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행 둘째 날, 푸저우(福州)의 문묘를 둘러보고 취안저우(泉州)로 이동했다. 여행과 출행이라는 단어는 유사하지만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글에 비유하자면 여행이 형식에 구애됨 없이 체험이나 감상 등을 적은 에세이라면, 출행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나 할까.
상하이에서 일찌감치 외국인 투숙 가능 여부와 빈 방이 있는지 등을 미리 확인해 두었던 ‘하오띠팡 호텔(好地方酒店)’로 직행했지만 한 발짝 앞서 호텔로 발을 들인 여성 둘에게 마지막 남은 방이 돌아갔다.
곧바로 바이두(百度) 지도를 검색하니 가까이 미식가(美食街)에 자리한 가성비 좋은 ‘바이지아(百佳)’라는 호텔이 있어 얼른 택시를 불러 이동해서 투숙 절차를 마쳤다. 이 호텔도 위치가 그리 나쁘지 않고 숙박료도 더 저렴해서 만족할 만하다. 숙박료와 보증금 격으로 요구하는 야진(押金)을 결제하고 키를 건네받아 짐을 풀고 땀을 씻으니 한여름 더위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듯 개운하다.
당초 취안저우 출행을 계획하면서 반드시 찾을 곳으로 시박사 옛터(市舶司 遗址)를 첫머리에 올려놓았었다. 중국 역사상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세계 각지로 교역로를 연 곳이 이곳 취안저우요, 관세 징수와 선박 감독 등 대외 교역을 관할하던 최초의 국가 기구로서 오늘날의 세관 격인 시박사 터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저녁 여섯 시가 되자 날이 어두워지고 가로등과 상가 식당 등의 불빛이 거리를 밝혔다. 호텔 부근 거리에 대형 하이네켄 맥주 광고판을 내건 식당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것이 특이하다. 네덜란드가 17세기 한때 이곳과 가까운 대만을 점령하기도 했었지만, 어떤 연유로 1837년에 설립된 네덜란드의 라거 맥주 브랜드가 이곳 식당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좁은 미식가 입구 패루를 지나서 투먼가(涂门街) 대로변 보행로를 따라 1.3km 거리에 있는 옛 시박사 터로 향했다. 도로변을 따라 서로 붙어 연이어 늘어선 건물의 2층 부분이 보도 위를 덮어 덮개 역할을 하는 거리 모습은 흡사 홍콩의 골목을 연상케 한다. 길 건너편에는 거리를 따라 늘어선 건물 벽면이 은은한 조명을 받고 있는 모습이 신비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통후이 관악묘(通汇关岳庙)는 건물 지붕의 용마루마다 두 마리 용을 올리고 용마루 끝과 내림마루 끄트머리를 하늘로 날아갈 듯 한껏
치켜올린 십여 채의 전각들이 어울려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는데, 휘황한 조명에 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이 황홀할 지경이다. 관리인이 입구에서 관람 시간이 지났다며 출입을 단속하고 있어 열린 대문 틈새로 내부를 빼꼼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청정사(请凈寺)라 불리는 석조 모스크 형태의 사원이 나오는데, 담벼락의 나란히 뚫린 직사각형 깊숙한 두께 창틀에 스펙트럼을 만들며 비친 조명이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문묘의 거대한 석조 패루를 스쳐 지나고 투먼가(凃门街)가 끝나고 이어지는 신먼가(新门街)로 접어들자 스마트폰 안내 앱이 좌측 좁은 골목길 ‘리청구 수이꺼우 2호(鲤城区 水沟 2号)’에 위치한 목적지 시박사 터로 안내한다. 마치 숨겨 놓은 보물찾기 하듯 2~3층 높이 빼곡한 주택가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따라가니, 눈에 띌 듯 말 듯 주택의 숲에 파묻힌 단층의 붉은 벽돌 건물이 막다른 골목처럼 앞을 막아선다.
시박사의 잔존 부속 건물 수선궁(水仙宫)으로 보이는 그 건물 오른쪽 모서리 부분 전면과 측면에 '송 취안저우 시박사 유지(宋泉州市舶司遺址)'라 적힌 어깨 높이의 돌 표지석이 각각 하나씩 세워져 있다. 전면 표지석은 1998년에 “취안저우시 보호 문물”로 지정되었음을 알리고, 측면의 것은 1984년에 시 문물관리위원회에서 세웠다고 알린다. 아무도 찾지 않는 주택가 어둑한 좁은 골목의 작은 표지석이 천년의 역사를 훌쩍 뛰어넘어, 이곳이 고대 번성했던 해상교역 중심 도시의 무역을 관장했던 터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박사는 정부가 관리하던 대외무역기구로 당나라 때 최초로 창설되어 송원명 시대로 이어졌는데, 북송 때인 971년 광저우에 이어 항저우, 밍저우(明州, 현 닝보시), 취안저우(泉州), 미저우(密州, 현 산동성 诸城)에도 설치되었다. 송나라 때 대외무역이 크게 발전하면서 동남 연해에 위치한 취안저우(泉州)가 동방 제일의 항구로 번성했다고 한다.
시박사는 해상무역 허가증 발급, 금수품(병기, 동전, 여성, 도망 군인 등) 단속, 귀항 선박 검사, 징세 등을 담당했는데, 남송시대 시박 수입은 국가 전체 세수의 약 15%에 달했고, 세수 증대를 위해 도자기와 비단 수출 등 무역활동을 장려했다고 한다.원나라 때에는 시박사의 폐단이 심해져서, 1293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시박사의 직책 범위에 대해 명확해 규정하는 법칙을 제정하고개정하기도 했다.
이곳을 비롯한 22개 유적지가 송나라 때인 1087년에 시박사가 건립된 중요한 고대 세관 유적지로서 2021년에 “취안저우, 송원 시대 중국의 세계 해양무역의 중심”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고증에 따르면, 당시의 시박사 건물은 1만 2천 평방미터 규모였다고 하며, 현재 시박사 터 내에 수선궁(水仙宫) 건물과 그 옆으로 물줄기와 배의 출입을 통제하던 수문과 수관이 남아 있다.
왠지 허허로워지는 마음에 취안저우 버킷리스트 하나를 갈무리하며, 손목시계가 이제는 허허로운 배를 채워야 할 시간이라고 알린다. 무거워진 발과 다리도 팍팍한 일정이 버겁다고 아우성이다. 어제오늘 제 할 일을 넘치도록 했으니 할 수만 있다면 국내 출장 후 귀임 때 격리기간 중 늘어난 뱃살에게 고된 일을 맡겼으면 좋겠다는 어쭙잖은 생각이 들었다.
호텔 쪽으로 돌아가는 길 문묘 광장에서 수백 명의 주민들이 모여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추는 광장무(廣場舞)를 펼치는 장면이 가히 장관이다. 투먼가(涂门街)와 곁가지 작은 거리들과 여러 식당들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특히 젊은이들이 많아 생동감이 넘치는 젊은 도시라는 인상이 든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곳을 피해 좁은 미식가 거리의 호텔 부근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충칭 식당' 간판이 걸린 식당 안에서 부부와 할머니 딸 등 식당 일가족이 손님이 없던 한가한 시간에 저녁식사를 막 끝내려던 참에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반긴다. 가지볶음, 시래기 삼겹 수육과 로컬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주인장은 주방으로 들어가고, 딸이 튀긴 콩과 미역무침과 함께 후이안현(惠安县)에서 생산되는 ‘후이촨 맥주(惠泉啤酒)’를 내온다. 맥주 한 잔에 길었던 갈증이 해갈되는 기분이다. 이어서 내어온 식물성 기름에 볶은 가지볶음을 한 젓갈 입속으로 넣으니 달콤 고소하면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이다.
여주인과 딸, 할머니 등 식당 가족과 말을 트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연세가 여든 하나라는 할머니와 그녀의 아들인 주인장은 이곳이 고향이고 온화해 보이는 안주인은 구이저우(貴州) 출신이라고 한다. 부부는 자녀가 셋인데 반찬을 내온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딸은 치아 기공을 전공하고 치과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국경절 연휴를 맞아 부모님 식당 일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는 취안저우에서 가볼 만한 곳을 묻는 말에 칭위엔산(淸源山)과 카이웬사(開元寺) 등을 추천한다.
푸저우에서 두 번, 취안저우 역을 빠져나올 때 한 번 등 어제와 오늘 세 번의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받았는데, 저녁을 들고 있는 와중에 현재의 소재를 묻는 방역국의 전화까지 받고 보니 "내 일거수일투족을 공산당 정부가 낱낱이 들여다보며 참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헛웃음이 나온다. 큰 양은그릇에 내어온 밥이 거의 비어갈 무렵 얇게 썬 돼지 삼겹살을 수육처럼 익혀 심심하게 쪄낸 시래기 맛이 나는 말린 나물에 얹어서 내어온다. 특별한 맛이 나는 반찬을 안주삼아 병에 남은 맥주를 작은 잔에 두어 번 더 따랐다.
긴 국경절 연휴라서 그런지 밤이 무르익어 가도 사람들 표정은 하나같이 느긋해 보이고 취안저우의 밤도 덩달아 넉넉해 보인다. 내일 첫 행선지로 칭위엔산(淸源山)을 마음속으로 점찍으며 출행 이틀째 날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