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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Oct 21. 2021

뤄양(洛阳), 중원의 숨결

천하제일명찰 소림사

계절을 재촉하는 가을비
퇴근 후 집에 들렀다가 서둘러 이리로(伊利路) 전철역으로 향했다. 중국의 중원 허난성 뤄양(落阳)행 야간 침대열차를 탈 예정이다. 예상보다 일찍 지하철 상하이역에 도착해서 역 광장으로 빠져나오니 비가 흩뿌리고 있다. 최근 며칠 모호한 계절을 질책하며 가을을 재촉하듯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깊숙한 가을 언저리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방에서 밀물처럼 몰려든 인파에 휩쓸려서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 출행에 동행키로 한 L이 집에서 방금 출발했다고 하니 도착하려면 한 시간, 기차 출발시간까지는 두 시간의 여유가 있다. 때가 되어 출출해하는 배를 달랠 겸 역사 내 식당에서 즉석 국수 한 그릇을 시켜서 들었다.

상하이를 출발해서 장쑤성을 가로질러 허난성의 개봉 정저우 뤄양을 거쳐 우루무치까지 중국 대륙의 동남쪽에서 서북쪽 가장자리로 횡단해서 달려갈 침대열차에 올랐다. 기차는 예정된 21:00에 출발했다. 10시쯤 3층 침대 2개를 마주 보게 배치한 침대열차 2등석 잉워 3층에 몸을 뉘었다.

장거리 침대열차와 뤄양역

앉은 채 허리를 굽혀도 머리가 닿는 3층 침대는 을 누이니 의외로 편안해서 금세 잠이 들었다. 5시경 눈을 뜨니 허난성의 동쪽 끝 상치우(商丘) 역에 기차가 잠시 멈춰 섰다. 바깥은 아직 어둠에 싸여 있다. 다시 몸을 누였다가 예정된 도착시간 30여 분을 앞두고 몸을 일으켰다.

어느덧 정저우를 지나고 뤄양을 향해 달리고 있는 열차 창밖 철로 옆으로 뚝뚝 끊어지고 황톳빛 몸뚱이를 드러낸 구릉지대가 스쳐 지난다. 창가 간이의자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승객들이 빨랫줄의 제비들처럼 줄지어 앉아 있다. 젊은 여성 둘은 서로 얼굴 화장을 해주느라 여념이 없다. 여성 승무원은 좁은 통로 승객들 사이를 지나며 뤄양에서 내릴 승객들에게 하차할 시간이 "빠디엔 빠(08:08)"라고 소리친다.

중원의 고도 뤄양
시골스런 뤄양 역사를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쉬이 빠져나왔다. 도로공사가 한창인 역사 주변은 열차에서 내렸거나 타려는 사람들과 호객꾼과 차량들이 어우러져 혼잡스럽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오히려 편해지는 느낌이다.

상하이와는 달리 공기가 싸늘하고 거리 사람들의 두터운 옷차림이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고 상기시켜 준다. 일기 예보는 이곳과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갑자기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배낭을 열고  얼른 재킷을 꺼내 입었다.

용문석굴과 박물관을 둘러보려던 첫날 일정을 뤄양에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소림사로 바꾸었다. 갑갑한 실내 박물관보다는 탁 트인 야외 산림을 먼저 찾아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기차역 옆 버스터미널에서 소림사행 버스표(09:50발 24원)를 예매하고 부근 식당에서 훈툰(馄饨)과 미셴(米线)을 한 그릇씩 시켜서 아침을 들었다.

개찰구를 통과하니 벽이 없는 대형 창고처럼 생긴 건물 안 플랫폼마다 각지로 향할 버스가 승객들을 태우고 있다. 우리가 탈 버스는 소림사를 경유하여 허창으로 가는 버스로 소림사 입구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터미널을 출발한 낡고 느린 버스가 낙양성 동문을 나서서 중간중간 멈추어서며 한두 명씩 승객을 태우고 30여 분이 지나자 시내를 벗어났다.

뤄양 버스터미널과 소림사로 가는 길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연신 경적을 울려대며 앞서 가는 느릿한 승용차와 트럭들을 추월한다. 백마사 옆을 지나 '현장 고리(玄奘故里)' 표지판을 스쳐지나고 멀찍이 물러앉은 산군에 둘러싸인 평원을 가르며 나아간다. 추수가 끝난 들판엔 누렇게 퇴색한 마른 수수깡이 늘어섰고 도로 옆 농가들 뜰마다 껍질을 벗긴 샛노란 옥수수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쑹산(崇山) 자락으로 접어들기 직전 참점촌(参店村)에서는 굴착기가 2차선 도로를 점령하여 양방향 차량들이 멈추어 서서 10여 분 동안 꼼짝을 못했다. 한참만에 길이 열리자 버스가 힘겹게 쑹산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올라 12시경 소림사 풍경구 입구에 몇몇 승객을 내려놓는다.

천하제일 명찰 소림사
소림사는 북위 효문제(孝文帝)가 495년에 세운 사찰로 도읍인 낙양과 마주 보는 쑹산(崇山) 소실산(少室山)의 오유봉(五乳峰) 기슭에 자리한다. 쑹산(崇山)의 동편 봉우리 24개 태실산(太室山)과 서편 봉우리 36개 소실산(少室山)을 가르는 해발 550여 미터 고갯마루 소림사 입구의 공기는 더 썰렁하게 느껴진다.

'쑹산 소림(崇山少林)' 글이 음각된 석재 패루를 지나고 입장표를 끊어 '천하제일 명찰(天下第一名刹)'이라 쓰인 일주문으로 들어섰다. '소림사(少林寺)'라는 현판이 걸린 아담한 크기의 산문으로 향하는 길 오른편 넓고 높은 계단 위에 웅장한 무술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쿵후의 발원지 중 하나로 알려진 소림사는 '하늘 아래 공부는 소림에서 나오고, 소림 공부는 천하의 으뜸(天下功夫出少林 少林功夫甲天下)'이라고 했다니 영험한 도량으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그 명성에 걸맞게 2010년 유네스코 세계 등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소림사 경내

산문을 들어서니 천왕문에 이르는 돌길 옆에 수령 천 오백 년 은행나무와 함께 당수도 영춘권 등 여러 무예 종파들이 세운 각종 비석들이 도열하고 있다. 위압적인 표정과 역동적인 자세의 사천왕들의 오싹한 시선을 벗어나 대웅보전 뜨락으로 들어섰다. 마당 좌우측에 4층 고루와 종루가 당당하게 자리하고, 대웅보전 안에서는 비계를 가득 설치하고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대웅전 앞 대형 향로에서 타오르는 향의 연기와 진한 향내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향로 앞에서 젊은 여인들이 향을 꽂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발원을 한다. 저 젊은이들은 필시 살아갈 앞날에 대한 기복과 행운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구복은 언감생심이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누에는 이틀 반나절 짧은 시간 동안 1200~1500m의 실을 토해내서 고치를 짓는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만든 무게 2.5그램의 고치에서 실을 다시 뽑아내는 일조차 쉽지 않을진대, 긴 인생길에서 내뱉은 거친 말과 부정한 손짓 몸짓과 시기하고 미워했던 마음과 음험한 생각들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걷어내기가 어찌 쉬울까 싶다.

"할머니, 이곳에 자주 오세요?"
"때가 가까왔으니까 마음 깨끗하게 닦으러 매일 오제."

칠 년 전 금정산 산행 후 범어사로 내려올 때 보재루 불이문 천왕문 일주문 등 문을 하나씩 나설 때마다 뒤돌아서서 합장을 하던 어느 나이 많은 보살의 말씀이 떠오른다.

장경각 앞뜰 거북 기단 위 비석들은 두터운 벽돌 갑옷을 입고 있다. 대웅전 뒤편에는 특이하게  방장실이 자리하고, 그 뒤로 입설정(立雪亭)이 좌우측에 문수전과 보현전을 두고 자리하고 있다. 그 뒤편 '시방 성인(西方圣人)'이라는 세로 글자 현판이 걸린 도량(道场) 안 벽면에는 예닐곱 명씩 모여 담론 하는 구법 수도승 무리를 그린 빛바랜 벽화가 보이고, 돌 벽돌 바닥은 무도 수련의 흔적으로 움푹 꺼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 좌우측에 지장전과 관음전까지 규모와 격식이 있는 사찰의 형식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중국 여느 사찰에서 흔히 보이는 군더더기나 허장성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허장성세가 없고 고졸한 품격이 돋보이는 소림사

방장실 옆 객당(客堂)에는 1965년생 석영신(释永信) 방장 스님이 소림사를 찾은 유명인사들과 만나는 모습을 비롯한 활동상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걸려 있고, 이곳에서 만들었다는 판매용 검도 몇 자루가 진열돼 있는데 예사롭지 않은 검기가 스려 있다. 입구 옆 출구 쪽으로 거슬러 나오며 국화차 등을 판매하는 소림 약국을 둘러보고 2시 20분경 경내를 빠져나왔다.

소림사 옆 천편일률 같은 모양새의 전탑 수 백 개가 측백나무들과 키재기 하듯 솟아 있는 탑림(塔林)을 지나 이조암(二祖庵)으로 오르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해발 980여 미터 지점 금두꺼비 기원대(金蟾祈福台)가 자리하고 건너편 높이 솟은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그 많은 쑹산의 봉우리 가운데 최고봉은 어디일지 가늠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통상 정상을 지나는 종주산행 후에 덤으로 산사에 들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중국에서는 형편상 그 반대로 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크다. 케이블카 두 곳 중 천 길 암벽에 걸린 현공 잔도(懸空棧道) 쪽을 택하지 않은 것도 출행 전에 공부를 게을리한 탓이다. 


소림사는 중국 내 여타 지역의 이름난 사찰과 견주어 규모나 건축물의 크기 등이 유별나지도 않고 오히려 소박하고 고졸하다. 그럼에도 '천하제일명찰'이라 칭송받고 있는 것은 천하의 으뜸이라는 소림 쿵후(少林功夫)의 발원지요 명맥을 이어가는 자부심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쿵후(功夫, Kungfu)는 청나라 말기 '무술'의 별칭으로 사람과 자연, 객관적 사회규율의 전통적 교화 방식이자 개인 수행을 의미한다.(@출처: 百度百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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