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천(儒佛天)이 공존하던 위대한 요람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우산천을 거슬러 긴 계곡길을 따라 천진암에 닿았다. 앵자봉이 이렇게 깊은 골을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앵자봉(鶯子峰) 위 두꺼운 구름 속에 든 태양은 형태만 어렴풋이 보이고 공기는 더없이 서늘하다.
운동장처럼 넓은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천진암 성지(天眞庵 聖地)를 둘러싸고 있는 앵자봉과 그 좌우 능선을 한 바퀴 둘러볼 요량이다. 성지 우측 골짜기에 있는 경기도 청소년 야영장을 좌측으로 끼고 능선을 향해 올랐다. 능선 비탈에 올라앉은 전원주택을 지나고 S대학 학교림 관리동 뒤로 돌아 능선 머리로 진입했다.
수풀의 녹음은 장마 지난 계곡 물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계곡과 임도를 덮칠 듯 무성하다. 새소리가 합창으로 산객을 맞는다. 포장도로가 소리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 바로 아래까지 놓여있다.
"조망 끝내주는데요!"
"예, 산만 보이죠"
"여기에 집도 짓겠네요?"
"언제일지 모르죠. 10년 후에나..."
능선 턱밑에 컨테이너 두 대를 올려놓고 그 앞 평토를 마친 마당 가장자리에 자란 나뭇가지를 낫으로 치던 중년 남성이 산객의 물음에 마음속에 감추어둔 소망을 내비친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자연 속의 삶, 불편하고 단조롭고 쓸쓸하기도 하겠지만 꿈을 몸소 실천하는 저 '자연인'이 일면 부럽기도 하다.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고 어지럽게 자란 산기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섰다. 훤칠한 나무들이 널찍이 거리를 두고 뻗어있는 성긴 숲이 시원스럽다. 이정표가 앵자봉까지 4km라고 알린다.
등로 나뭇가지에 달린 눈 비바람 세월에 닳아빠진 리본이 어느 산악회의 오래전 산행의 흔적을 말해준다. 첫 번째 비알을 오르느라 얼굴과 몸은 땀범벅이 되었지만 나뭇잎을 흔들며 몸에 스치는 바람은 서늘하다 못해 싸늘하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회색 구름이 낀 하늘은 태풍전야의 스산한 느낌을 자아낸다.
느슨한 오르막 능선은 한 시간 여만에 산객을 고도 500여 미터로 끌어올려놓았다. 인적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차량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신유박해와 병인양요 때 천주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산으로 그리 높진 않지만 심심산중에 든 듯하다.
시간 반 만에 소리봉에 닿았다. 소리봉 지리 표지석 바로 아래 놓인 이정표가 관산과 무갑산 쪽과 남이 고개와 앵자봉 쪽을 가르마하고 있다. 네 해 전 무갑산과 관산을 지나 무갑리로의 원점회귀 산행, 뜻하지 않은 견공 '해피'와의 동반산행이 떠오른다. 관산 자락 아래 퇴촌에는 치욕적 역사의 유산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자리할 것이다.
소리봉을 지나 바위가 부서진 자갈이 깔린 길, 우측으로 골프장을 낀 관목이 무성한 길, 소리봉과 앵자봉 능선이 낮아지며 수렴하는 박석고개 등을 지났다. 무갑산 산행 때 우연찮게 동행했던 견공 '해피'가 어디서 불쑥 달려올 것만 같다.
깊은 숲의 바닷속에 든 듯 나무 잎사귀와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 매미소리, 새소리뿐이다. 초목이 우거진 능선을 지날 때면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산행 내내 박석고개에 못 미쳐 산객 한 분과 스쳐 지났을 뿐 인적이라곤 없어 자기 자신에 침잠할 밖엔 도리가 없다. 그야말로 자기 내면의 깊숙한 곳을 향해 걷는 순례길이나 다름없다.
앵자봉으로 드는 일주문 인양 능선 한가운데 턱 버티고 선 송전탑 아래를 지난다. 앵자봉으로 오르는 능선 비탈 옆 바위 위에 올라서니 능선 아래로 천진암 성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검단산 예봉산 뒤로 수락산과 북한산까지 조망된다.
채 세 시간이 되지 않아 널찍한 데크가 놓인 앵자봉 정상에 올라섰다. 거칠 것 하나 없이 사방으로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양자산 천덕봉 원적산 태화산 백마산 무갑산 관산 용마산 검단산 예봉산을 비롯 높이 출렁이는 너울처럼 겹겹 멀리까지 넘실대는 산군들이 장관을 펼쳐 보인다.
앵자봉 아래 600여 미터 지점에 있는 주어사지는 1779년 권철신 주도로 남인계 소장학자들이 천진암을 오가며 서학(西學)을 강학하던 곳이라 한다.
"일찍이 기해년(1779년) 겨울에 천진암에서 강학이 있을 때 주어사는 雪中인데도 이벽이 한밤중에 도착하자 각자가 촛불을 밝혀 들고 경서를 담론 하였다." <정약용 묘지명, 1822>
이벽 이승훈 정약종 정약용 권철신 권상학 김원성 이총억 등이 강학회를 열어 유교 경전을 통해 우주와 인간의 근본문제를 다루고 한역 서학서를 통해 천주교 신앙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앵무새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라는 해발 667m 앵자봉은 한국 천주교(天主敎)를 잉태하고 스스로 뿌리를 내린 곳으로 성지 내 안내문대로 실로 '유불천(儒佛天)이 합류하여 새 종교사가 이루어진' 위대한 요람이 아닐 수 없다.
앵자봉 아래 풀숲이 무성한 작은 봉우리에 하늘말라리 꽃 몇 송이가 주홍빛 발랄한 자태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같은 꽃이라도 산길에서 만나는 꽃은 느낌이 각별하다. 걸음을 멈추고 꽃에 흠뻑 취해 있는데 새끼 노루 한 마리가 한 발자국 옆 지척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숲 속 나무 아래 어미 곁으로 뛰어간다. 몸을 숨기고 불청객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어미와 새끼에게 눈길을 거두고 조용히 발길을 옮긴다.
'등산로'라는 푯말을 따라 양자산 쪽 능선을 버리고 천진암 쪽 가파른 길로 내려섰다가 지도 앱을 보고 비탈진 사면을 트래버스 해서 주 능선으로 올라섰다. 양 옆으로 가파른 사면을 낀 좁은 능선이 고도를 차츰 낮추어 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천진암 성지 건너편 능선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따라온다.
산길에서 종종 만나는 '준.희' 님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앵자지맥 523.3m' 이정표가 이 능선이 우리 산줄기 118 지맥 가운데 하나임을 알려준다. 밤벌레의 울음 계곡 별빛 곱게 내려앉나니,라고 노래하는 김태곤의 <송학사>처럼 매미 울음소리 가득한 앵자봉에도 밤이면 고운 별빛이 내려앉을까?
어설픈 이정표 대신 지도 앱을 길잡이 삼아 갈림길을 짚어 해협산 정암산 쪽을 버리고 천진암 쪽으로 향한다. 누리장나무 숲 터널과 낙엽송 군락을 지나고 풀숲이 무성한 길이 이어진다.
개복숭아 나무 숲 사이에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들이 산객을 유혹한다. 설익은 것은 시큼하고 농익은 것은 더없이 달콤하다. 꽃을 탐하는 나비처럼 길 옆 산딸기에 탐닉하다가 벌집을 보지 못하고 풀벌에 한 대 쏘였는데 말벌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다.
고도를 한껏 낮춘 능선은 풀숲이 우거진 계곡 옆길로 내려선다. 군데군데 고인 물 위에서 소금쟁이들이 깡충대는 깊은 계곡은 짙은 숲 그늘로 때를 알 수 없지만 시계는 정오가 조금 지났음을 알린다. 긴 계곡은 천진암 성지로 가는 오르막길 입구로 내려선다. 날머리에 있는 안내판에 쓰인 대로 스틱을 접어 배낭에 넣고 등산화 먼지를 털고 옷을 여미고 성역으로 내려섰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관산 소리봉 앵자봉 등 여러 봉우리와 능선에 아늑히 둘러싸인 너른 천진암 성전 건립 예정지, 산기슭의 천진암 터, 강학회 터, 5위 성현 묘역, 이벽 독서 터, 빙천수, 세계평화 기원 성모 마리아 상, 성모경당 등을 둘러본다.
이 땅에 스스로 천주교의 뿌리를 내린 선각자들이 마셨을 물, 굵은 물줄기를 뿜어내는 빙천수 한 모금에 갈증이 말끔히 가시는 듯하다. 성지를 뒤로하며 순례(巡禮) 같았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