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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04. 2022

골프 단상

코로나19와 필드의 꿈

상하이의 짧았던 봄이 지나고 스멀스멀 온몸으로 스며드는 습기처럼 여름이 다가왔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와 자판을 잠시 움직이다 보면 금세 책상과 닿은 팔이 눅눅해지는 것을 느낀다.


상하이시는 비교적 잠잠하다가 작년 11월경부터 시내 곳곳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방역 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급기야 지난 3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약 두 달 동안 인구 2천5백만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처럼 장기간의 도시 봉쇄 조치는 비단 상하이에만 취해진 것도 아니다. 중국 공산당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작년부터 시안, 선전 등 여러 도시들이 길고 짧은 기간 봉쇄되기도 했다.


이 주일 전에 두 달간 지속된 상하이 전역 도시 봉쇄가 해제되었다고 하지만, 시내 지역별로 코로나19 확진자 동향에 따라 작은 행정구역 단위로 봉쇄되는 곳이 적지 않다. 도시 밖으로 나갈 때에도 핵산 검사를 요구하거나 심지어 격리를 당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대륙의 여러 도시들을 탐방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은 당분간 접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얼굴을 맞대는 한국 공중파와 케이블 TV 방송 등 40여 개에 달하는 채널들은 정치판 뉴스나 설객들의 소모적 말잔치, 먹방이나 예능 등 허접한 프로그램들에게 점령당하고 있어 아래 위로 채널 돌리기가 일쑤다. 그나마 바둑 다큐 문화 예술 등 몇몇 개 전문 채널과 함께 골프 방송에 눈길을 주곤 했었다.


신(神)이 대문을 닫을 때면 창문은 열어둔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도 한다. 거의 20년 전에 처음 잡았던 골프채를 다시 들고 제대로 배워볼 마음이 들었다. 햇수로는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오래되었지만 자발적으로 배우고 익히려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실력은 소위 '골린이'나 다름없다.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연습장과 스크린 골프장을 드나들며 조금씩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대부분의 구기 종목은 라켓, 방망이 등 한 가지 기구를 사용하지만 골프는 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등 다양한 길이와 특성을 지닌 샤프트를 사용한다. 경기장도 축구 배구 농구 야구 등 규격이 정해진 종목과는 달리 골프는 경기장마다 지형과 경이 다르고 그린 주변 필드 곳곳에 러프, 벙커, 헤저드와 같은 덫이 도사리고 있다.


한편, 골프에서 경쟁 상대는 라운딩 동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각 홀 필드의 지형, 그라운드 상태, 변화무쌍한 날씨, 종류별 샤프트의 성능과 특성, 공이 놓인 위치와 형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장애물들은 세심한 관찰력, 장비를 다룰 줄 아는 능숙한 스킬, 그리고 때론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 돌파하려는 용기와 결단이 있다면 헤쳐나가지 못할  것도 아니다.


"상대를 알고 나 자신을 알면 어떤 전장에 나가더라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는 손자의 명언은 골프에도 꼭 맞는 경구다. 지피(知彼)에 더하여 샤프트 별 자신의 평균 비거리, 평소 공의 방향, 경기 당일의 몸 상태 등 '지기(知己)'를 겸한다면 그날의 라운딩에 실망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대략 총 길이 십여 리가 훌쩍 넘는 열여덟 개의 홀을 한 홀 한 홀 절치부심하며 도는 골프 경기와 인생 여정은 서로 흡사한 면이 많아 보인다. 일확천금을 욕심내다가 가진 것까지 몽땅 잃어버리듯 라운딩을 잘 이어가다가도 일거에 타수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질병이나 사고처럼 건강한 삶을 방해하는 인생의 장애물처럼 때때로 해저드나 OB(out of bounds) 구역으로 공을 날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평소 스크린 골프를 몇 번 같이했던 사무실 동료 몇 분과 그동안 연습장에서 갈고닦은 골프 실력을 필드에 펼쳐보기로 했다. 그린에 서면 동방명주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상하이 푸동에 있는 골프 필드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적지 않았다.


기다리던 그날, 6월 중순 일요일 이른 아침, 풀세트 샤프트가 든 골프백과 골프공, 티, 장갑, 모자, 볼 마크, 우산 등을 챙겨 문을 나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1층 현관으로 내려섰다. 현관 벽면에 걸린 대형 유리 거울과 추상화 액자가 맞이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현관 출구에 폴리스 라인처럼 테이프가 가로질러 쳐져 있고 방역복을 입은 사람 서너 명이 지켜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문 앞을 지키고 서있는 푸른 방역복 차림의 방역 요원이 우리 동 3층 주민이 밀접 접촉자로 확인되어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이 경우 "2+12" 방역정책에 따라 같은 동 주민들은 48시간 봉쇄(封控) 관리되면서 핵산 검사를 두 번 받아야 하고, 그 후 12일간 자가 건강 관찰(社区健康观察) 기간 동안 재차 두 번의 핵산 검사와 열 번의 자가 항원 검사를 해야 한다.


두 달간의 봉쇄를 겪은 터라 "2+12" 쯤이야 식은 죽 먹기이겠지만, 졸지에 황당한 상황으로 필드를 밟아 보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아파트 입구로 마중 온 함께 그린을 밟기로 한 동료들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아쉬운 마음을 토닥이며 엘리베이터로 발을 돌릴 수밖에... 오호라! 멀고도 험난한 필드의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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