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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Nov 01. 2021

관중(關中)의 동쪽 관문 통관(潼關)

통관리, 시성 두보의 노래


출행 이튿날 날씨는 여전히 10도 아래로 썰렁하다. 중국 고대 10대 관문 중 하나인 통관(潼关)을 둘러볼 요량으로 용문역에서 08:35 시안(西安)행 열차에 올라 화산 북역을 향해  출발했다. 중국 오악(五岳) 중 서악인 화산과 통관을 저울질하다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화산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객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객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창밖으로 드넓은 평원 끝없이 펼쳐진다. 삼국지 영웅들이 말을 달리던 그 평원을 고속열차가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한다. 둔턱처럼 낮은 언덕배기에 '중국화능(中国火能)' 풍력 발전기가 끊임없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마치 탈탄소 그린 에너지 정책의 메카처럼 보인다.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중립화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최근 풍력·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발전량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2021년 1분기 석탄 위주의 화력발전량 1.4 조 KWh는 총 발전량 1.9 조 kWh의 75%로 절대적 비중을 점하고 있다.



20여 분을 달려온 열차가 두어 개 터널을 지나며 산악지대로 접어들며 창문 밖으로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출발 30분 만에 도착한 삼문협(三门峡) 남역에 잠깐 정차 후 다시 출발한 열차 오른편 차창 너머로 황허(黄河)가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의 8대 고도(古都) 중 정저우, 뤄양, 카이펑, 안양 등 네 곳이 황하의 남쪽 이곳 허난성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지금 세계 문명의 요람 중 하나요, 청말 국초 계몽사상가였던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치켜세운 황하문명이 태동한 중원의 품속에 안겨 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 시간 여만에 화산 북역(华山北站)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내리니 철로 너머 남쪽으로 한 무리 군웅처럼 눈을 가득 채우며 다가서는 웅장한 화산 산군이 감탄을 자아낸다. 역사 밖 너른 광장 건너편에 완연한 가을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부신 위용을 뽐내는 화산에 한참 동안 넋을 빼앗겼다. 그 장관에 끌려 이심전심 동행 L과 즉시 화산으로 노정을 바꾸었다.


따처(打车, 택시를 부름)를 해서 본토박이라는 운전수에게 화산 관람에 관한 정보를 얻어가며, 부근 상점에서 두터운 옷을 빌리고 서봉(西峰) 행 케이블카 탑승 표를 미리 구입했다. 해발 고도가 높은 서봉까지 케이블카로 오른 후 남동중(南东中) 세 봉우리를 거쳐 북봉에서 케이블카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라고 한다.


지난 2주일간 비바람으로 인해 화산 관람이 중단되었다가 오늘부터 다시 여행객들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천우신조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십칠 년 전 노동절 연휴 때 서안을 거쳐 화산을 찾았었다. 그때는 남봉까지 올랐지만 비가 오고 안개도 잔뜩 끼어 장님 코끼리 만지듯 화산 암봉의 무채색 몸통만 더듬다가 비 맞은 생쥐꼴이 되어 하산을 해야 했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화산 여행자센터에서 샨시성(陕西省) 젠캉마(健康码)가 말썽을 부렸다. 중국은 하나의 나라이지만 성(省)과 성(省) 경계를 넘을 때마다 공항 철도역 버스터미널 등에서 휴대폰 앱을 통해서 코로나 19 음성 그린(Green) 표식을 확인해야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샨시성이 외국인에게 요구하는 개인정보 중 최근 입국일이 말썽을 부려서 그린 표식을 획득하지 못하고 애만 태웠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에서는 '완장'은 무소불위의 두려운 표식이다. 지금은 코로나19 방역을 담당하는 위건위(国家卫生健康委员会)가 보이지 않는 완장의 주인이다. 한 시간 반 가량을 애를 태우다가 눈앞에 화산을 두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삭이며 소중한 시간, 방한복 대여료, 택시비 등을 허비하고 애초 예정했던 통관으로 향했다. 


통관에서 내려다본 왼편과 오른편
여와(女媧)像과 새로 조성된 고성촌(古城村)

화산 북역에서 뤄양 쪽으로 20km여를 거슬러 12시경 통관 고성에 도착했다. 섬서(秦), 산서(晋), 하남(豫) 세 성(省)의 교차점인 섬서성 웨이난시(渭南市)에 위치한 통관(潼关)은 장안(现 서안)에서 뤄양으로 가는 길목이다. 동서남북으로 링바오(灵宝), 화산(华山), 친링 산(秦岭山), 황허(黃河)와 각각 접한 전략적 요충지로 "경기 최고의 험지(畿内首险)”, “네 진의 목구멍(四镇咽喉)”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언덕 위 주차장에 내려서 통관 관문으로 가는 길에 중국 상고 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여신 여와(女媧)가 자신이 빚은 아이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조각상에 한동안 눈길을 빼앗겼다.

통관은 황허를 굽어보는 높은 언덕배기 위 가장자리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3층 높이 장방형 벽돌로 쌓은 기단 위에 3층 지붕의 웅장한 건물은 서편엔 '통관(潼关)' 동편엔 '통관 박물관(潼关博物馆)' 현판이 걸린 채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통관 박물관 언덕배기 모퉁이에 서니 발아래 강변 고속도로의 차량들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지르며 번잡하게 오가고 있다. 그 너머에는 간쑤 성(甘肃省) 니아오슈산(鸟鼠山)에서 발원하여 닝샤후이족자치구와 산시성(陕西省)의 관중 평원(关中平原)을 지나 818㎞를 달려온 웨이허가 황허의 품속으로 안겨 들고 있다.

황허는 웨이허를 끌어안으며 합류점 겨드랑이에 넓은 모래 하상을 드러낸 채 황톳빛 물줄기를 유유히 동쪽으로 펼치고 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요 찬란한 왕조들을 태동시킨 눈앞의 위대한 두 물줄기는 마치 유구한 역사의 꿈틀대는 연대기를 눈앞에 펼쳐 놓은 듯하다.

통관 뒤쪽 언덕배기 비탈에는 옛 고성을 재현하려는 듯 옛 건축양식의 건물군이 빼곡히 들어선 큰 마을이 조성되고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현판을 하나씩 달고 있는 건물들은 선분양 후 입주 방식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은 인적이 드물지만 머지않아 이곳도 중국 내 여타 역사 유적지들처럼 수많은 여행객들로 들끓게 될 것이다.

시성 두보(杜甫, 712-770)는 하급 관리들의 횡포와 전란으로 인해 백성들이 겪은 생이별의 아픔을 담은 시 여섯 편(三吏三別)을 남겼다. 그중에  "긴 창으로 힘들여 싸운다면 예부터 한 사람이 만 명을 당해내는 곳이다(艱難奮長戟 萬古用一夫)"고 읊은 <관리(潼關吏)>라는 시는 두보가 안녹산의 난 때에 이곳을 지나며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병졸들 얼마나 고달팠으랴?
관 길에 성을 쌓았으니.
구름에 잇닿게 줄지어 선 목책은
새도 날아 넘지 못하겠구나.
士卒何草草 築城關道
連雲列戰格 飛鳥不能踰
<관리(潼關吏)> 중 발췌

통관을 뒤로하고 애초 방문키로 계획했던 함곡관(函谷關)은 교통편이 불편하고 시간에 쫓겨 건너뛰고 뤄양으로 회귀키로 결정했다. 멀지 않은 곳 노자가 푸른 소를 타고 홀연이 지나갔다는 '노자출관(老子出关)'의 현장을 지나치자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신에 박물관 등 뤄양의 명소 한 곳쯤은 더 볼 수 있을 것이다. 13:50경 따처한 차량에 올라 화산 북역으로 향했다. 왕복 2차선 아스팔트 구도로의 한쪽 차선은 탈곡한 옥수수 건조장으로 변했다. 운전수는 익숙한 듯 마주오는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목적지에 닿았다.


쿤밍 서산 용문에서 만난 <노자 출관도>
뤄양 동문 앞 노자像
뤄지아모(위)와 비앙비앙면(아래), 화산북역 광장(우)

화산 북역 광장을 마주 보며 자리한 식당가의 한 식당에 들렀다. 비앙비앙면(比昂比昂面), 뤄지아모(肉夹馍), 양피(凉皮) 등 샨시(陕西) 지방 고유 음식들이 메뉴판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 통관에서 유래했다는 뤄지아모와 비앙비앙면을 맛볼 수 있을 줄을 어찌 기대했겠는가. 특별한 본고장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며 화산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식당 한쪽 벽면에 걸린 이백의 시 <장진주(將進酒)>가 시선(詩仙) 다운 호방하고 인생을 꿰뚫는 시구로 흥취를 돋운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황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장진주(將進酒)> 中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중 "주께서는 한쪽 문을 닫을 때, 다른 창문을 열어 놓으신다(When the Lore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는 마리아의 대사처럼, 어느 한쪽에서 희망이나 재미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다른 곳에 의미 있는 인생 여정이 기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여전히 철로 건너편에서 웅위를 자랑하고 있는 화산을 뒤로하고 뤄양행 열차에 올랐다.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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