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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May 24. 2021

위엔 천당 아래엔 항저우

불림(佛林)으로 들다

상하이 서쪽 160여 km 쯤에 위치하는 저장성 성도 항저우(杭州)로 향한다. 홍챠오 역을 출발한 고속열차는 쟈샨(嘉善) 남역과 쟈싱(嘉) 남역을 거쳐 약 한 시간 만에 항저우역에 도착했다. 16년  전 늦가을 링인쓰(靈隱寺)를 둘러보고 시후(西湖) 부근 찻집에 들렀던 기억이 멀리서 아른거린다.


여느 도시의 역사보다 아담해 보이는 항저우역에 친근한 느낌이 든다. "위에는 천당이 있고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杭)"는 말도 있으니, 예로부터 풍치가 아름답고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에 좋은 고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아직도 "서호의 푸른 물, 차밭이 우거진 용정(井), 사람들의 정갈한 개성 등으로 항저우는 대갓집 규수처럼 품위 있는 고장"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택시를 타고 링인쓰(靈隱寺)로 향했다. 시후(西湖) 옆 도로로 접어들자 호수 위로 길게 뻗은 바이티(白提)와 호수변에서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번에 갔었던 소주가 말광량리 소녀라면, 녹음이 무성하고 비에 젖은 항저우는 규수처럼 차분하고 아릿따워 보인다.


녹음에 푹 묻힐 듯 형체를 드러낸 전원주택들과 녹차밭을 스쳐 지나며 롱징루(井路)를 따라 링인쓰 입구에 다달았다. 링인쓰는 동진(東晋) 때인 326년 인도 승려 혜리(惠理)가 개창했다. 쑤저우 워크숍을 마치고 웬(袁)씨와 이곳에 들러 지에칭(戒青) 스님과 함께 차를 나누고 발우공양을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입구부터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링인쓰는 '선령스런 감춰진 장소(仙)'라고 하여 '링인(靈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말이 무색하다. 일주문을 들어서서 녹음 아래 수국이 만발한 숲길을 걸어 비래봉 기슭 암벽과 동굴의 불상군 속으로 들어섰다.


청림동(青林洞)은 373m² 넓이의 동굴로 벽면에 오대오월(五代越, 907-978)과 북송 때 조각된 178위 불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십팔 나한상, 서방삼성좌상, 노사나불, 나한 좌상, 석가불 좌상, 미륵좌상, 아미타불 등 이름과 형태 크기가 각기 다른 갖가지 불상들에 둘러싸이니 마치 불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고승취경(高僧取) 조각상은 1세기경 인도승 마탕가, 위나라(220-265) 주사행(朱士行), 7세기경 당나라 현장이 각각 경전을 구하려 먼 길을 떠나는 역정을 한 곳에서 보여 준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지만 구도(求道)의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일갈하고 있는 듯 하다.

넓이 270m² 북송 때 조성된 39위 조각상을 품고 있는 또 다른 동굴 옥유동(玉乳洞)도 거쳐 지났다. 너무 캄캄해서 앞뒤 분간조차 어려운 넓이 253m²에 송명(宋明) 시대 불상 43존이 자리한다는 용홍동(龍鴻洞)에서는 붉은색 광배가 또렷한 좌불이 특히 인상 깊다.

동굴을 빠져나와 렁촨시(冷泉溪) 계곡을 사이에 두고 비래봉 암벽과 나란히 난 링인쓰 쪽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걷는 걸음이 암벽에 조각된 불상들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니 더디기만 하다. 포대화상과 다보천왕 조각상 앞에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의 좌불 하나는 눈매와 입가에 어린 미소가 '천년의 미소'라 불리는 신라 수막새와 흡사하다.

수목이 내려앉은 렁촨시(冷泉溪) 물속에 자라와 비단잉어가 함께 유영하는 모습이 신선들이 숲 속을 유유자적 노니는 선계처럼 보인다.

비래봉 조각상 입장료 45원과는 별도로 30원의 입장료를 따로 내고 가로막아 놓은 사천왕문 대신에 그 옆 개찰구를 통해 링인쓰로 들어섰다. 위진삼주(威鎭三州) 최승각장(最勝覺塲)이란 현판이 걸린 전각 안 사천왕상과 대웅보전의 석가모니불 모두 규모가 남다르다.

대웅보전 앞 대형 향로에는 연기가 자욱하고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두 손으로 불사른 향을 머리 높이 들어 각자의 바람을 기원하고 있다. 대웅보전 뒤 계단을 따라 약사전으로 올랐다. 벽면을 따라 가운데 본존불을 둘러서 있는 12 지신상이 이채롭다.

약사전 뒤 장경루(藏經樓)로 올라가는 양쪽 계단 중간 벽에 반야심경이 적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전 글씨 중 하나를 한 번씩 손으로 쓰다듬는다.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간 리利 생生 증增 상想 등의 글자들은 금박이 특히 많이 흐릿해져 있다. 경전에는 본문 260자 가운데 '無'자가 20여 회나 반복된다. 생각해 보면 애초 나란 존재는 아무 곳에도 없었고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났으니 욕심을 버리고 주워 담지 않는다면 새삼 버릴 것도 없을 것이다. 금박이 또렷한 '없을 무(無)'자에 손길을 한 번 주고 계단을 오른다.

'장경루'와 '직지당(直指堂)'이란 현판이 나란히 걸린 전각 안에는 중국 공산당 창건 100주년 기념 서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담긴 의미를 평하기는 난감하지만 뛰어난 솜씨의 붓글씨와 그림들을 이곳 사찰에서 만나게 된 것은 특별한 행운이다. '농공홍군(農工紅軍)'이라 쓰인 둥근 방패와 칼을 등에 지고 아내 등에 업힌 아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참군(参)을 떠나기 전 작별하는 그림과 전서체로 쓴 '공산당호(共産黨好)'라는 대작이 인상적이다.


사찰 맨 뒤쪽 산기슭 높은 곳에 자리한 화엄전에는 두 손을 한 곳에 모은 비로자나불과 그 양쪽에 문수 보현 협시보살이 좌정하고 있다. 링인쓰를 나서는 길에 오백나한전으로 발을 들였다. 중국 불교 4대 성지인 오대, 보타, 구화, 아미 네 산이 각각 의미하는 문수, 자장, 관음, 보현 네 보살을 가운데 두고, 저마다 깨달음의 희열에 찬 500 아라한들의 얼굴에는 각기 독특한 개성과 범접키 어려운 고상함이 서려있다.

범음당(梵音堂)에서는 승려들과 불자들이 모여 앉아 예불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문 가까이 좌석 앉은 스님에게 스마트폰 속 16년 전 사진을 보여주며 지에칭 스님의 행방을 물었다. 사진 속 젊은 스님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보며 "건너편 사찰에 있다."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잔잔히 들리는 불경 소리를 뒤로하고 링인쓰를 빠져나왔다.

링인쓰에서 산기슭 위로 난 길을 따라 영복사(永福寺)로 향했다. 앞서 걷는 일단의 스님 중 한 분에게 재차 '계칭' 스님의 소재를 물어 "뇌봉탑 맞은편 쩡츠쓰(诤慈寺) 방장"이라는 답을 얻었다. 스님은 오래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중생을 잊어버렸을 터인데, 과거에 집착하고 옛 기억을 쫓는 자신의 모습이 지나간 시간을 쫓는 집요한 파파라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의 충장 악비
링인쓰를 뒤로하고 버스로 시후 북변 베이샨지에(北山街)의 악왕묘(岳王庙) 부근에서 내렸다. 약왕묘 맞은편 시후 옆 식당에서 항저우의 여러 이름난 요리 중 제철이 아닌지 가격이 제법인 룽징샤런(龍井蝦仁)을 빼고, 시후취위(西湖醋鱼)와 동포러우(东坡肉) 등을 시켜 허기를 달래며 다리를 쉬게 했다. 식당 맞은편 찻집에서는 용정 찻닢을 작은 솥에서 덖는 모습을 연출하며 손님을 부르고 있다. 채취한 시기에 따라 향과 맛 가격이 제각각인 롱징차의 향내를 깊숙이 한 번 들이마셔 본다.

길 건너 악비묘(岳王庙)라는 현판이 걸린 대문 너머로 '심조천일(心照天日)'라는 현판의 사당 안에 황금빛 흉대를 두른 조상(雕像)이 자리하고 있다. 북송을 역사 속으로 지우고 남진하던 금나라와의 결사항전을 주장하다가 진회 등 주화파 일당에게 모살당한 남송의 명장 악비(岳飞, 1103-1142)의 사당이다. 그가 지었다는 애국일념을 노래한 시 <만강홍(满江红)>은 후인의 위작이라는 설도 있지만, 비분강개한 심경과 영웅적인 기개를 잘 표현한 명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기 어린 머리털 치솟아 관을 찌르고
난간에 기대섰노라니 부슬비도 그치네
눈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길게 휘파람 불며  장대하고 격앙된 가슴을 쓸어내리네
怒髮衝冠 憑闌處 瀟瀟雨歇
擡望眼 仰天長嘯 壯懷激烈
- 악비의 <满江红> 中 -

물개구리밥을 가을이 되면 잎사귀가 붉은색으로 변하여 주위가 온통 붉게 보여 만강홍(满江红)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접하던 '만강홍'이라 쓰인 중국집 간판에 억울하게 죽은 충신의 얘기가 깃들어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충신 악비는 악왕으로 숭앙되고 있고, 그를 모함하고 일시의 권력과 영화를 누린 간신들은 죽어서 충신의 묘 앞에 무릎 꿇린 채 세세토록 세인들의 조롱을 받고 있으니 어찌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악왕묘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본 후 길 건너편 시후로 접어들었다.


시후(西湖)
시후(西湖)는 중국 국가 A5급 풍경구(级景区)로 2011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2021.5월 현재 중국 내 지정된 A5급 풍경구는 총 304개다. 성별로는 장쑤성 25개, 저장성 19개, 신장 16개, 광동과 쓰촨이 각각 15개 등의 순이다.

남서북 세 면을 산이 에워싸고 있는 시후(西湖)는 면적이 6.38 km²이고 바이티(白提) 쑤티(苏提) 양공티(楊公提) 자오공티(赵公提) 등 제방들이 호수를 분할하고 있다. 수원은 네 개의 지표수이고 평균 수심은 2.27미터 최고 수심은 약 5미터라고 한다.

시후 주변에 있는 명소가 100여 곳이나 된다는데, 국가 성 시(国家省市)급 중점 문화재 60여 곳, 박물관 단교 탑 사찰 등도 20여 곳에 이른다니 가히 문화유적의 보고라고 할만하다. 이는 시후 십경, 신시후십경, 삼편시후십경 등 시후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백거이 소동파 양만리 구양수 임화정 류영 등 이곳을 찾아와서 그 감흥을 노래한 수많은 시를 남긴 수많은 명사들이 있었기에 그 명성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일 터이다.

너른 호수, 굴곡진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제방과 교량으로 구분져진 연못 같은 호수들, 호수 주변 무성한 숲과 화초, 정자와 카페들, 숲에 깃든 새,.. 시후를 찾은 객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는 시후의 늦은 봄날 한낮 한 때를 자랑하려는 듯 흐리던 하늘이 개이고 살며시 햇살을 드러낸다.

쑤티(苏提)로 길을 잡았다. 시후의 쑤티는 북송의 관료이자 시인인 소동파(1037-1101)가 두 번째로 항저우 지주(知州)로 왔을 때인 1089년 20여만 명을 동원해서 시후를 준설하여 만든 제방이다.

동파 소식(苏轼)은 중국을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당송팔대가 중 한 명으로 급진 개혁가 왕안석(王安石, 1021-1086) 등과 대립하여 1071년 항저우로 좌천되어 4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그후 미저우(密州) 쉬저우(徐州) 황저우(黄州) 하이난(海南) 등지로 부임하거나 유배를 떠도는 생을 살면서 철학적 요소가 짙은 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고 <적벽부(赤壁赋)> 등 불후의 작품도 남겼다고 하니 그의 타고난 천재성과 자유롭고 낙천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적벽부>는 음력 7월 16일, 적벽에 배를 띄워 술잔을 기울이며 청풍명월 읊조릴 제, 동산에 달이 돋고 백호는 강을 가로질러 날며 저 멀리 강물에 비친 달빛은 하늘과 닿았으라,라고 시작되어 옛 삼국의 영웅들이 다투던 적벽대전을 회상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기창과 서도창으로도 널리 불려지고 있는 <적벽부>는 1802년 47세에 황저우(黄州)로 귀양을 가서 쓴 두 수의 시 가운데 음력 7월에 자신을 찾아온 친구 양세창과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지은 한 수라고 한다. 가사를 옆에 두고 염경애와 장문희 두 명창이 부르는 단가 <적벽부>를 번갈아 들어 보니 동파와 함께 뱃놀이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무궁한 천리장강 어이 아니 부러우리
이 몸이 신선되어 강상명월(江上明月) 이 가운데 장생불로 못할 일 한없이 슬퍼하랴
흉중에 쌓인 한을 퉁소로 붙임이라
아서라 모두 다 취담(醉談)일다
유유(悠悠)한 세상사를 덧없다 한을 말고
이윽히 눈을 들어 우주를 살펴보라
- 단가 <적벽부> 中-

오랜 유배 생활을 했던 추사나 다산 등 숱한 명현들 또한 불후의 작품이나 고매한 삶을 통해 자신들의 성취를 후세에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몸은 속박할 수 있을지언정 그 정신세계만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의지에 속할 뿐 그 누구에게도 지배당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서호(西湖) 모습
뇌봉탑(雷峰塔) 위에서 바라본 징츠쓰(净慈寺)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폭이 3~40m로 6개의 아치형 돌다리를 품고 있는 쑤티(苏提)는 길이가 약 2.8km로 걸어서 건너기에는 만만찮게 긴 거리이다. 영은사와 영복사 등을 걸어서 둘러보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친 다리가 삐걱대며 아우성을 친다. 쑤티를 따라 남단 뇌봉탑 쪽에서 북쪽으로 유람객을 가득 실은 유람차가 빈번히 지나갈 뿐 우리가 향하는 쪽으로는 운행을 하지 않아 야속할 뿐이다.

시후 남단 시후십경 중 하나인 '화항관어(花港观鱼)'를 알리는 비석이 세워진 정자 옆에는 물속의 물고기들보다 관람객들만 들끓어 누가 누구를 보는 것인지 의아할 지경이다. 수양버들과 어우러진 꾀꼬리 소리(柳浪闻莺), 꽃이 피기 전이긴 하지만 연꽃 정원(曲苑风荷), 석양이 물들진 않았지만 뇌봉탑(雷峰夕照) 등 십경 중 몇 가지는 상상력을 보태어 감상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입장료 30원을 따로 내고 뇌봉 위에 서있는 977년 부처님 상투머리 사리를 봉안키 위해 세운 것으로, 1924년 무너지고 2002년 그 위에 현대식으로 다시 세웠다는 뇌봉탑(雷峰塔)으로 올랐다. 오월 국왕이 오월 국왕이 왕비 황씨의 출산을 경축하여 세운 탑이라는 일설을 상기시키듯 '뇌봉탑'과 '황비탑(黄妃塔)'이라는 두 현판이 반대편 입구 처마에 각각 걸려 있다.

시후에서 바라보는 뇌봉석조(雷峰夕照)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후, 시내, 맞은편 징츠쓰(净慈寺) 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뇌봉탑 위에서 조망하는 장관 또한 십경 중 하나로 꼽아도 좋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시까지 관람객 입장을 받는 징츠쓰(净慈寺) 문은 굳게 잠겨있어 지에칭(戒清) 스님과의 재회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시후 남측 뇌봉탑 주위는 관람을 마친 유람객들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어 보인다. 택시를 잡을 수도 콜을 할 수도 용이치 않아 버스만이 유일한 탈출구이다. 가까스로 버스를 바꿔 타며 시후 동편 시내로 이동했다.


자전거를 지쳐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구지(杭州旧址) 기념관과 항저우 하이관(杭州海关) 건물을 차례로 들러보았다. 닝보 지역을 제외한 저장성 전역과 해안선 1225㎞에 달하는 해역 및 개항 16곳을 관할하며, 12개 산하세관, 8개 밀수 단속분국, 5개 외판사무소를 두고 있는 항저우 관, 시계탑과 그 위로 솟은 표쪽한 첨탑이 상하이 관을 연상케 하는 건물의 위용이 만만찮다.

항저우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 어느새 '하늘 아래 천당' 항저우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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