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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Jun 08. 2021

난통(南通), 장강과 바다가 만나다.

@狼山 &长江 (photo: 百度)

상하이 북동쪽 100여 km 거리에 난통(南通) 시가 있다. 장쑤성 동남부 장강 하류 북변에 자리한 도시로 장삼각 27개 도시 중 북쪽 날갯죽지에 해당하는 경제 중심지로 '북쪽의 상하이(北上海)'로도 불린다.

태창(太仓)과 장가항(张家港)을 거치고 장강 위 철교를 건너 난통으로 들어설 때까지 끝없는 평원이 펼쳐질 뿐 언덕이나 산이라고는 야트막한 것조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난통 서역에 도착해서 중국인 승객들과 달리 외국인 승객 서너 명은 신분증을 확인하고 일일이 수기로 기록하느라 맨 나중에서야 역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고속철도 덕분에 아직 08:45경으로 이른 시간이라 마음은 느긋하다.


난통에 오게 된 동기 중 하나는 중국에서 가장 길고 세계 세 번째로 긴 강으로 서부 칭하이성에서 상하이 앞바다까지 11개 성(省)에 걸쳐 6,300km를 달려온 창쟝(長江)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난통시 북서쪽 외곽에 자리한 서역을 출발해서 15km여 거리의 국가 A4급 풍경구인 낭산(狼山)으로 향했다. 양쯔강과 접한 낭산은 '전국 불교 팔소명산(八小名山)' 중 하나이자 '강남 십경' 중 하나로 불린다.

난통은 중국이 처음 개방한 14개 연안 도시 중 하나로 장강 하류 226㎞가 역내를 지나고 강과 바다가 만나며 남북 수운과 해운의 요지라고 한다. 난통의 그 진면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곧 '강해 제일산(江海第一山)'으로 불리는 낭산이 아닐까 기대된다.

장강 중로(长江中路)로 접어들자 하역용 대형 크레인들이 차창 밖으로 스쳐지 날 뿐 장강은 철교를 지날 때 잠시 보여준 바다처럼 드넓은 모습을 평원에 감춰둔 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난통낭산징취(南通狼山景区) 입구에 도착하니 웅장한 출입문 목조건물 뒤로 낭산과 그 위 사찰과 탑이 모습을 보인다. 이곳에는 최고봉인 해발 109m 낭산을 비롯해서 마안산(马鞍山) 황니산(黄泥山) 검산(剑山) 군산(军山) 등 다섯 산이 모여 있다. 안내도를 보니 넓이가 광대하고 거미줄같이 얽힌 복잡한 수로가 주요 지점 60여 곳을 갈라놓고 있다. 우리는 낭산과 그 위의 광교사(廣敎寺) 위주로 짧게 동선을 잡았다.

이른 아침부터 내려쬐는 햇살이 따가워 낭산 가장자리를 휘도는 길 나무 그늘을 따라 산정으로 오르는 입구로 향한다. 조금 더 휘돌아 광교사의 입구로 오르는 길 대신에 산기슭으로 곧바로 치고 오르는 좁은 계단길로 방향을 잡았다. 산정에 우뚝 솟은 지운탑(支云墖)을 일찌감치 둘러보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따라 내려오고 있다.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할 무렵 '제일산(第一山)'이라는 세로글씨 현판이 걸린 사천왕문 앞 5~6미터 높이 대형 향로가 자리한 너른 대리석 마당 대관대(大观台)로 올라섰다. 난간 너머 눈 아래로 평온한 장강(长江)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위를 수많은 크고 작은 화물선들이 떠가는 모습이 일대 장관이자 부러움을 자아낸다. 지난번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항만인 상하이 양산항을 방문했을 때, 물동량 중 약 30% 가량이 장강을 따라 운송되는 연안 수운 물량이라는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낭산 정상부에 자리한 광교사(廣敎寺)는 당나라 때인 669년에 지어진 고찰로 정상의 지운탑 앞에는 대세지보살을 모신 원통보전, 후측면에는 개산조사 승가(僧伽, 大圣菩萨)를 모신 대성전(大圣殿)이 자리한다. 사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밟으며 췌경루(萃景樓) 원통보전 태자목욕지 지운탑 대성전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전각들 마다 금색 가사 차림의 스님들이 불상 앞에 호위하듯 지키고 서있고 사람들은 연신 복전함에 시줏돈을 던져 넣거나 향을 사르고 합장하며 온 몸을 숙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흰 늑대 정령이 낭산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승가와 흰 늑대가 사악한 늑대들을 제압하고 흰 늑대가 이 산을 내어주자 승가가 산 위에 현재 광교선사(廣敎禅寺)로 불리는 절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 낭산 광교사에서는 관음보살을 모시는 원통보전에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통상 대세지보살은 독립적으로 예배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 아미타불 왼쪽에서 자비문(慈悲門)을 관장하는 관음보살과 함께 오른쪽에서 아미타불의 지혜문(智慧門)을 상징하는 협시불로 모셔지기 때문이다.

대성전(大聖殿)이라는 전각 현판에 일순 '사찰에서 공자님을 모시나?'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알고 보니 이 사찰의 개조(开祖) 승가 스님을 모신 곳이다. 황제가 하사했다는 수를 놓은 붉은색 용포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 어느 불상보다도 더 화려해 보인다.

승가는 당 고종 때 장안과 낙양에서 병을 고치며 명성을 얻었고 국사로 추앙되었으며 후대에 대성보살이라고 불렸다고 하니 '대성전(大聖殿)'이라고 한 연유에 수긍이 된다. 전각 안에 걸린 공조회해(功照淮海)라는 현판이 그의 공덕의 깊이와 넓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하게 한다.

정문 격인 동문 쪽으로 내려오는 너른 돌계단 옆으로 기념품 가게들, 매점, 노상 식당 등이 늘어서 있다. 그중 한 노점상에게 양피(凉皮) 한 그릇을 주문하니 탁자 위에 놓인 재료와 예닐곱 가지 병에 담긴 양념을 일회용 종이 그릇에 담아서 내민다. 칼국수처럼 넓적한 전분질 면(麪)에 국물이 없이 여러 양념을 섞은 양피가 점심때가 가까웠다고 안달하는 허기를 잠시 달랜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중국 역사상 최초의 박사 학위를 취득한 스님이자 1989년 대만에 법고사(法鼓寺)를 창건한 성엄법사(聖嚴法師, 1930-2009)의 도량처 법취암(法聚庵)를 둘러보았다.

낭산과 광교사의 정문 격인 동문 쪽으로 향하는 길옆 낙빈왕(骆宾王, 626?-687?) 묘도 눈에 띄었다. 저장성 이우(义乌) 출신 시인으로 '초당사걸(初唐四傑)’로 불렸으며, 측천무후에 대한 반란에 가담하여 격문을 기초하였으나 주동자 서경업(徐敬業)이 패망한 후 종말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강산여화(江山如画)'라는 현판이 걸린 산문을 나서기 전 흰 늑대(白狼) 동상이 낭산의 전설을 상기시켜 준다.


난통의 옛 시가지(濠河风景名胜区)로 이동하여 부근 국숫집에서 허기를 채우고 난통 박물원(博物苑)으로 갔다. 상하이 닝보 등 주변 도시의 박물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선사시대 때부터 최근까지 이어져온 이 지역 문명과 지형 형성의 역사를 다양한 유물과 자료로 보여주는 것은 다름이 없다. 공산당 창당 백주년 기념 서화 특별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난통의 역사는 후주 현덕(后周显德) 3년(956年) 통주로 승격한 때부터 천 년이 넘었으며 사범학교, 민간 박물관, 방직 학교, 자수 학교, 연극학교, 중국인이 세운 맹아학교, 기상소 등이 중국 내 최초로 세워진 곳으로 '중국 근대 제일의 도시'이기도 하다. 2014년 기준 평균 기대수명 80.7세, 100세 이상 인구 1031명으로 장수의 고장이자, 2018년 중국 100대 도시 순위에서 2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별도의 건물에 고래를 비롯한 각종 해양동물과 조류를 소개하는 전시관이 있고, 박물원 설립자로 애국 기업가의 전범, 민족 기업가의 모범,  민영 기업가의 선현으로 추앙받고 있는 장지엔(张謇)의 숨결을 느끼며 그의 구거(故居)와 공원처럼 너른 정원을 둘러보았다. 이곳을 직접 한 번 둘러본다면 박물관이 아니라 박물원(博物苑)이라 이름한 이유를 저절로 알 수 있을 듯하다.

종루(钟楼)를 거쳐 이름과 달리 예전 이 도시의 중심지이자 주거지였던 하오허(濠河) 풍경 명승지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떠나고 빈집들만 유령도시를 처럼 조용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북단에 자리한 천닝쓰(天宁寺)도 옛 영화를 그리워하듯 세월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예약해 놓은 열차 시각까지는 시간이 여유롭지만 따가운 햇볕에 쫓기듯 일찌감치 난통역으로 이동해서 열차를 기다렸다. 박물원 전시관 출구 쪽을 지키고 있던 이 지역 민간에서 항해의 여신으로 알려진 '마주(妈祖)' 像의 부드럽고 아름답던 자태가 떠올랐다. 장강과 바다를 넘나들던 난통 사람은 아니지만 거친 인생의 강과 바다를 항행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던지는 위안이 적지 않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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