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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pr 25. 2021

상하이 박물관

고대 유물의 숲을 거닐다


열일곱 해 전에 방문했었던 상하이 박물관을 다시 한번 둘러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이자, 때론 미래의 모습도 예견해서 보여주는 곳이 박물관이다. 그래서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영화 제목은 가슴에 와닿는다.


지하철 라오시먼(老西门) 역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고 대세계 역에 내렸다. 고가 보도를 건너서 상해박물관 쪽으로 다가가니 입장시간까지 십여 분 남았는데 박물관 정문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벌써 긴 줄을 만들고 있다.

상해박물관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무휴 무료로 일반인에게 개방되는데, 미리 온라인으로 관람 신청을 해둔 터라 입장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름 모를 동물 상이 박물관을 호위라도 하듯 정문 입구 좌우에 앞발을 세운채 정면을 향해 도열해 있다.

상해박물관의 전시면적은 12만m²로 1층에 고대 청동관(青铜馆)과 고대 조소관(雕塑馆), 2층에 고대 도자관, 3층에 중국 역대 서예관(书法馆) 역대 회화관(绘画馆) 인장관(印章馆), 4층에 고대 옥기관(玉器馆) 화폐관(钱币馆) 소수민족 공예관 등이 자리한다.

소장품은 주로 중국 고대 예술품으로 1급 문물 717건, 2급 문물 34,505건 포함 총 101,925건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번잡을 피하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안내 직원에게 물어보니 일일 방문객이 2~3천 명쯤 된다고 한다.



4층 화폐관
화폐관으로 들어섰다. 주상(周商) 시대에 나타난 쇳돌(鑛) 칼 등 실물 모양의 최초 화폐가 두세 점 전시되어 있는데, 주왕조 때 주조 화폐가 출현했다는 설명이다. 진한조위(晋韩赵魏) 등 춘추전국 시대 여러 나라들이 각기 독자적인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고, 위(魏)와 조(赵)에서 주조되기 시작한 가운데 구멍이 뚫린 원형 동전이 전형적인 화폐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전국시대 시기 한족뿐 아니라 연나라 등 북방 민족들이 사용한 첨수도(尖首刀) 모양 화폐도 전시되어 있다. 초나라에서는 금으로 음각한 화폐가 출현했고 진한(秦汉) 시대에는 원형 화폐가 보편화된 것이라 한다.

요금(辽金) 등의 화폐는 전시된 수량이 많지 않았는데 금원(金元) 때는 지폐도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동전이 명청(明清) 때까지 사용되어 왔고, 청대에 등장한 가운데 구멍이 없는 '호부 동원(户府铜元)'이 등장하여 동원(铜元)이라 불렸다고 한다. 1886년 푸지엔(福建)에서 기계로 제조하는 동전이 나왔고, 1890년 길림 지역에서 주조된 은전도 전시되어 있다.

명청(明清) 시기 외국 무역이 시작되면서 외국 화폐가 들어왔고, 건륭(乾隆, 1739-1796) 시기에는 종류와 유통량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출구 쪽 부근에 조선 일본 미얀마 파키스탄 안남 스위스 로마 네덜란드 독일 등 외국 화폐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조선 개국 497년'이라 새겨진 동전 등이 발을 멈추게 한다. 1889년에 제조된 것이니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방곡령을 내린 시기이다. 실크로드 유통 화폐와 중국 국내외 발행 갖가지 지폐도 전시되어 있는데, 섬세 미려한 청대 지폐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예술품이나 다름없다. 1시간이 훌쩍 지났다.

화폐관 맞은편 옥기관(玉器馆)으로 들어섰다. BC 6000년경 신석기시대 때의 유물로부터 칼, 동물이나 사람 모양 장식품, 빗, 비녀, 브로치, 주전자, 그릇 등 옥으로 만든 각양각색의 전시품들을 둘러보았다. 출구 쪽에 전시된 백(白) 청(青) 벽(碧) 등 색깔별 옥 제품 원석을 살펴보고 30분 만에 옥기관을 빠져나왔다.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따라 3층으로 내려가서 상주(商周)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인장들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을 30여 분간 둘러보았다.

그 맞은편 중국 역대 회화관은 전시품 재비치 등을 위해 4.6일부터 관람이 잠정 중단되었단다. 상해박물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전시관을 둘러볼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6.8일경부터 관람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2층 도자관
도자관 관람은 기원전 6800년경 선인동(仙人洞) 유적지에서 출토된 도편(淘片) 몇 조각으로부터 시작되어 BC3600~3000년경 앙소(仰韶), BC2400~2000년경 용산(龙山) 등 고대문화 도기들이 모습을 보인다.

기원전 도기들은 제기와 토용(土俑)을 닮은 것들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3세기경 삼국시대 오나라의 우저우(婺州)에서 제작된 인물용(人物俑)에는 기복 사상이 묻어 있다.

당나라 때 야오저우(耀州) 도기는 대체로 소박 검소하다. 7세기 전후 도기는 진한 삼채 유약과 기교로 어낸 여인상 기마상 문인상 천왕상 낙타 등 유물들이 당삼채(唐三彩)라는 독특한 색채와 예술성을 자랑하고 있다.  

허베이 곡양(曲阳)에서 10C 초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도자기는 채색이 없고 문양도 극히 단순 질박하다. 12~13세기 남송 때 저쟝성 롱촨(龙泉)에서 만든 푸른빛이 도는 도자기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해설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북송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비색청자(翡色靑磁)를 언급했듯이 당시 고려는 송자(宋瓷) 보다 뛰어난 상감청자까지 탄생시켰다는 사실에 생각이 닿았다.

장쑤 의흥(宜兴) 정촉진(丁蜀镇)에서 17~19C에 생산된 자기는 예술성이 보이는 자줏빛 주전자로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차 주전자의 전형이 된 듯 보인다. 송원(宋元) 시기 푸지엔 덕화요(德化)에 대량 생산을 되었다는 우윳빛 도자기는 유려하고 미려해 보인다. 명청 때에는 'Blanc de chine'이라는 순백색 자기가 서구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명청시대의 대표적인 도자 산지 징더쩐(景德镇)을 비롯하여 광둥 써완(石湾), 푸지엔 덕화(德化窯)와 쟝저우(漳州), 샨시 파화(法华), 허베이 치저우(磁州) 등도 유명한 산지였다고 한다.

징더쩐(景德镇)은 부근에 도토(淘土)가 풍부하여 한(汉) 때부터 도자기를 생산했으며, 송나라 때는 공품(贡品)으로 유명했고, 명나라 때는 어요(御窯)가 운영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중국 제1의 요업 도시로서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17세기에 제작된 청화 산수인물도(青花山水人物图) 필통, 오채 낙화유수도(五彩落花流水图瓶), 오채 대비초친도(五彩对备招亲图瓶) 등 산수 인물 어류 동물 화초 등을 푸른빛 물감으로 담아낸 도자기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중에 잉어가 몸을 비틀며 거친 물살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붉은빛 채색으로 큰 항아리 모양 도자기에 담아낸 '유리홍어조문항(釉里红鱼藻纹缸)'이라는 작품이 특히 오래도록 눈길을 잡아 두고 주위를 맴돌게 만든다.

우아함 섬세함 기발함 대담함 다채로움 등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징더쩐의 도자기들이 회화관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준다.

12시 반이 되어 도자관을 빠져나왔다. 허리가 뻐근하지만 홀을 가운데 두고 사각 복도를 따라 놓인 벤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시관을 둘러보다 피로에 지쳐버린 관람객이 모두 선점하여 빈자리 하나 없다.



1층 청동관
하(夏) 나라 때인 21세기경에 시작되었다는 청동기 시대(BC21~16C) 유물을 전시하는 1층 청동관에 들어서니 BC18~16세기경 제작된 술잔(酒器)과 그릇(肉食器)이 맞이한다.

이어 상나라(BC16-13C) 시대에 만들어진 짐주기(斟酒器) 음주기(饮酒器) 관주기(灌酒器) 등 여러 모양새의 술잔과 주전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말기 술잔은 나팔 모양 주둥이에 높이가 30cm 내외로 섬세한 문양이 음양각으로 새겨져 있어 실용성보다 예술성이 더 돋보인다.

술잔과 더불어 식기 창 칼 장식품 악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다양성 예술성 등에서 특출한 청동기 유물을 통해 상나라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상나라 말엽부터 서주 때까지(BC13-11C)의 청동기 중에서는 서주 시대의 덮개를 갖춘 식기 용문종(龙纹钟)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춘추전국 시대 코너로 넘어오니 둥근 몸통, 거북 머리 모양 주둥이, 세밀한 용 몸통 문양의 손잡이가 돋보이는 술 주전자 하나가 발길을 잡는다. 춘추 말기(BC6C초~BC476년) 오왕(吴王) 부차의 술병이라고 한다.

오월동주 와신상담 등 우리에게도 숙한 고사성어의 주인공 중 한 명이 사용하던 주전자를 눈앞에 마주하게 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넓은 전시장 저편에는 부차의 물통도 전시되어 있다. 오왕 부차를 직접 만난 듯 온몸에 전율마저 느껴진다.

서로 쟁패를 겨루며 중원의 패권을  다투던 웅지를 담으려고 한 듯 규모가 크고 뛰어난 기교와 예술성이 돋보인다. 서로 다투는 듯 유희하는 듯 여러 마리 용을 얽혀 놓은 북(鼓) 받침대는 가히 신기에 가까운 솜씨다.

춘추전국 시기 장강 하류 이남에 분포했다는 월족(越族) 청동기도 몇 점 전시되어 있다. 세 마리 비둘기 머리 모양 장식이 있는 담박한 식기(饮食器)가 화려 과장 웅장 기교 등이 듬뿍 담긴 다른 청동기들과 달리 왠지 모를 평온함을 준다.



운남 보닝현(县)에서 발굴된 여덟 마리 야크로 장식된 덮개를 가진 함(含)과 운남 강천현에서 출토된 청동 베개는 서한(BC206-BC8년) 때 제작된 청동기라고 한다.

전족(滇族)의 '무릎을 꿇은 여인상' 등 소수민족들의 유물들을 마지막으로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된 청동기시대 유물들의 보고 청동관을 한 시간 만에 빠져나왔다.

전시된 유물들도 놀랍지만 한편 저토록 오래되고 방대한 유물들을 완벽하게 발굴 보존 전시하여 자국의 역사와 문물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는 중국인들에게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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