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제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다. 어제 퇴근길엔 장맛비처럼 제법 굵은 비가 쏟아졌다.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오늘 아침엔 평소보다 조금 더 이르게 눈을 떴다. 네 시경인데 날이 새어 창밖은 벌써 훤하게 밝았다.
청두행 비행기가 10시로 연착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상하이 도착 후 처음으로 이용하는 항공편에 연착을 경험하게 된다. 계획했던 일정에 조금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는 시간을 충분하고 넉넉하게 안배해야 되겠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갑자기 늘어난 시간 덕분에 햇반에 김치와 햄으로 든든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거기에 모닝커피 한 잔, 그리고 잠깐이지만 '콩'이라는 앱을 열어 '출발 FM과 함께'라는 한국 방송에서 날아오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까지 듣는 호사를 누렸다. 한국에 있을 적 출근길에 즐겨 듣던 음악 방송을 국경 너머 멀리 타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니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실감 난다.
7시 반쯤 L과 합류하여 집 부근 이리로 역에서 네 정거장째인 홍챠오 공항 T1역에 도착했다. 전철역에서 200여 미터 지척에 있는 T1으로 걸어가서 2층 C 항공 창구에서 발권을 했다. 예상과 달리 공항은 한산하고 탑승 홀 입구 젊은 보안요원의 X-ray 검색은 꼼꼼하다.
제1여객터미널 출발 홀 탑승구는 T1부터 T27까지 있는데 대기실은 넓고 쾌적하다. 유리창 밖 너른 활주로를 사이에 두고 멀리 T2가 눈에 들어온다. 이따금씩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 가장자리에는 많은 여객기들이 늘어서 있다. C 항공 9C8887편 A321기는 예정 시각보다 2시간여 늦게 홍챠오 공항을 이륙해서 청두(成都)로 향했다. 좌석은 빈자리 하나 없이 만원이다.
중국 쓰촨 성(四川省) 성도(省都)인 청두(成都) 하면 촉한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무후사 두보초당 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 세대의 학창 시절이나 젊은 시절 누구나 한두 번쯤 삼국지를 읽어보고 두보의 시 한 두 편쯤은 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비(劉備)가 세운 촉한의 수도로 삼국지의 중심무대 중 한 곳이요 시성(诗圣) 두보가 초당을 짓고 체류하며 많은 시를 지은 곳이기도 하다.
그에 더하여 청두는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해서 예로부터 '하늘이 내린 땅(天府之都)'이라고 불렸으며, 매운 쓰촨 음식의 본고장이요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지도를 살펴보니 청두 주변의 명승지로 아미산(峨眉山) 낙산대불(乐山大佛) 쓰꾸냥산(四姑娘山) 등이 눈에 띈다. 청두에 대한 명성을 실제로 확인해 보고 가능하면 불교 성지 아미산과 낙산대불도 둘러볼 요량이다.
13:48에 쌍류 공항 T1에 착륙했다. 앱에서 예약한 H 호텔(酒店)로 갔는데 정부 방침상 외국인은 투숙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부근의 다른 호텔로 옮겨 지루한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훌쩍 네 시가 되었다. 방에 짐을 내려놓고 서둘러 무후사(武侯祠)로 향했다.
입장부터 난관이다. 자동발매기는 외국인이라 사용할 수 없고 매표창구로 가서 표를 사려해도 알리페이나 즈푸바오 대신 현금으로 밖엔 구매할 수 없다고 한다. 상하이를 비롯한 화동지역 도시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워낙 넓은 대륙의 나라이니 지역마다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듯도 하다. 비상금 삼아 휴대폰 케이스 아래 접어서 넣어둔 100위엔 지폐를 꺼내 주고 입장권을 손에 쥐었다.
무후사(武侯祠)는 촉한을 세운 유비의 사당인 한소열 묘(漢昭烈庙)와 같은 곳에 있는 제갈량을 모신 사당으로 중국 내 주군과 신하가 함께 모셔진 유일한 사당이라고 한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운데 정원을 두고 사방으로 건물이 들어서 있는 사합원 건축 양식이 눈에 띈다. 정원 한가운데로 난 통로를 따라 일렬로 이문(二门) 한소열 묘(漢昭烈庙) 과청(过厅) 무후사(武侯祠) 삼의묘 (三义庙)가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한소열 묘 전각 안에는 '업소고광(業紹高光)'이라 쓰인 편액이 걸려있다. 한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제왕이었던 서한의 고조(高) 유방과 동한의 광무제(光) 유수의 제업을 이어받았다는 뜻으로 촉한이 삼국 정통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가운데 유비를 중심으로 아들이자 2대 황제였던 유선과 손자 유심의 조상(彫像)이 자리하고 있다. 유비 사당과 벽으로 분리된 우측 방은 명나라 때 '관제(关帝)'로 봉해진 관우의 사당으로 황제 의관을 갖춘 관우와 관평 주창 등이 좌측 방은 장비의 사당으로 장포 등이 함께 모셔져 있어 충과 의로써 형제를 맺은 삼형제의 가족 사당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유비의 사당 앞 정원을 가운데 두고 좌우측 전각 안에 황제를 배알 하듯 도열해 있는 방통 간옹 여개 부융 비의 동화 조운 황충 마초 등 문무신들의 조각상을 살펴보며 소설 '삼국지' 속 장면들을 떠올려 본다.
한소열 묘 뒤쪽 계단을 내려가서 '무후사(武侯祠)'라는 편액이 걸린 과청(过厅)을 지나면 '명성이 천하에 가득하다'라는 뜻의 '명수우주(名垂宇宙)' 현판이 걸린 제갈공명의 사당이 마주하고 있다. 소열제의 사당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지만 자신의 사당인 무후사로 불리는 묘원(庙园)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것은 신의 경지에 이른 지략과 주군에 대한 변함없는 충의(忠义)가 만세불변의 표상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공명의 조상 우측에 아들 제갈첨 좌측에 손자 제갈상의 조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손자 제갈상은 채 20세도 안된 어린 나이에 적국 위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공명의 사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을 보여주는 산 교육의 장이나 다름없다. 일개 범부라 할지라도 명말청초 계몽사상가였던 고염무(顾炎武, 1613-1682)의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兴亡 匹夫有责)'이라는 말도 피해 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공명 사당 뒤쪽에 유비 관우 장비의 조상을 함께 모신 삼의묘가 있고 전각 뒤 작은 정원 도원(桃园)에는 세 의형제의 돌 조각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소열제의 혜릉(惠陵)은 보수공사 중으로 들어갈 수 없고 능묘를 둘러싼 좁고 긴 회랑에는 붉은빛 벽과 무성한 대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만 북적인다. 각종 기묘한 형상의 분재들로 꾸며진 분경원(盆景園)을 둘러보고 무후사 경내를 빠져나오니 훌쩍 6시가 다 되었다. .....
금리(金里)는 무후사 박물관의 일부로 무후사 정문 오른쪽 입구를 따라 대지 3만㎡, 건평 14천여㎡, 길이 550m여에 걸쳐 형성된 상가 밀집지역이다. 진한(秦漢) 삼국(三國) 때부터 전국에 널리 알려진 서촉 역사상 가장 오래된 상업적인 거리 중 하나로 삼국의 문화와 청두 민속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패루로 들어서니 그 초입에 '낙원촉풍(乐园蜀风)'이라는 공연과 함께 차를 파는 집에서 춤, 마술, 차 따르기 묘기, 만담, 서예, 촨쥐(川剧) 등을 콤팩트하게 엮은 공연을 감상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온갖 종류의 가게들이 하나의 건물처럼 붙어 늘어서 있다. 생소한 모습들에 눈이 팔려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해 가며 고개를 양쪽으로 번갈아 돌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천에 왔으니 사천의 맛을 체험해 볼 요량으로 길거리를 따라 걸어가며 미각이 궁금증을 발동하는 몇몇 음식을 조금씩 시도해 보았다. 기름에 튀긴 두부에 각기 다른 양념을 첨가한 두부 꼬치, 국수류, 단술과 맛이 흡사한 음료, 여러 부위 부속물 등을 마라탕에 데친 후 양념을 뿌린 꼬치 등을 맛보았다.
길 옆 과일 가게에서 깝질을 벗긴 두리안과 수박을 한 팩씩 사서 맛을 보며 갈증을 달래며 입속에 남아 있는 쓰촨의 매운 양념 기운을 배속으로 쓸어내렸다. 자전거를 타고 인민공원 앞을 지나 천부 광장 쪽으로 갔다. 촉도 대도(蜀都大道)를 사이에 두고 모택동 동상이 천부 광장 너머 휘황하게 조명을 밝힌 빌딩군을 내려다보고 있다. 천부 광장을 한 바퀴 돌고 호텔로 돌아오니 11시가 가까웠다. 기껏 반나절이지만 벌써 청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느낌이다. 고도(古都)의 밤이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