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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22. 2020

올림픽 정신과 용병 유감

사진: 교황청 근위병들

세계 보건기구가 팬데믹(pandemic)으로 선포한 코로나 19가 전 세계 각국에 만연하고 있다. 이 호흡기 감염질환의 가공할 만한 전염력은 사회 전반에 심각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초래하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스포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농구, 배구, 축구, 야구 등 국내 인기 프로스포츠가 무관중으로 경기를 진행하거나 일정이 연기 또는 취소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소위 ‘용병(傭兵) ’으로 불리는 외국인 선수들은 코로나 19의 위협을 벗어나고자 계약을 파기하고 본국으로 귀국하는 경우도 있었다.


용병이라고 해서 모두 부정적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루체른 한 공원의 바위벽에 창에 찔려 죽어가는 '빈사의 사자 상'이라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 튈르리 궁으로 진격하는 군중에 대항해 끝까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뜨를 지키다 전사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의 충성심과 위엄을 기리는 조각상이다.


한편, 1506년부터 교황청을 지켜온 스위스 용병 근위대는 1527년 5월 신성로마제국의 왕 샤를 5세가 로마를 침략했을 때 대원 189명 중 147명이 전사하면서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끝까지 지켜낸 용맹과 충성심으로 널리 알려져 다.


몇 해 전 ‘그라운드의 악동’이라 불리는 웨인 루니 선수가 13년 만에 친정팀 에버턴으로 이적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A 매치 119경기 53골, 만 16세 프리미어리그 최연소 득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 등 그가 세운 기록들은 경이롭다. 맨유 팬들의 입장에서는 아쉽고 안타깝겠지만 프로 운동선수 속성상 각 구단의 필요와 몸값에 따라 팀을 옮겨 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다.


최근에는 거대한 몸값이 오가는 프로스포츠 선수뿐 아니라 올림픽의 일부 종목에서도 외국인 선수를 자국으로 귀화시켜 대표선수로 선발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태극마크를 단 용병 아닌 용병들이 여럿 출전했었다.


자국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외국인 선수들이 우리나라로 귀화해서 한국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루지, 알파인스키, 아이스하키 등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고 인기가 덜한 종목에 몰려있다.


이들 종목은 국내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고 국제대회에서도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탓이다.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귀화해 동계올림픽 빙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도 있었다.


메달을 위해서라면 귀화를 한 선수나 귀화를 받아들인 나라에게 선수가 태어난 나라가 어디인지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한 개인뿐 아니라 조국의 명예를 걸고 출전하는 올림픽의 정신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듯해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한우(韓牛)로 유명한 강원도 어느 도시의 한우 전문식당에 들른 적이 있다.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청정한 산지 식당 직판이니 믿을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부러 먼 곳까지 찾아왔을 것이다.


숯불 앞에 나온 등심을 보면서 ‘모두 이곳에서 사육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국산이냐 외국산이냐에 관해서는 원산지 관련 규정이 잘 정비되고 식당들도 잘 이행하고 있지만 국산 한우의 경우 지역 표시에 관한 규정은 미흡해 보였기 때문이다.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와 FTA 무역체제로 과일, 쇠고기, 포도주 등 세계 각지의 농수축산물과 그 가공품을 아무 계절에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먹거리를 비롯해서 우리가 평소 사용하고 소비하는 상품도 예외는 아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과 같은 주식의 생산량을 자급자족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흘러간 옛 노래처럼 치부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땅에서 우리 농산물과 토종 가축을 길러내며 ‘신토불이(身土不二)’ 정신을 묵묵히 이어가는 이들에겐 존경심마저 든다.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단 우리 선수들이 메달을 많이 따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떨치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흐뭇한 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로 귀화한 벽안의 대표선수들은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들이 메달을 땄다고 하더라도 ‘수입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여 화로에 올라온’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은 찜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교우위의 상품이 국경을 넘어 고유시장을 잠식하고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연봉을 쫓아 구단을 옮겨 다니듯 올림픽에서도 나라들마다 정체성이 모호한 귀화선수들이 넘쳐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 19 사태 때문에 올해 열리기로 예정됐던 2020 도쿄올림픽도 내년으로 연기됐다. 아무쪼록 코로나 19 사태가 조속히 진정돼 훈련에 매진했을 각국의 참가자들과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승리보다 참가, 성공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올림픽 강령의 숭고한 정신만은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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