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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l 23. 2021

호도협 차마고도를 걷다.

@쉐바설산 기슭에서 바라본 호도협과 옥룡설산

호도협 속으로 들다.
바다에 접해 있고 산이 없는 상하이는 아침이 일찍 온다. 오늘도 창밖이 훤히 밝아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네 시 언저리다. 이곳에 도착해서 주어진 미션에 임하며 나름대로 치열한 봄을 보내고 첫여름 첫 휴가를 맞이했다.

윈난의 쿤밍 따라 리장 등을 다녀올 계획에 따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홍챠오 공항행 첫 전철을 기다린다. 공항에 도착 후 C항공사 A320기에 올라 좌석번호 31E 맨 뒷좌석에 자리를 했다. 매 열마다 좌석이 6개이니 약 186명이 탑승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국도 국제선 노선은 대폭 줄었지만 국내선은 호황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비행기는 예정 시각보다 50여 분 늦은 08:25 쯤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여 한참만에 뭉게구름 위로 올라 정상 고도에서 수평을 유지하며 쿤밍으로 향했다.

쿤밍에 도착하면 곧바로 열차로 네 시간 거리 리장으로 이동할 것이다. 첫 일정으로 호도협 차마고도 트래킹 계획을 잡았기 때문이다. 통상 호도협 차마고도 트래킹은 리장에서 가까운 상호도협 입구를 출발해서 중호도협 차마객잔에서 일박 후 티나 객잔이나 하호도협까지 이어지는 일박이일 코스가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우리 일행은 당일치기 차마고도 트래킹을 위해 리장 역에서 호도협 깊숙이 자리한 티나(Tina) 객잔으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 상호도협 입구 쪽으로 거슬러 오는 역방향 코스를 선택했다.

따리의 얼하이(洱海)
리장 기차역

11:10경 쿤밍 창쉐이(长水) 공항에 안착했다. 입국장으로 나오니 건물 바깥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에어컨 바람처럼 쿨하게 온몸을 덮쳐온다. 기온 21도로 상하이와는 딴판이다. 예상과 달리 공항과 마찬가지로 지하철에도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한적하고 쾌적하다. 오늘따라 일찌감치 보채는 허기를 지하철 개찰구에 못 미쳐 자리한 식당에서 이 고장 음식 쌀국수(米线) 한 그릇으로 달랬다.

쿤밍의 전철 노선은 1호선부터 6호선까지 단출한데 특이하게 5호선이 빠져 있다. 두 번 환승하여 쿤밍역에 도착한 후 13:55발 리장(丽江)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쿤밍역을 벗어나자 차창 밖에 펼쳐지는 야트막한 산과 들판이 어우러진 모습이 우리의 산야와 비슷해 보인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1800미터를 넘어섰다. 화동 지역과는 달리 쿤밍에서 따리(大理)를 거쳐 리장으로 가는 철로는 많은 터널을 지난다. 햇빛을 인 새하얀 뭉게구름과 짙푸른 산야가 대조를 이루며 차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따리가 가까워지자 철로 옆으로 채광의 흔적들이 여러 곳 스쳐 지난다. 대리석을 비롯해서 철 주석 등 광석들의 주산지였다고 한다. 따리는 리장에서 쿤밍으로 복귀하는 길에 들르기로 한 곳이다. 한동안 얼하이(洱海) 호수와 백설탕처럼 구름이 층층 쌓인 창산(苍山)이 어우러져 멋진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따리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험한 산악지대가 많아 철로가 지상과 터널이 반반쯤 교차한다. 마을을 관통하지 않고 산과 마을의 경계를 따라 철로를 놓은 배려가 엿보인다. 높이를 지향하는 대도시의 모습과는 달리 산지로 둘러싸인 드넓은 평원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모여 있는 낮은 주택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서쪽이라 해가 더 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후 다섯 시경인데 높은 산과 낮게 드리운 구름에 둘러싸인 공간은 어느새 해그름처럼 어둑해졌다. 리장 역에 들어설 무렵 차창에 사선으로 가는 빗물이 흘러내리더니 기차가 정차하자 소나기처럼 굵은 비가 되어 쏟아진다. 17:33분경 바이두 앱에서 부른 차(打车)를 타고 두 시간 거리라는 중도협과 하도협을 가르는 지점 호도협 깊숙이 위치한 티나 객잔(Tina's guest house)으로 출발했다.

호도협 입구(우)

도로변 산기슭에 드러난 땅의 속살이 피를 토해 놓은 것처럼 붉디붉다. 해발 2600여 미터 고도의 상쾌한 공기가 여름이라는 계절을 잊게 한다. 따리(大理-丽江) 고속도로에서 샹리(香格里拉-丽江) 고속도로로 갈아타니 멀리 산정에 눈을 이고 어깨춤에 백옥 같은 구름을 두른 하바쉐산(哈巴雪山)에 이어 그 오른쪽으로 뾰족한 봉우리의 미려한 옥룡설산(玉龙雪山)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개를 쳐들고 양쪽을 번갈아 올려다보며 연신 감탄사를 토해낸다.

잦아들었던 빗방울이 완전히 그치자 정상 부분 산군 위 구름 뒤로 드러난 비췻빛 하늘색이 경이롭다. 옥룡설산 높은 기슭을 따라 건설 중인 샹리(香丽) 고속도로 연장도로를 버리고 금사강(金沙江)과 나란히 난 서경선(西景线) 도로로 내려선 택시는 이내 호도협 깊은 계곡 속으로 들어설 것이다.

황톳빛 금사강이 협곡으로 들어설 준비를 하며 담담히 도로 옆을 따라 흐른다. 호도협 입구에서 막아서는 안내원의 설명에 따라 매표소에서 입장료 45원을 치르니 협곡의 하바 설산 허리춤으로 난 길을 내어준다.

도로 입구 높은 기단 위에서 다리를 쭉 펴고 도약하는 호랑이 像을 올려다보면서 이곳을 '호도협(虎跳峽)'이라 이름 지은 것은 호랑이의 용맹함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계곡이 깊고도 좁았다는 것을 말함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 이름에는 좁고 깊고 험준해서 인간의 발길을 쉬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하바 설산 기파른 기슭을 깎고 다듬어 낸 좁은 도로는 곳곳이 공사 중이고 포장과 비포장 길이 교차하고, 속으로 들어 갈수록 낭떠러지는 까마득히 깊어져 언뜻언뜻 천 길 아래 협곡의 굽이쳐 흐르는 황톳빛 금사강(金沙江) 물줄기가 보일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리고 오금이 저리다. 차창을 내리니 냉기를 머금은 공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한편으론 협곡 건너편 직각으로 내리 뻗은 옥룡설산 암봉의 날 선 능선과 깊게 파인 골은 거칠고 사나워 감히 범접키 어려워 보이고, 무채색 암봉들 사이에 흰 눈이 쌓인 봉우리를 드러낸 주봉의 모습은 신비롭다.

마주오는 공사용 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지나가기를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하는 택시는 거친 노면에 뒤뚱거리며 간간이 하바설산에서 길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에 진흙탕이 된 길바닥도 조심조심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호도협 깊숙히 자리한 Tina's House

예상과 달리 두 시간 반 만에 기와지붕 대문 옆 벽면에 'Tina's guest house'라고 적힌 유스호스텔 앞에 도착했다. 안도감이 밀려들고 협곡과 설산의 비경 속을 달려왔다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하기까지 하다. 티나 객잔은 가운데 마당을 끼고 협곡을 내려다보는 식당과 하바쉐산(哈巴雪山)을 등진 객실로 쓰이는 2층 건물이 마주 보며 반듯하게 앉아 있다.

여권을 건네받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진행하는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의 체크인이 더디다. 인기척에 마당에서 문 밖을 내다보던 그 여성으로 자신을 '티나'라고 걸걸하게 소개하여 숙소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었다. 남편과 함께 1998년 객잔의 문을 열어 23년간 운영해 오고 있고 자녀 둘은 독립하여 샹그릴라에 거주한다고 한다.

순박한 5~60대 남녀 각 두 명이 객잔의 일손을 도와주고 있다. 그들 중 남자 한 분이 식사를 주문받고 여성 한 분은 주문대로 요리를 해서 식탁에 올려 낸다. 돼지고기 볶음 가지볶음 미펀(米粉)에 '샹그릴라' 병맥주를 반주 삼아 드니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을 듯한 행복감이 밀려든다.

식당 유리창 밖 협곡 너머로 보이는 옥룡설산의 황홀한 비경은 아쉽게도  어느새 내려앉은 어둠에 묻혔다. 내일 본격적인 트래킹을 앞두고 날씨가 쾌청하길 바라면서 협곡의 거센 물소리를 뒤로하고 객잔 방에 몸을 누인다.


차마고도 트래킹

호도협 차마고도 트래킹에 설레는 마음으로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몸을 일으켰다. 객실 문을 여니 지붕과 옥룡설산(玉龙雪山) 암봉이 서로 맞닿을 듯 머리 위로 좁은 공간 터놓았고 그 사이로 아직 어둠에서 깨어나지 않은 미명의 하늘 한 조각을 내놓고 있다.

문 앞 벤치에 앉아 새벽을 몰고 오기라도 하는 듯 객잔 아래쪽 호도협에서 위로 울려 퍼지는 급류 흐르는 소리에 한참 동안 귀를 기울였다. 여섯 시경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서니 인기척에 일어난 듯 옆방의 객잔 주인 티나와 그녀의 남편이 차례로 잠이 묻어 있는 얼굴로 마당으로 나선다.

마담 티나를 도와 대문을 가로질러 놓은 빗장을 걷어내고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티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신발 끈을 조이며 차마고도 들머리까지 안내해 주겠다는 그녀 남편의 뒤를 따라 객잔을 나섰다. 아내와 그는 23년 전에 이 티나 객잔(Tina's guest house)을 열었고 자녀 둘은 독립하여 샹그릴라에 거주한다고 했다. 호도협 저쪽 샹그릴라는 작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속의 이상향 샹그릴라를 닮았을까.

쉐바설산 기슭에 자리한 티나 하우스

객잔에서 하바설산(哈巴雪山) 기슭을 따라 잠시 오르니 차마고도로 이어진 길이 나왔다. 어느덧 날은 호수에 푼 검푸른 빛 물감이 번지며 점점 옅어지듯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옥룡설산과 하바설산 사이 2,000여 미터 깊이의 호도협, 그 계곡을 내려다보며 하바설산 허리춤으로 난 옛 차마고도의 일부인 이 벼랑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차마고도(茶马古道)는 중국 윈난성과 쓰촨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 교역을 위한 중국과 티베트 네팔 인도를 잇는 길이 약 5000㎞ 평균 고도 4,000여 미터의 길로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 앞선 BC 2세기경부터 존재한 무역로로 알려져 있다.

여러 설산(雪山)과 진사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 등이 만든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아찔한 협곡을 잇는 차마고도를 통해서 윈난의 차(茶)를 비롯하여 청두의 비단과 말 소금 약재 곡식 등 다양한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문명과 물산이 앞서고 풍족한 곳에서 뒤처지고 부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는 자연의 이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객잔은 발아래로 멀어지고 머리 위로는 하바설산 능선 마루가 하늘에 닿은 장벽처럼 이어진다. 연신 셔트를 누르며 20여 분을 오르니 차마고도로 드는 문인양 제주에서나 볼 수 있는 정낭처럼 정주석에 걸개 세 개가 걸려 있어 그 옆 틈새로 들어섰다.

암봉들 사이사이에 옅은 구름이 걸려 있고, 계곡을 뒤덮은 안개구름은 발아래서 호도협을 따라 물 흐르듯 서서히 움직이고, 그 속 천 길 아래 깊은 곳에서는 폭포 소리처럼 호도협 물소리가 우렁차게 울려온다. 황홀한 경관의 자연과 하나 되니 입속에서 저절로 노랫가락이 웅얼웅얼 튀어나오려 한다.

"살아가는 동안 한 번도 안 올지 몰라
 사랑이라는 감정의 물결
 그런 때가 왔다는 건 삶이 가끔 주는 선물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는
 널 만났다는 건 외롭던 날들의 보상인걸"
- 노래 <내가 아는 한 가지> 중 -

차마고도에서 바라본 호도협과 옥룡설산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옥룡설산 머리에 구름이 스쳐 지난다. 발아래 아찔한 낭떠러지에 긴장을 하며 걷다가 가끔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면 어질어질 어지럼증이 인다. 고도가 2,200 미터를 훌쩍 넘어섰지만 해발 약 2,000미터 객잔에서 하룻밤을 묵었으니 고소 적응이 되었으리라. 그 객잔은 하바설산 산정 쪽에서 흘러내린 능선들의 허리춤을 굽이 돌 때마다 간간이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새 능선 뒤로 완전히 사라졌다.

차마고도는 상호도협 초입에 위치한 나시 객잔까지 굽이지며 해발 2200~2600여 미터 사이를 오르내린다. 가파른 길 위 군데군데 쌓인 짐승의 무더기 배변물은 말 트래킹의 흔적으로 짐작된다.

'올드타운 샹그릴라(Old town Shangrila)'라는 글이 적힌 바위 옆을 지나고, 앙증스러운 작은 들꽃에 눈길을 주고, 오색 다르촉이 걸쳐 있고 '관음협(观音峡)'이라 적힌 절벽에 기대어 앉은 작은 암자를 스쳐 지나고, 하바설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흰 폭포 소리를 들으며 나아가니 막혔던 귀가 뚫리고 답답했던 마음이 서늘하게 트인다.

협곡 건너편 옥룡설산 산정에서 골골 파이고 갈라진 결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포효하며 굽이쳐 흐르는 황톳빛 금사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더한다. 하바설산 능선이 호도협 쪽으로 돌출한 모퉁이 머리에 닿을 높이로 절벽을 깎아 길을 낸 곳을 지나자 용수동(龙洞水) 폭포가 장관을 드러낸다. 어디서 떨어지는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이 폭포는 은하수를 절벽에 거꾸로 걸쳐 놓은 듯하고 넓게 떨어져 부서지며 반짝이는 물방울은 은실로 수놓은 여인의 치맛자락을 활짝 펼친 듯하다.

쉐바설산에서 차마고도로 떨어지는 용수동 폭포
차마고도와 염소 떼

염소 떼 한 무리가 저 멀리 길 앞쪽에서 몰려오다가 길도 아닌 가파른 비탈로 몰려 내려간다. 협곡 설산 구름 폭포 안개 양 떼 목동 등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이요 그림 속 모습처럼 느껴진다.

모퉁이에 앉아 쉬고 있는 젊은 남녀 한 쌍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니 중도객잔에서 일박을 하고 티나객잔 쪽으로 향한다고 한다. 외국인 여성 일행에 뒤이어 다가오는 한국인 여성 둘은 중도객잔을 거쳐 이곳까지 5시간 걸렸고 티나객잔을 거쳐 샹그릴라로 갈 예정이란다. 이곳 트래킹 코스는 우리와는 반대 방향 코스가 일반적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트래커들과 스쳐 지날 것이다

중도(中途, Half way) 객잔에 도착하니 '천하제일 화장실(天下第一厕)'라는 푯말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객잔 마당을 지나 계단을 따라 화장실로 내려가니 서너 개 넓게 뚫린 벽 너머로 가파른 계단식 옥수수밭이 보이고 고개를 쳐드니 온통 구름으로 치장을 한 옥룡설산의 신비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히 '천하제일'이라 이름할 만하다 싶다.

중도객잔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하바설산의 가파른 경사면에 주택들과 밭이 어우러진 모습이 이어진다. 협곡 아래 황톳빛 금사강과 마을 사이 아래쪽 포장도로와 차마고도를 지그재그로 잇는 길이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바위 암반 길이 다하고 초목이 무성한 비탈길과 잡목 구간을 벗어나니 강하게 내려쬐는 햇빛이 따갑다. 풀벌레 합창 소리가 해발 2300여 미터의 선선한 공기와 비경에 빠져서 잊고 있던 여름의 한중간을 지나고 있는 계절을 상기시켜 준다.

마을 도로 옆 화지아오(花椒) 나무 열매를 따고 있는 노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콩알만 한 그 열매 하나를 입 속에 넣으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조심해서 그 열매를 살짝 깨무니 이 혀 잇몸 입술까지 통증처럼 번지는 얼얼함이 한참 동안 가시질 않는데, 그 노인은 일그러지는 내 얼굴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는다.

산기슭 납골묘처럼 생긴 묘지들, 소형 레미콘으로 시멘트를 반죽하여 축대를 쌓고 있는 마을, 마주 오던 롭이라는 잉글랜드 출신 상해 국제학교 선생과 짧은 대화를 나눈 소나무 숲길, 이채로운 모습의 세죽(细竹) 군락지 등을 지나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금사강의 우레 같은 물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발길을 재촉한다.

차마(茶马, Tea Horse) 객잔을 지나고 노파가 과일과 음료 몇 가지를 늘어놓은 움막이 있는 이 코스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2620여 미터 모퉁이를 돌면 내리막 비탈길을 지나 무난한 길이 이어진다. 공기는 서늘하지만 길은 가팔라 아찔하고 얼굴과 몸은 온통 땀범벅이다.

'차마고도 24 굽이길(道拐段)' 표지석을 지나자 땀을 뻘뻘 흘리며 중국인 현지 가이드를 앞세운 외국인 두어 팀이 가파르고 굴곡진 돌 바윗길을 올라오고 있다. 그 군데군데 말똥이 널브러져 있어 말조차 오르기 힘든 길임을 짐작할 수 있다.

큰 뱀에 놀랐다는 아일랜드 젊은 커플,
장족(壮族) 아저씨, 보이스카웃 일행, 매점 아주머니, 하바설산에 올랐다며 큰 배낭을 짊어지고 우리를 추월해서 지나갔던 청년, 한 무리의 말과 마부 등과도 인사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두 시쯤 평탄한 길이 나오며 트래킹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산행 중 만난 하이커들과 달리 우리는 역방향의 대체로 평탄한 코스를 택했으니 '금수저' 트래킹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옥룡설산은 여전히 하얀 구름을 두른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빛나고 있다.

트래킹 시작 8시간 20여 분만인 14:40경 나시(纳西雅阁) 객잔에 도착했다. 버섯 돼지고기볶음 가지볶음 쌀밥에 샹그릴라 맥주 한 컵을 곁들여 늦은 점심을 들었다. 포만감과 만족감에 빠져들 무렵 트래킹 내내 맑던 하늘에서 홀연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소나기처럼 굵어졌다.

티나객잔에서 나시객잔까지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차마고도 20km여 트래킹 완주를 축하해 주는 걸까, 아니면 트래킹의 흥분과 감동을 촉촉이 적셔주려는 것일까?

나시족 객잔에서 트래킹을 멈추고 리장과 샹그리라 쪽으로 버스가 지나는 다리 입구 치아오 터우(桥头)까지 빠오처(包车)를 했다. 방금 리장행 버스가 지나갔지만 재치 있는 나시족 젊은 기사가 단체승객을 태워주고 리장으로 회차하는 빈 버스를 수소문하여 우리를 태워가게 했다.

이번 차마고도 트래킹은 오랜 준비나 치밀한 사전 계획도 없었지만 코스, 시간, 날씨 등 모든 면에서 조화롭고 딱 맞아떨어진 것이 실로 천우신조였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 좌측에 금사강(金沙江)을 끼고 버스는 리장을 향해 거침없이 달린다. Lao. '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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