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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Nov 02. 2022

세기공원과 김가항 성당

위대한 성인의 발자취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좋은 계절 시월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TV를 켜니 여러 채널들이 어젯밤 15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를 전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통제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젊은이들이 이태원 경사진 좁은 골목길의 핼러윈 축제에 몰려들었다가 벌어진 참사라는 보도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는 실로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소식이다.


오전 열 시경 푸동 세기공원을 향해 집을 나섰다. 먼저 산책 겸 공원을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김가항 천주당도 찾아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지쳐 지하철 2호선 러우산꽌(娄山关) 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집을 나선 지 한 시간 만에 세기공원 역에 도착했다.


상하이 푸동신구(浦东新区)에 위치한 세기공원은 축구장 196개와 맞먹는 140.3헥타르 넓이로 1996년 9월 착공해서 2000년 4월에 전면 개방되었다고 한다. 상하이시에는 A5급 14개, A4급 21개의 국가지정 관광 명소가 있는데 이곳은 난징루 보행가, 징안쓰(静安寺), 상하이 대극원 등과 함께 A4급 명소라고 한다.


공원 남측 7 호문 입구로 들어설 무렵 이슬처럼 가는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쳤다. 가족 연인 친구 등과 함께 이곳을 찾은 남녀노소 많은 나들이객들이 울창한 숲, 넓은 잔디, 모래터, 호수와 뱃놀이 선착장, 갈대밭, 야외 음악당, 바이킹과 미니 열차 등 놀이기구를 갖춘 어린이 놀이터, 캠핑 필드, 꽃밭, 조류 보호구 등이 어우러진 드넓은 공원 곳곳에서 제각기 더없이 좋은 가을날을 만끽하고 있다.


공원을 시곗바늘 방향으로 가로질러 북문으로 빠져나왔다. 사람들로 붐비는 공원과는 달리 공원 북단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찐시우로(锦绣路)는 지나는 행인이 뜸하고 긴 프랑스 오동 가로수 길은 가을 정취에 푹 빠져 있다. 보도에 뒹구는 낙엽들은 푸르스름한 끼를 머금고 있어 한창인 가을을 뒤로하고 왜 저리 서둘러 가지를 떠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여기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지는 잎처럼

......"

_월명사 <제망매가> 中


한갓 떨어진 낙엽도 서운하고 애잔한 마음을 자아내는데,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핼러윈 계곡에서 황망히 아들 딸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온통 무채색의 빌딩 숲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을 거라는 지레짐작과는 달리 푸동의 주택가는 울창한 녹지 속에 운동 시설과  휴식 공간 등이 잘 어우러져 사뭇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끝없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가로수 터널의 금수로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간 즈화이로(紫槐路)로 들어서서 400여 미터 남짓 거리에 김가항(金家巷) 천주당이 자리하고 있다.


'엄지 광장(大拇指广场)'과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천주당이 자리하고 있다. 지붕 위 작은 돔처럼 생긴 기단 위에 머리 뒤에 광배를 두른 성모 상은 세상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포근히 맞아주려는 듯 양팔을 다정히 앞으로 펼치고 있다.


김가항 천주당은 조선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가 사제 서품을 받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뜻깊은 장소이다. 본래의 천주당은 17세기 명나라 숙종(1628-1643) 때 김 씨(金氏)들이 모여 살던 김가항(金家巷) 거리의 전통 민가를 증축한 것으로 당시 주교좌성당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황푸강 서쪽 푸시(浦西) 지구에 있던 본 천주당은 상하이시 도시개발 계획에 따라 2001년 철거되었고, 기실 이 건물은 2003년 이곳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수원교구가 철거 직전 실측과 고증을 하고 기둥 4개와 대들보 2개 등 건축물 부재료 일부를 들여와 2016년 9월 김대건 신부가 사목활동을 했던 은이 성지에 그 모습대로 복원해 놓았으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며 천주당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입구에 붙어 있는 한글과 중문으로 쓰인 안내문은 오전 한 차례만 있는 미사는 벌써 끝이 났음을 알려준다.


천주당은 지름 약 20미터의 원기둥형 2층 건물로 전면 십자가 예수상 아래에 설교단이 있고 등받이에 성경책 받이가 달린 긴 벤치가 나란히 놓여 있다. 천정의 열두 개 빗살을 가진 조타핸들 모형 가장자리 투명한 유리창으로 밝은 가을 햇살이 들이친다.

 

삼 년 전 옛 영남길 탐방 중 은이 성지를 찾았을 때 적었던 글을 옮겨 본다.

칠봉산과 은이산 자락이 낮아지며 서로 만나는 곳은 성인 김대건 신부의 '생전 사목활동 길이요 순교 후 유해 운구 길'이 되었다는 신덕 고개를 넘는다. 마티아 님이 지었다는 노래비의 아리랑 구절이 애달프다.
"......
주님을 버리고 가는 영혼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천주교 이백 년 박해도 많았네
......."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의 은이(隱里),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모방 신부로부터 1836년 세례를 받고 1845년에 한국 천주교회 첫 사제가 된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그가 첫 사목 생활을 한 곳이자 1846년 26세로 순교하기 전 마지막 공식 미사를 드린 곳이라고 한다.


천주당 밖으로 나와서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오른편 녹지에 실물 크기 안드레아 김대건(1821-1846) 성인의 전신 동상이 자리한다. 그의 증조부와 부친은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 했다. 그는 1845.8.17일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1846.9.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나 1984.5.6일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그는 시성 된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동상 앞쪽 측에 요한복음 10장 11절 말씀이 적힌 석판이 한동안 눈길을 붙잡는다. 그 옆 화단에 포도처럼 주렁주렁 열매가 매달려 가지가 꺾일 듯 아래로 휘어진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성경 한 구절을 되뇌게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_<요한복음 12:24>

은이성지 성당(아래)/철거 전 상하이 김가항 성당(위) @photo CPBC News

성당 건물을 한 바퀴 돌아서 지붕 위로 상반신만 드러낸 성모 상을 스마트 폰 카메라에 담았다. 성당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두 명과 짧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소형 목선 라파엘호에 몸을 싣고 죽음도 무릅쓴 채 거친 풍랑을 뚫으며 상하이와 조선을 오간 조선 청년 안드레아의 담대함과 끝내는 죽음으로써 증거한 믿음, 그 앞에서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줏대 없이 휩쓸려온 인생은 부끄러움을 숨길 곳이 없어 난감하다.


천주당을 뒤로하고 목까지 차오르는 시장기를 핑계 삼아 서둘러 가까운 팡띠엔루(芳甸路) 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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