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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Mar 28. 2022

그리운 봄, 유채꽃 내음

상하이 교외 출행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주일 오전이다. 상하이 남부 9호선 종점 부근에 자리한 송난지아오예(松南郊野) 공원을 찾아볼 요량이다.

야오홍루(姚虹路) 역에서 15호선 전철에 올랐다. 객실이 헐렁하다. 9호선으로 갈아타는 계림로(桂林路) 역 플랫폼도 텅 빈 지하 벙크처럼 휑하다. 최근 이곳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전역의 악화일로에 있는 코로나19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지우팅(九亭) 역을 지나자 지상으로 올라온 전철이 창밖으로 춘삼월 끝자락 희뿌연 공기에 잠긴 교외의 풍경을 펼쳐 보인다. 셔샨(佘山)역을 지날 즈음 작년 봄 이맘때 쯤 찾았던 상하이 최고봉으로 해발 100여 미터 남짓 높이 셔샨이 저멀리 보인다. 도로 건너편 건물들 틈틈이 자리한 논밭과 너른 공터의 파릇한 초목과 노란색 주단을 깔아 놓은 듯 만개한 유채꽃은 봄이 한창임을 알린다.


한 시간여 만에 송쟝(松江) 남역에 도착했다. 허허벌판 위에 자리한 역사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전답 사이에 천주교당 하나가 홀로 자리하고 있어 발길을 그쪽으로 옮겼다. 새로 들어선 듯 보이는 아파트촌에서도 족히 1~2km는 떨어진 이곳에 천주당이 자리한 사유가 궁금하다. 주일인데도 인적은커녕 아예 대문에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다. 마당에 선 나뭇가지와 땅바닥을 부산하게 오가는 참새 떼의 수다 소리만 시끌하다.

다시 역사 쪽으로 돌아와서 두리번거리니 운 좋게 공용 자전거(共享单车)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역사 남쪽의 너른 농지 한가운데로 수로와 함께 나란히 뻗은 옌핑공루(盐平公路)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주변엔 구릉이나 산지라고는 하나도 없이 사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졌고 논두렁이나 길가 여기저기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샛노란 유채꽃이 만개했다.

유채 꽃밭 사이 드문드문 모여있는 농가들은 반 이상은 대문이나 창틀이 뜯겨나간 반쯤 헐린 빈집이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재개발을 위해 대부분의 집들이 이주를 했다고 한다. 빈집들 틈에 자리한 '핑후빈(平湖滨)'이라는 또 다른 천주당도 대문이 자물쇠로 채워진 채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빈집들 사이사이에  빨래가 늘렸거나, 견공들이 컹컹대며 낯선 객을 경계하거나, 토종닭이나 오리들이 논밭에서 노닐고 텃밭에 감자며 배추 같은 채소들이 자라거나 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주민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로 옆 슈퍼 앞에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6~70미터 길게 한 줄로 서서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받고 있다. 갑갑하고 번잡한 도심에서 한 시간여 거리에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은 도시인들의 막혔던 숨통을 트여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두 물길이 교차하는 곳 수로 위에 핑양교(平阳桥) 핑후빈교(平湖滨桥) 싼하오교(三号桥) 세 다리가 이웃하여 모여 있다. 다리 아래 모퉁이마다 한 명씩 자리를 틀고 앉은 젊은 강태공 네 명이 미동도 않는 잔잔한 수면 위의 작은 찌를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은 채 응시하고 있다. 물이 채워진 고기 그물 망태기가 텅 빈 것으로 보아 반나절 세월만 낚은 것이 틀림없다.  

논두렁 옆 유채꽃 군락에 다다가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달콤한 향기가 달고나를 찍어낼 때 노랗게 보글거리는 설탕 내음처럼 감미롭다. 길가로 올라서 보니 꽃가루가 바지와 셔츠에 묻어 노란 꽃무늬 얼룩이 졌다. 온몸 제대로 봄맞이를 하는 셈이다.

예정대로 공원을 둘러보려고 황푸강의 지류 중 하나인 따장징(大张泾)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공원 쪽으로 향했다. 변변찮은 대문도 없는 공원으로 드는 길목에서 경비원이 간이의자에 앉은 채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를 한다.

일상의 숨통을 쥐어오는 팬데믹의 손아귀를 피해 한적한 이곳으로 차를 몰고 온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모두 공원 입구에서 핸들을 돌릴 수밖에 도리가 없다. 공원 반대쪽 쏭진공루(松金公路) 옆 봄갈이를 앞둔 농지에서 나물을 캐는 봄처녀들, 따장징(大张泾)에 낚싯줄을 드리운 강태공들, 유채 꽃밭에서 추억을 사진에 담는 연인들,...  


다시 자전거를 지쳐 송장남역으로 갔다. 역사 건물 한편에 자리한 식당에 발을 들이니 손님 서너 명이 늦은 점심을 들고 있다. 이곳은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지고 한적한 외곽인 탓에 코로나19 방역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있는 걸까.

주인 노부부 중 주방을 맡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계란 프라이 하나를 올린 뉘러우미엔(牛肉面) 한 그릇을 시켰다. 고양이 한 마리가 식탁 아래로 다가와서 고개를 쳐들며 "나도 배고파요"하는 표정으로 자기의 허기도 함께 달래자고 조른다. 바닥에 휴지를 깔고 국수에 든 고기 조각을 올려 주었다. 두세 개를 나눠먹고도 자리를 뜨질 않다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리를 옮겨 앉는다.

전철을 타고 계림로 역에 내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거리엔 와이마이(外卖) 배달 오토바이들만 오갈 뿐 행인들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적다.

저녁에 SNS를 통해 상하이 시당국의 봉쇄 소식을 접했다. 황푸강의 동쪽과 서쪽 지역, 즉 푸동(浦东)과 푸시(浦西)로 나누어 차례로 각각 5일씩 봉쇄식 핵산 검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봉쇄기간 중에는 모든 전철, 택시 운행이 중단되고 자가용 운전도 금지된다니 시민들이 겪을 불편과 감내해야 할 고통이  적지 않을 것이다.

창닝구(长宁区)는 푸시 지역이라 4.1일부터 시작되는 봉쇄 전에 식량을 확보할 시간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상하이 교외 들녘엔 유채꽃이 만발했지만 이래저래 여전히 춘래불사춘이다.


※ 상하이 시당국의 '5일간 봉쇄' 예고와 달리 도시 봉쇄는 두 달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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