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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Jun 18. 2021

두보초당 初夏喜雨

중국 어디까지 가봤니?

청두(成都)에서의 마지막 날, 달콤한 잠에서 빠져나와 아침을 달게 먹었다. IBI*라는 이 숙소는 하룻밤 오만 원 남짓 숙박비에 아침까지 거저 제공하니 배낭 여행객에게 딱 걸맞은 곳이다. 날씨가 흐린 탓에 따가운 햇볕이 없어 바깥 산책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날이다.  

두푸초당(杜甫草堂) 입구 맞은편 초당 광장 도로변에 자전거를 세웠다. 광장에서는 나이 지긋한 남녀 노인들이 수련복 차림으로 물 흐르는 듯 간드러진 현악 음률에 맞춰 태극권 연습이 한창이다. 중국 어느 도시를 가나 그곳 출신 옛 명사들의 동상이나 기념관 등 기념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광장 옆 좌우에 삼소(三蘇)와 삼조(三曹)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삼소는 그렇다 하더라도 삼조 동상이 이곳에 세워진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서로 짝을 맞추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북송의 산문가 소순(蘇)과 그의 두 아들 식(), 철()은 모두 당송팔대가에 속하는 문장가로 삼소라 불린다. 한편, 한위(汉魏) 때의 조조(曹操)와 그의 두 아들 비(), 식(植)은 한헌제(漢憲帝) 연호인 건안(建安) 몇 년 전부터 위명제(魏明帝) 마지막 해인 239년까지의 문학을 일컫는 건안문학(建安文學)을 대표한다고 한다. 꼿꼿한 심정으로 공훈을 쌓고 싶은 야망을 노래한 문학으로 그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여러 도시의 박물관과는 달리 무후사 아미산 낙산대불 등과 같이 두보초당도 입장권을 구매해야 들어갈 수 있다. 50위엔 입장권을 사서 입구로 들어섰다.

무후사를 비롯한 중국 내 여느 명소들과는 달리 '두보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린 초당 입구 건물을 비롯해서 정원과 잘 어우러진 건물들은 소담하다. 짧은 하급 관료생활과 일평생 불우한 삶을 살면서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자 했던 시성(詩聖)의 기품과 고결함을 역설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징뚜탕(景杜堂)'이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로 들어서니, 모택동 등소평 주은래 강택민 유소치 이선념 이란청 등 중국 국가 지도자들과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몇 분을 비롯한 외국 국빈들의 두보초당 방문 사진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초당 서원(草堂书院)'은 전실과 강학당 서고 등이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쓰허위엔(四合院)과 흡사하여 건물군 자체가 외부와 격리된 하나의 또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정원 위 사각으로 뚫린 잔뜩 흐린 하늘이 보일 듯 말 듯 실 같은 빗줄기를 간간이 긋고 있다.

뒤쪽 깊숙이까지 이어진 기념품점 차관(茶馆) 등 정원풍의 상가가 이채롭다. 이처럼 명승지나 기념관 등에 전통문화의 격을 느낄 수 있는 차관이나 그 고장 고유의 정서가 담긴 기념품을 파는 상점 등이 들어서 있는 것은 중국 여느 도시에서나 접할 수 있다. 장삿속이라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명승지가 역사 속 멀리 동떨어진 유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

'란원(兰园)'으로 들어서니 작은 연못과 수백 개 화분마다 난초가 무성히 잎을 뻗친 정원이 담장에 포근히 둘러싸여 있다. 담장 둘레 회랑 벽에는 두보의 시를 적은 목판이 빼곡히 걸려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하루 종일 시를 읽으며 난초와 벗 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 듯하다.

그루터기 느티나무 밑동처럼 뿌리를 한 곳에 두고 수십 개 줄기와 가지를 하늘 높이 뻗친 무성한 대나무 군락들, 두보의 시를 적은 바위와 담장, 높고 낮은 정자들, 여러 모습의 두보 像, 화려한 꽃무늬 비단잉어들이 유영하는 연못, 그 속을 거니는 관람객들,...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野徑雲俱黑 江船火独明
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내리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 불빛만 밝네.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 두보, <春夜喜雨> -

희우정(喜雨亭) 옆 두보가 50세 무렵 이곳 초당(草堂)에 머물 때 지었다는 시 '춘야희우(春夜喜雨)' 기념비와 두보 동상은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핫 스폿이다. 마침 햇빛을 가려주는 빗방울이 조금씩 긋고 있으니 봄밤은 아니라도 단오절을 하루 앞두고 내리는 '초여름 좋은 비(初夏喜雨)'라 이름해도 좋을 듯싶다.

두보의 사당으로 가는 진입로 양쪽에 줄지어 선 치자나무들이 피워 올린 희고 노란 꽃봉오리에 코를 갔다 대니 진한 향내가 코 깊숙이 스며든다. 두보가 잠시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郎)이라는 관직에 몸담아 그의 사당에는 '공부사(工部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당에는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이두(李杜)로 불리는 시선(诗仙) 이백을 비롯해서 그를 흠모했던 북송의 시인 황정견(1045-1105)과 남송 육유(1125-1210)의 소상(塑像) 함께 모셔져 있다.

두보는 48세에 짧았던 관직 생활을 버리고 54세 때까지 청두에 머물다가 멀고 험했던 귀향길 배 안에서 병을 얻어 둥팅호(洞庭湖)에서 59세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안사의 난이 평정되고 난 후 장안에서 잠깐 동안 좌습유(左拾遺)라는 하급 관리를 하고 있던 758년 47세 때 지은 시, <曲江>에는 혼란한 시대 궁핍하고 불우했던 삶 중에도 풍류를 잃지 않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엿보여 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한다.

一片花却春 飘万点正愁人。
细推物理须行 何用浮名绊此身。
꽃잎 떨어지고 봄날이 가는구나,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 근심에 젖게 하네
만물 이치 생각하면 꼭 즐겨야 하리니, 허명에 자신을 묶어 무엇하리오

朝回日日典春衣 每日江頭层
酒债常行有 人生七十古稀。
조회에서 돌아오며 날마다 봄옷을 저당 잡혀, 매일 강어귀에서 취해서 돌아오네. 외상 술값은 가는 곳마다 있지만,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다네.
- 두보, <曲江> 中 발췌 -


13:10경 두보초당 정문을 나서 호텔 부근으로 돌아와서 '완자 미엔(豌面)'이라는 간판이 걸린 국숫집에 들어갔다. 부부 노모 아이 등 온 가족이 조리 서빙 등 역할을 분담하여 손님을 맞는 이 식당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큰 것보다 조금 저렴한 10위엔짜리 작은 그릇이면 충분하다는 주인 말대로 완자 미엔(豌面), 따오샤오미엔(刀削面), 훈툰(馄饨) 세 가지를 작은 그릇으로 주문했다.

면에 딸린 계란 프라이 하나가 담긴 접시를  두 손으로 식탁으로 가져오는 식당집 어린 아들이 기특해 보인다. 작은 식당의 정직하고 성실한 직업의식과 화목하고 진한 가족애와 더불어 저렴하고 소소한 면 세 가지가 맵다고만 알려진 쓰촨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허물고 단박에 나를 쓰촨 차이(四川菜) 마니아로 만들어 버렸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영웅들이 잠든 뜰을 지나 당나라 시성()의 숲을 거닐고 이제 청나라 때의 저잣거리 관쟈이샹즈(寬窄巷子)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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