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한가운데 주말이다. 한 시간 가량 차를 몰아 상하이에서 서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진샨(金山) 농민화촌에 닿았다. 안내도를 보니 농민화촌은 축구장 서너 개 크기 면적에 '중국 농민화 박람원'과 '단청인가(丹青人家)'라 불리는 농민화가 화랑 열다섯 채가 수로를 끼고 자리하고 있는 단출한 마을이다.
농민화의 기원은 사원의 종교화, 주택 장식 민속화 등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신 중국 수립 후 1950년대 말에 미술 장르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샨농민화에 대해 바이두(百度) 백과 등에 소개된 설명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하이 진샨 농민화는 진샨현 문화관에서 20여 명이 농민화 동아리를 조직하여 전문적인 창작 활동에 종사함으로써 국내외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민간예술에 뿌리를 둔 진샨 농민화는 낭만주의적 상상력으로 과장이 뚜렷한 과감한 예술적 발상과 조형적 특징을 이루고 있다. 소재는 농촌의 경치나 생활 단편에서 따온 것으로 선명 화려한 색채, 소박 간결한 필치로 각각의 농민화는 마치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으며, 고향에 대한 작가의 감정과 삶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진샨 농민화는 몽롱한 탐색에서 성숙하고 정형화된 발전 궤적에 이르기까지 지역 및 주변을 거쳐, 상하이 화단에 전해지고, 전국적인 '화향(畫鄕)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며, 국제 전시 교류를 통해 유럽, 미국, 아시아, 호주, 오세아니아 등 20여 개 도시를 휩쓸게 되었다.
1980년 베이징 중국미술관 첫 전시회의 큰 성공에 이어, 1981년 미국 워싱턴·뉴욕·로스앤젤레스, 벨기에 브뤼셀과 연방 독일에서 전시되며 '동양 민속 예술의 원천'으로 불리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미노미 출판사가 농민화 그림책을 출판했고, 체신부에 의해 우표와 엽서로 발행되고, 상하이 교통카드 도안으로 사용되는 등 각광을 받았고, 문화부에서 진샨현을 '중국 현대 민간 회화의 고장'으로 명명했다."
칭하이(青海) 지역 작품 <고원의 아침 햇살(高原晨曦)>
칭하이(青海) 지역 작품 <양털 깎기(剪羊毛)>
지린 지역 작품 <관동의 혹한(关东三九)> *三九: 동지로부터 세 번째의 9일간
지린(吉林) 지역 작품 <뉴타운 구경(逛新城)>
지린 지역 작품 <양돈 농가(养猪专业户)>
충칭 치장(綦江) 지역 작품 <용무인환(龙舞人欢)>
진샨(金山) 지역 작품 <춘우몽몽(春雨濛濛)>
진샨(金山) 지역 작품 < 어당(鱼塘)>
농민화촌 입구 좌측의 '중국농민화박람원'이라는 현판이 걸린 단층 목조 건물이 손짓한다. 박람원은 펑진 구쩐(枫泾古镇), 중국농민화의 기원과 발전 과정, 중국 각지 농민화 작품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곳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펑징(枫泾)은 남북조 시대인 520년에 형성된 1500년 역사를 가진 구쩐으로 연 350만이 찾는 A4급 국가 관광 명승구라고 한다. 작은 농촌 마을이 농민화라는 독특한 장르의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풍족한 물산과 인적 물적 교류의 장(場)인 구쩐 인근에 자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88년 봄 국가 문화부가 전국 51개 마을을 '화향(画乡)'으로 지정하면서 농민화 발전의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농민화가 화단에서 하나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까지는 정책적 지원도 한몫했음을 알 수 있다.
펑진 구쩐과 농민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이어 진열관 내부 벽면에는 시곗바늘 방향으로 칭하이, 지린, 충칭, 장쑤, 광동 등 중국 각지를 비롯한 이곳 진샨(金山)의 대표적 농민화 작품 네댓 점씩이 걸려 있다.
먼저 <양털 깎기(剪羊毛)>, <고원의 아침 햇살(高原晨曦)>, <토가 가무(土家歌舞)> 등 제목이 붙은 농민화를 비롯하여 벽화 탁본, 니와(泥娃), 목걸이 장식품, 채색 가면, 시장 탕카(唐卡) 등 칭하이(青海) 황쫑(湟中) 지역 작품들이 맞이한다.
그 오른쪽으로 벽면 전체를 채운 산 언저리 눈 덮인 들녘에 두루미 떼가 노니는 그림을 배경으로 지린 동펑( 吉林 东丰) 지역 농민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뉴타운 구경(逛新城)>이라는 작품은 목욕하는 여인들, 가득 찬 승객을 싣고 달리는 버스, 당구와 볼링을 하는 사람,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찻집, 길거리 가게, 양장점 등 도회지 풍경을 가로 세로 약 60 × 60cm 화폭에 빼곡히 담아냈다.
우리의 소위 '이발소 그림'을 연상케 하는 <양돈농가(养猪专业户)> 제목의 그림은 새끼들이 어미젖을 빠는 돼지우리 주변에 사람, 오리, 개, 닭 등이 어우러진 농가의 일상을 담았고, <두향(豆乡)>은 콩밭과 사람들의 모습을 노랑, 검정, 주홍 등 대조적 색채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관동의 혹한(关东三九)>은 화로에 손을 쬐는 할아버지와 곰방대에 불을 붙이는 할머니, 강보에 싸인 채 잠든 갓난아이와 그 옆 사내아이, 실을 감고 바구니를 엮는 젊은 부부, 웅크린 채 눈을 감은 고양이 등 한겨울 농가 방 안의 모습을 조감도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 담아냈다.
*三九: 동지로부터 세 번째의 9일간혹한기
주황과 황금색이 넘치는 <황금의 땅(金土地)>과 <헤엄치는 거북(乌龟戏水)>은 가을 추수 때의 농촌 마을의 풍요로움과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옆으로 광동 롱먼(龙门), 텐진 베이천(北辰), 저장 시우저우(秀洲) 지역 농민화와 윈난 관뚜(官渡)의 <용춤(龙舞官渡)>, 충칭 치장(綦江)의 <용무인환(龙舞人欢)>, 장쑤 보리(博里)의 <여가 시절(如歌时节)> 등 작품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곳 진샨 농민화가들이 그린 <금곡만창(金谷满仓)>, <어당(鱼塘)> <꽃과 새(花与鸟)>, <뇌봉탑(雷峰塔)> <춘우 몽몽(春雨濛濛)>, <소란스러운 주방(闹厨房)>, <향촌유(乡村游)> 등은 주로 강남 수향(水鄕)의 풍토와 인정을 묘사하고 있다.
중국농민화박람원
농민화가의 화랑겸 작업실 단청인가(丹青人家)
천웨이시옹(陈卫雄)공차이줸(龚彩娟) 부부(좌)/농민화가 작업 모습
그리기 연습하는 농민화 촌 아이들
주간지에 소개된 진샨(金山) 농민화
진열관을 나서서 펑징쩐(枫泾镇) 금독위원회의 마약퇴치 홍보성 그림들로 채워진 담장을 지나서 농민화가들의 화랑 쪽으로 발을 옮겼다. '단청인가(丹青人家)'라는 이름이 붙은 화가의 집은 작업실과 완성된 작품들이 빼곡히 걸린 화랑이 딸린 3~40여 평 단층 주택으로 1호부터 15호까지 모여 있다.
단청인가 1호는 올해 칠순이라는 천웨이시옹(陈卫雄)과 그의 부인 공차이줸(龚彩娟)의 화실이다.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작품들의 숲에 둘러싸여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고개를 이리저리 바쁘게 두리번거렸다.
노 화가는 친절하게 화랑 내부 벽면을 빼곡히 채운 작품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들려준다. 벽에 걸린 작품들 대부분은 부부가 함께 작업을 해서 그린 것들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들어간 항공 탑승권, 상하이 교통카드, 엽서 등을 탁자 위 서랍에서 꺼내어 벽에 걸린 원본을 가리키기도 했다. 찾아오는 외국인이 드문 탓인지 한국인이라는 말에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의해서 흔쾌히 응하며 부부 사진도 한 장을 찍어서 건네 드렸다.
그 옆 단청인가 2호 40대 중후반대 쯤으로 보이는 야오시핑(姚喜平)과 공친팡(龚勤芳)의 화실로 들어섰다. 오른편 벽면에 인물사진과 간략한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 부친과 모친에 이어 자신과 남편에 이르기까지 3대째로 30여 년 농민화를 그리고 있다는 공 씨가 화랑의 작품들을 정성스레 설명해 준다. 그림의 소재와 주제는 대동소이하지만 공동작업을 하는 옆집 화랑 노 부부와는 달리 공 씨 부부는 각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단청인가 1호 화랑을 둘러보며 꾹꾹 눌러온 "소품이라도 하나 구입해야지" 하는 욕구를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다. 가로 세로 각 한 뼘 크기 화폭의 야오시핑(姚喜平) 씨 작품 두 점을 손에 넣고서야 채근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구입한 두 그림에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았는데, 늦겨울에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다가올 봄을 알린다는 라메이(腊梅) 아래서 신명 나게 뛰어노는 강아지들 그림에는 <매화꽃 아래 밤놀이(腊梅下夜戏)>, 화가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 마을의 옛 모습을 그렸다는 그림에는 <꿈속의 진샨(梦里金山)>이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다.
야오시핑(姚喜平)의 작품 두 점
진샨 농민화(@photo 百度)
단청인가 5호로 들어서니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이 좁은 화실 안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다. 화실 뒤 좁은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젊은 아낙이 아이들을 타일러 탁자 앞에 앉히자 자신들이 그린 두툼한 연습용 스케치북을 들추며 연필을 집어 든다. 농민화가 어떻게 대를 이어 가업처럼 전수되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단청인가 1~6호는 이곳 출신 농민화가들의 화실이고 윈난, 지린, 샨시 장쑤 등 타지 출신 농민화가들의 7~15호 화실은 대부분 문이 잠겨 있다. 쑨원, 오바마 등 인물화가 걸려 있는 대련 출신 화가의 화랑, 샨시(陕西) 출신 화가의 화랑, 자리를 비운 장메이링(张美玲)의 화실 등을 훑어보고 농민화촌 마을 관람을 마감했다.
진열관과 두 화랑에서 마주한 농민화들은 하나같이 질박함 속에 깃든 세련미, 단순하면서도 세밀한 필치, 평범한 소재 속에 스며있는 꾸밈없는 삶의 모습, 유치한 듯 강렬한 매력을 발하는 다채로운 색채, 작은 화폭에 특정 주제 전체를 담아내는 정치함 등이 도드라져 보였다.
농민화가들의 작품에서 무엇이건 하나에 꽂히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장르화 하는 중국인들의 우공이산(愚公移山) 기질과 유유히 흐르는 장강처럼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의 민족성도 얼핏 읽을 수 있었다. 상하이 교외 멀찍이 자리한 작은 농민화촌에서 만난 작품들이 어설픈 그림 애호가의 마음속에 꾹 눌러 찍은 감동의 낙관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지 싶다. 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