 하나, 송나라 때인 1079년 세운 팔각칠층 호주옥광탑(护珠宝光塔)이다. 탑 끝이 중심에서 2.27미터 기울어진 사탑(斜塔)으로 이태리 피사의 사탑보다 1도가 더 기울져 있어 중국인들은 '천하제일의 사탑'이라 부른다고 한다. 탑은 금세라도 넘어질 듯 아찔하게 기울어진 채 하늘로 높이 솟아 있다.

돌아보지 못한 천마산의 즐비한 고적과 역사를 들려주려는 듯 객의 소매를 잡아 끄는 사탑 옆 상천정(上清井)이라는 우물과 수령 700년 은행나무 한 그루를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하늘도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절(淸明节)도 내일로 다가 왔으니 좋은 봄날이 오래도록 머물러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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