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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31. 2022

도자기 도시 이싱(宜兴)

서시(西施)를 닮은 차(茶) 주전자의 고장


모깐산(莫干山)을 뒤로 하고 이싱(宜兴)으로 향했다. 이싱이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작년 연말 상하이 서쪽 수향 저우좡(周庄)을 방문했을 때이다. 이싱에서 생산되는 도기 차 주전자(茶壶) 매점 두 곳이 거리를 조금 두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차례로 들러 보았었다. 그곳에서 '서시호(西施壶)'로 불리는 차 주전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의외의 기쁨이었다.

온전한 명칭은 서시유호(西施乳壶)인데 줄여서 서호(西壶) 또는 서시유(西施乳)라고도 부른다. 주전자의 주둥이, 두껑 정수리, 손잡이 부분이 각각 고대 중국 4대 미인 중 한 사람인 서시(西施)의 입, 유두, 잘록한 허리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명나라 때의 도예가 쉬여우촨(徐友泉, 1573-1620)이 창안한 차 주전자의 한 형식으로 말 그대로 서시처럼 아름답거나 서시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서시(西施)의 아름다운 용모를 차 주전자에 담아 표현해 낸 도예가의 기발한 발상과 그 온전한 조형미에 감탄이 절로 우러나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싱 자사(紫砂) 서시호(西施壶) (photo: baidu)
호텔 엘리베이터


언젠가 한 번 찾아보기로 점찍어 둔 기회를 오늘에사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모깐산 서쪽 안지현(安吉县)을 벗어나서 후위(沪渝) 고속도로에서 창춘과 선전을 잇는 G25번 창선(长深)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오른편으로 다가온 타이후(太湖)가 이싱시로 접어들 때까지 15km여를 따라오며 길동무가 되어 준다.

차를 운전하며 외곽도로를 달려서 호텔에 도착했으니 그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는 없으나 야트막한 구릉성 산지와 녹지 사이사이 낮은 주택들이 널찍하게 자리한 한적한 전원 도시라는 첫 느낌이 다. 예약없이 찾아간 롱베이산(龙背山) 산림공원을 남쪽으로 등지고 자리한 IBI*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땀을 씻었다. 호텔 접객 홀과 엘리베이트 가장자리의 장식장을 각종 도자기로 장식해 놓은 것이 도자기 도시(陶都) 이싱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완따광장(万达广场) 주변 상가를 둘러본 후 호텔 부근에서 쓰촨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들었다. 채소류, 버섯류, 해산물, 어묵, 육류, 면류 등을 원하는 만큼 골라 주면 훠궈처럼 매운 국물에 끓여 나오는 뜨끈한 '마오차이(冒菜)'가 하루 종일 더위에 달뜬 몸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손수 차를 몰아 300여 킬로미터를 달리고 더위 속에 모깐산을 둘러본 탓인지 객지에서의 낯선 밤이지만 쉬이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을 들고 배낭을 챙겨 10여km 거리에 있는 도자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관람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박물관 주차장 우측에 자리한 건물엔 각기 제 이름을 내건 공작실 5~60개가 입주해 있다. 그중 마침 '쑨리팡(孙利芳) 공작실'이라는 현판이 걸린 작업실 문을 열고 있는 여성이 눈에 띄었다. 집에서 막 출근했다는 그녀는 에어컨을 켜고 전기포트에 이싱 황차(黄茶)를 끓이며 낯선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 출신으로 19세부터 도예를 시작해서 올해로 25년째가 되는데 매일같이 출근해서 도기를 빚는다고 한다. 작은 잔에 따라 권하는 차를 들며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부탁해서 들었다.

도예 자격은 기술 수준에 따라 조리공예 미술사, 공예미술원, 고급공예미술사, 공예미술대사(大师) 등 단계별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녀가 이싱시 도예 전업 기술자격 인명록의 고급공예미술사 501명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리켜 보인다. 대학 졸업, 기술직 20년 이상 근무, 공예미술사 자격 취득 후 5년 이상 등을 고급 공예미술사의 자격 조건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 어느 성(省)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 명칭을 부여 받기까지 긴 세월 동안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을 인명록 속의 저 많은 도공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차를 두어 잔 든 후 최고 장인의 자리라는 따스(大师)의 위치에 곧 오르기를 바란다는 덕담에 손을 한 번 내젓는 그녀를 뒤로하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산 언저리 계단 위 사면에 왕궁처럼 높이 자리한 도자 박물관 1층 역사관 입구로 들어섰다. 벽면 자료가 "이싱은 중국의 도자기 도시(陶都)이자 타이후 주변 선사시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라는 자부심이 듬뿍 담긴 문구로 이 지역 도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설명문 옆에 전시되어 있는 BC7300~6000경 낙타돈 문화의 유물인 도기들이 7천년 전 선사시대부터 도기를 제작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고 있으니 의심을 거둘 수 밖에 없다.

너른 전시실 한쪽에는 고인류의 원시적 도기 제작법 그림 설명을 비롯해서 이싱 각지에서 출토된 신석기, 하상주, 춘추전국 등 고대의 도기들과 나란히 최근에 제작된 각양각색의 작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옛 것은 실용 위주라면 최근 만든 것들은 심미안적 예술성에 무게를 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청자 전시품 중 이싱 북부 꺼후(滆湖)에서 나온다는 게 따쟈시에(大闸蟹) 한 마리를 몸통에 얹어 놓은 <시에러우준(蟹篓尊)>이라는 작품은 이 지역 특색을 현대적으로 잘 표현한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 인물, 산수, 기하학 문양, 동물 등 다양한 사상과 소재와 형식을 담아낸 최근 작품들이 전통 위에 창조적 예술성을 더하여 도도(陶都)라는 명성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유약의 색채별로 분청, 매자청, 대청, 청회, 월백, 선어황 등으로 나뉜다는 설명은 이해가 갈 듯 하고, 장식의 종류에 따라 비홍, 요변, 개편, 감은사, 감백 등으로 분류한다는 설명은 생소하다.

벽 뒷편에는 진한(秦漢) 시기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유약 도기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진한 때의 것은 크고 화려한 장식이 더해진데 비하여 당송(唐宋) 시기의 것들은 당시 풍미했던 당삼채와 비교해서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고 옛 형식에 갖힌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대인 원명청(元明清) 시대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도기 전시품은 몇 점 되지 않을 뿐더러 이전 것들보다 오히려 소박해 보이기까지 하다. 옛 전통을 고집하는 고졸하고 단순 질박한 이싱 도기보다 경덕진 등 타 지역의 화려하고 미려한 도자기를 선호하게 된 세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옆 전시실에는 청나라 시기에 생산된 것으로 균일하게 짙은 색을 입힌 '균채(均彩)' 양식의 대형 도자기, 즉 이싱 균유도기(宜均)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기존의 틀을 벗어나 변화를 추구한 결과물인 셈이다. 청에서 민국 시기로 넘어가며 해외로도 전해진 보다 더 대담해지고 몸집도 커진 대형 채색 도기 작품들의 숲을 지나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랐다.

전시장 중앙에 원료인 자사 채취, 운반, 분류, 반죽, 성형, 유약 처리, 가마 작업 등 일련의 도자기 제작 과정을 모형으로 쉽게 설명해 놓아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 옆 벽면 선반형 전시대에는 원료인 오채(五彩), 오니(乌泥), 녹니(绿泥), 석황(石黄), 청회(青灰), 정요백(定窑白), 홍니(红泥), 자이(紫泥), 피청(皮青) 천청니(天青泥) 등 각종 광물 원석과 함께 정주(顶柱), 명침(明针), 거차(距车) 탑지(搭只) 등 생소한 이름의 제작도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이싱 도자기는 14세기경 차(茶) 문화와 결합되어 더욱 발전되었다고 하는데, 철 함량이 많고 성형이 쉬운 이싱 황룡산에서 나는 자사(紫砂)를 재료로 하여 다기 화분 문구 등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명청 시대의 자사 도기 명인들의 이름과 그들 중 일부 도공의 작품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도자기가 실용적 용도뿐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려나 조선 시대에 제작된 옛 도자기들은 거의 전부가 작자를 알 수 없는 것과 비교된다.

명나라 후기에는 이싱에서 도자기가 궁중으로 진상되고 17세기초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으로도 수출되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1915년 파나마 만국박람회는 이싱의 자사 도자 제품이 마오타이주와 함께 출품되어 중국 제품이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선뵈는 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출품되었던 대생(范大生)의 차 주전자(茶壶)를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마주하는 기쁨이 적지 않다.

전시관 출구 쪽에는 근현대 유명 도예가들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현대 작품들은 한 폭 산수화를 담은 것, 화조도, 인물상, 동물 모형 등 소재와 모양이 다채롭고 화병, 문구, 찬구(餐具), 연구(烟具) 등 용도도 다양하다.

어느새 관람객들로 왁자지껄 붐비는 도자 역사관을 두어 시간만에 빠져나왔다. 역사관 출입문을 등지고 좌우측에 마주보며 자리한 담위광(谭伟光)과 사지명(沙志明)의 수장품 전시관에는 각각 명 청 민국 시기의 도기들이 전시되고 있다. 담위광의 수장품들이 특히 다양성과 창의성이 돋보엿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2층 2호 전시실 청나라 중기에 제작된 도자기들은 역사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뛰어 넘는 걸작들로 빼먹지 않고 둘러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관 앞 계단을 따라 이어진 아래쪽 건물의 공예미술대사(大师) 한메이린(韩美林, 1936~, 제남 출신) 자사 예술관을 둘러본 후 쑨리펑의 작업실에 다시 들렀다. 갓 만들었다는 자사 차후(茶壶) 손잡이 부분을 보여주며 재차 차를 권한다. 어느덧 차(茶) 친구가 된 그녀와 황차 두어 잔을 나눈 후 "짜이지엔(再见)" 인사를 나누고 도자 박물관을 뒤로했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 미술작품전' 도록(圖錄) 속 작품

근처에 있는 이싱 출신 화가 우관중(吴冠中, 1919-2010) 예술관에 도착해서 출입문으로 들어섰는데 인적이 끈긴지 오랜듯 예술관 문이 굳게 잠겨 있다. 흰벽에 강남 지역 특유의 기와 지붕 건물인 예술관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 홀 한가운데 화가의 전신 동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폐관된 것처럼 건물 안팎으로 행색이 누추하다.

당대에 이름을 떨친 거장을 기념하는 예술관이 이처럼 내팽개쳐져 있는 사유가 무언지 의아할 뿐이다. 출입문을 나서며 문간방을 들여다 보니 노년의 관리인 얼굴엔 무력감이 짙게 배여 있다. 그가 책상 위에 쌓여 있던 "백년도도百年陶都" 주제로 작년 7월 이곳에서 개최되었 다는 '공산당 창당 100주년 미술작품전' 도록(圖錄) 한 권을 건네 준다.

도록에는 지난 100년 이싱의 중대 역사적 사건, 주요 건축물과 발전상, 역사적 인물 등을 중국화나 유화로 그린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두툼한 도록으로도 좀체 채워지지 않는 헛걸음의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렸다.

타이창과 중국 5대 담수호로 서울 면적의 네 배에 달한다는 타이후(太湖) 북변 가장자리 도로를 거쳐 상하이를 향하여 악셀을 힘껏 밟았다. 앞으로 한 잔 차를 마시게 될 때면 도도(陶都) 이싱과 묵묵히 전통을 잇고 있는 이싱 도공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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