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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18. 2020

섬 속의 섬 섬 섬

영종도, 무의도, 그리고 소무의도

염소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 언저리이지만 아침부터 부슬부슬 뿌리는 장맛비에 더위도 주춤한다. 영종도에서 무의대교를 건너 무의도의 동남쪽 끝 광명 항에 도착했다.

선착장 부근 문을 닫은 식당 문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조개껍질을 벗기고 있다. 해안도로 난간 너머 바다로 낚싯줄을 던지는 낚시꾼은 '무얼 잡았냐'는 내 궁금증에 말없이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섬 전체가 한눈에 온전히 들어오는 소무의도로 놓인 414미터 길이의 타원형 모양의 인도교로 들어섰다. 갈매기 소리 파도 소리와 함께 우산을 들썩이며 다리 난간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가 제법 사납다.

다리에서 내려서자 '무의 바다누리길' 안내판이 맞이한다. 안내도의 설명대로 시계방향으로 섬을 한 바퀴 돌며 소무의 인도교, 떼무리항, 부처깨미, 몽여 해수욕장, 명사의 해변, 장군바위, 하도정, 모예재 등 누리 8경을 차례대로 둘러볼 참이다. 8경의 하나인 소무의 인도교는 벌써 걸어서 건너온 셈이다.

선착장 주변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만 몇몇 보일 뿐 평일의 작은 섬은 인적이 드물어 고요하다. 카페와 식당 그리고 민가들이 바다 쪽을 바라보며 모여있는 작은 포구 떼무리 항을 천천히 가로질러 걸었다. 포구 가장자리의 건어물 직매장과 그 옆 여행안내소는 문이 닫혀 있다. 떼무리라는 이름의 유래는 '본섬인 무의도에서 떨어져 나가 생긴 섬’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고 한다.


안내소 앞 '느린 우체통' 옆 나무계단을 올라 해안 누리길로 들어서자 이파리에 빗방울을 잔뜩 인 아카시아 숲길이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 해안에서 파도소리가 수런거린다.

해변을 따라 휘도는 나무데크 길은 작은 섬답게 금세 알아챌 정도로 곡률이 크다. 동쪽 바다를 향해 뾰쪽하게 튀어나온 지형의 부처깨미에 올라서니 가는 비가 더욱 잦아들며 안개비처럼 흩날린다. 주민들의 안전과 만선을 기원하며 당제를 지내던 곳이라 한다. 잠자리 떼가 머리 위를 소나무 가지 사이 하늘을 어지럽게 유영한다.

모퉁이 너머로 제법 긴 몽여해변과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인적 없는 해변에 갈매기 두어 마리가 내려앉았다 수면 위로 낮게 날아오르곤 한다. 몽여 해변 마을 가운데 번듯하게 자리한 소라 껍데기 모양의 3층 건물 '섬 이야기 박물관’은 인천 앞바다 여러 섬에 관한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무기한 휴관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현관문은 굳게 잠겨있다.

해변으로 내려선 절벽은 비에 젖어 주황색이 도드라져 보이고, 절벽 밑까지 밀려 올라와 쌓인 하얀 조개껍질과 대조를 이룬다. 파도는 연신 해변 바위에 부딪혀 철썩대고 해변 가까이 작은 돌섬 위에는 갈매기들이 나란히 줄지어 앉아서 지친 날개를 쉬고 있다.

섬 남쪽 모퉁이에 숨어있는 '명사의 해변'을 향해 절벽에 접한 해변을 조심스레 지나는데 만조로 한껏 기세를 올린 파도가 바위를 때리며 발목을 할퀴고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60년대 중반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아 여름 휴양을 했던 곳이라는 명사의 해변은 좁아 궁색해 보이고 쓰레기가 쌓여 있어 버려진 폐허처럼 느껴진다. 수도권 가까이 찾아오는 사람도 많은 아름다운 섬이 아직 진흙 속의 진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명사의 해변을 지나 이정표를 따라 안산 산정으로 난 긴 나무계단을 오른다. 수 킬로미터를 걸어도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기 일쑤인 육지의 산행과는 달리 면적 1.22 km², 해안선 길이 2.5km의 작은 섬이 2~3백 미터마다 명소를 알리는 이정표를 세워놓아 동화나라에서 소꿉장난을 하며 걷는 기분이 든다. 작은 섬이 '누리 8경'이라는 많은 자랑거리를 가진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싶다.

그 중간쯤에서 뒤돌아보니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해녀섬이 반으로 자른 지구본을 엎어 놓은 것처럼 수면 위로 봉긋 솟아 있다. 전복을 따다 지친 해녀들이 쉬었다는 이 작은 섬은 과거 연안부두 조성을 위한 채석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영종도가 무의도를 품고, 무의도는 소무의도를, 소무의도는 또다시 해녀섬을 품고 있는 것이 러시아의 전통인형 마트료시카를 연상시킨다.

긴 나무계단을 따라 오른 소무의도에서 제일 높은 곳인 해발 74미터 안산 위에 자그마한 육각 정자 하도정(鰕島亭)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 새우잡이로 유명했다는 이 섬에 적합한 정자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지를 비롯하여 영흥 자월 덕적 등 부근의 섬들은 안개비에 모습을 감추었고 썰물이면 드러날 가까운 바닷속 갯벌의 물길만 어렴풋이 해수면 위로 어린다.

떼무리 선착장 쪽으로 난 나무계단으로 내려오는 길에 소무의교와 광명항 뒤로 짙고 하얀 비구름을 머리에 인 호룡곡산이 눈앞에 한 폭의 풍경화를 펼쳐 보인다.

떼무리 마을 가운데쯤에서 몽여 해수욕장이 있는 반대편 동쪽 마을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 모예재(母禮岾) 고개에 올랐다. 이 야트막한 고개는 서쪽 마을의 효성 지극한 아들이 동쪽 마을 어머니에게 항시 문안을 드리기 위해 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고개 서편 당산에는 300여 년 전 딸 셋과 이 섬에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한 박 씨 시조묘가 있다고 한다. 그가 기계 유 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들이면서 소무의도가 유 씨 집성촌이 형성됐다는 얘기가 전한다.

떼무리항으로 다시 내려오는 골목길에 '뗌리 국수'라는 특이한 이름의 식당이 보인다. 출출해진 배를 달래려 식당으로 들어서려니 막 문을 닫으려던 주인아주머니가 다시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뗌리 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주꾸미를 넣은 국수인데, '뗌리'는 '떼무리'의 준말이라고 한다. 큼지막한 주꾸미 세 마리와 함께 김, 대파, 고춧가루 고명을 얹은 생전 처음 보는 비주얼의 '뗌리 국수', 이제껏 이만큼 큰 포만감을 준 국수도 없었지 싶다.

남산처럼 부른 배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소무의교를 뒤로하고 무의도로 걸음을 옮긴다. 만조가 지나고 썰물로 바뀐 바다가 다리 밑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치며 흐르는 강물처럼 술렁댄다. 짙은 구름이 드리운 바다 위에 떠있는 무의도(舞衣島)에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전설 속 선녀가 다시 내려와 춤을 추지 않을까 하는 어쭙잖은 생각을 하며 섬 밖의 섬을 지나 더 큰 섬 영종도로 빠져나왔다.

#섬 #일상 #무의도 #소무의도 #영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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