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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Apr 06. 2021

쑤저우 출행

옛 기억 속의 도시를 찾아서

#쑤저우를 향해
서둘러 아침을 간단히 들고 자전거를 지쳐 전철역으로 향했다. 주말 이른 아침이라 평일 출근길의 차량과 자전거 행렬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 내 금융 중심지이자 최고 부자 도시 상하이도 부자들만의 도시는 아니다.

밤늦게까지 도로보수를 하는 꽁런, 와이 마이 배달원, 전철역 공원 등에서 입장객 체온 체크를 하는 젊은 직원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레 미제라블들이 꿈을 찾아 모여드는 거대도시 상하이 속 모습을 들여다보면 <베이징 자전거>로 알려진 '十七岁的单车(17세의 자전거)'라는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궁극의 목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의 이상 사회라는 샤오캉(小康), 덩샤오핑 장쩌민 시진핑 등 역대 지도자들이 건설하겠다고 공언한 샤오캉 사회는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인간은 희망이라는 불빛에 의지해서 고달픈 현실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기차 타기
전철 10호선 홍챠오 공항 터미널 1,2역을 지나 홍챠오(虹桥) 기차역에서 내렸다. '티에로(铁路) 12306'이라는 앱을 이용해서 며칠 전에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었다.

현재 중국은 열차표 예매를 비롯해서 버스나 지하철 탑승, 택시 잡기(打车), 음식 배달(外卖), 입장표 구입, 공유 자전거 이용 등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QR코드, 앱, 알리페이, 즈푸바오(支付宝) 등을 연계하여 신분 확인이나 결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스마트 폰이 없다면 소통은 물론이고 교통, 구매, 입장, 생활 등 모든 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전철역 개찰구를 나서니 좌우로 트인 대합실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파의 물결에 밀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기차역 3층 개찰구로 올라갔다. 외국인 전용 통로가 있어 여권과 얼굴을 대조하여 신분을 확인하고 통과했다. 뒤이어 X-ray 검색대에서 문제가 된 배낭에 든 맥가이버 칼, 소지하고 승차할 수 없다고 하는데, 여차여차(?) 인적사항과 전화번호를 기록하고 무사히 통과했다.

마지막 단계로 신분증, 외국인은 여권으로 본인 확인을 거쳐야 탑승할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으로 내려갈 수 있다. 까오티에(高铁) 고속열차(复兴号)는 연착 없이 거의 정확히 예정된 시각에 발착했다.

졸정원과 사자림 주변 골목과 운하, 그리고 후치우(虎丘)를 둘러보고 귀로에 올랐다. 예매한 기차 시각까지 세 시간 여가 남아서 1시간가량 일찍 출발하는 기차로 앞당겼다. 고속열차는 특실(商务), 일등(一等), 이등(二等) 세 등급 좌석이 있는데 매진된 2등석 대신 잔여석이 있는 1등석으로 바꾸니 요금이 50%가 추가되었다.

소주역에서는 탑승구까지 절차가 비교적 수월했다. 신분 확인과 휴대품 엑스레이 검색을 거쳐 탑승 대기 홀로 들어섰다. 돔 구장 마냥 기둥이 하나도 없는 축구장 네댓 개 규모의 거대한 홀에 입이 쩍 벌어지고, 족히 수천 개가 넘는 의자는 물론이고 너른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승객들 모습에 또 한 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쑤저우(苏州)에서
홍챠오 역에서 출발한 고속열차(复兴号)가 40여 분만에 쑤저우 역에 정차했다. 2004년 11월에 세미나 참석차 쑤저우를 처음 방문한 후 16여 년만에 다시 찾는 마음이 설렌다. 창랑정, 사자림, 졸정원과 함께 소주 4대 이름 난 정원으로 알려진 리우위엔(留园), 당나라 중기의 시인 장계(张继)의  풍교야박(楓橋夜泊)으로 널리 알려진 한샨쓰(寒山寺) 등을 둘러본 기억이 모자이크 조각들처럼 어른거린다.

열차에서 내려 거대한 규모의 쑤저우 역사에서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보다가 북광장 쪽으로 나왔다. 도로 너머로 세계무역중심 건물을 비롯한 서너 개 빌딩군이 보인다. 상하이가 개항하기 전까지 쑤저우(苏州)는 항저우와 더불어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항(蘇杭)'이라 불릴 만큼 화동지역에서 최고로 번성한 도시였다고 한다.

쭤쩡위엔(拙政园), 후치우(虎丘), 한샨쓰(寒山寺) 세 곳을 차례로 둘러볼 요량인데 한참 동안 두리번거리며 시간을 허비하다가 택시를 불러 졸정원으로 이동했다.

정문 매표소 앞 골목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표는 이미 매진되어 그냥 돌아서려다가 안내원에게 외국인이라며 사정을 얘기해 보니, 인파를 뚫고 직접 정문 안쪽으로 인도하여 인적사항을 적고 저푸바오(至付宝)로 입장료 결제하니  입장표를 손에 쥐어 준다. 예전 내국인 우대정책으로 인해 입장료 등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으니 예상치 못한 호의에 감지덕지할 뿐이다.


1509년 왕헌신(王獻臣)이 세웠다는 이 정원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지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뇌물로 지은 정원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만들어진 내역이나 이름의 유래야 어떻든 이처럼 수많은 인파를 끓어 모으며 4대 명원이라 칭송받고 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원 안으로 들어서니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알리는 표지판과 거대한 수석이 맞이한다. 정원 밖 표를 구하려는 인파 못지않게 정원 안도 작은 연못 물 반 고기 반처럼 인파로 북적인다.

52,000㎡ 넓이의 정원은 중앙부의 연못을 중심으로 수많은 정자 누각 회랑 담장 수석 수목 등이 어우러져 가히 강남 제일의 정원 답지만, 떠밀고 밀리다시피 경내를 둘러보는 마음은 한가로움 대신에 번잡스럽기만 하다.

졸정원을 빠져나와 인파를 헤치고 멀지 않은 사자림 쪽으로 발길을 옮겨보지만 그쪽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부근 평강 역사 골목(平江历史街)으로 들어서니 딴 세상처럼 조용하고 적막감마저 감돈다. 자전거 행상에게 반질반질 검은빛이 감도는 포도 반 근을 샀다. 북경 후퉁(胡同)과 유사하게 마당처럼 생긴 공간을 가운데 두고 사방의 주거공간에 네댓 가구가 거주하는 집에 들렀다.

뜨개질을 하는 노파, 미동도 없이 햇빛을 쪼이는 노인, 그들을 마주 보며 간이 의자를 건네주며 반갑게 맞아주는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 여러 얘기를 주고받았다. 한 집처럼 가운데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이들 삶의 모습이 생소하기도 하고, 한편 스스럼없고 정겨워 보이기도 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좁은 운하 위에는 쉽지 않아 보이는 옛 풍류를 건져보려는 듯 여행객을 태운 거룻배 몇 척이 오간다. 한 민박집 아가씨는 부근에 80여 개의 민박집이 운영 중이고 숙박비는 평소 6~700, 주말엔 1000위엔이 넘는다고 내 궁금증을 풀어준다.  

식당(近水台面馆)에서 점심을 들고  백탑 서로(白塔西路)를 지나며 옛 우물, 마작을 하는 주민들, 화조 공예품 시장 등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았다. 시장 안 수석 가게 여주인은 필시 우리가 지나가는 객으로 보이겠지만 진열된 수석들 대부분이 타이후(太湖)에서 나는 것이라고 친절히 대답해 준다. 졸정원 곳곳에 기기묘묘한 자연석이 서있는 연유가 이제야 납득된다. '짜이지엔(再见)' 인사를 잊지 않는 여주인의 마음 씀씀이 고맙게 느껴진다.

인민로(人民路)로 나오니 북쪽으로 북사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1번 버스를 타고 후치우(虎丘)로 가서 오중 제일산(吴中第一山)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서 입장료 70위엔을 내고 호치우 풍경구(虎丘山风景)로 들어섰다.


후치우(虎丘)는 비록 해발 34.3m 나지막한 산이지만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한 명인 오나라 부차의 아버지 합려의 묘로 알려진 젠츠(剑池)를 비롯해서 세계 제2의 사탑이라 불리는 운암사(云岩寺) 탑, 시검석, 천인석 등 수많은 유적들과 누각 정자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져 A5급 국가 관광지에 걸맞은 풍치를 뽐낸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오나라 제일의 산을 뒤로하고 한산사(寒山寺) 여정을 접기로 하고 1번  버스에 올라 기차역으로 향했다. 필경 한산사도 예전에 찾았던 그 고요와 운치는 간데없고 인파로 북적일 터이다.

당나라의 시객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과 함께 십칠 년 전 인적 드문 한산사에 들렀을 때 느꼈던 감흥 그대로 한산사를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라 위로를 삼는다.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

달은 지고 까마귀 울며 서리는 가득한데
강가 단풍과 고깃불 시름에 졸며 바라보네
고소성 밖 한산사 한밤중 종소리  
나그네 탄 배에까지 들려오네
- 장계의 <풍교야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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