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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Oct 12. 2022

화교의 본향 취안저우

민타이위엔(闽台缘) 박물관

푸저우에서 취안저우로

시월로 들어선 지 이틀째 날이다. 가을 기운이 도는 상하이를 출발하여 도착한 푸저우는 어제오늘 기온이 35도까지 육박하는 한여름 날씨다. 아침부터 이마에 땀을 훔치게 만드는 무더운 날씨가 여행자의 호기심을 무디게 하고 의욕을 꾹꾹 누른다. 오늘은 기온이 최저 25도 최고 36도라고 알린다. 어제 푸저우의 푸젠 박물원(福建博物院)과 삼방칠항(三坊七巷), 오늘 아침에는 문묘(文廟)를 둘러보았으니 이쯤 해서 푸저우 탐방 일정을 접고 일찌감치 취안저우(泉州)로 가기로 마음을 잡았다. 호텔로 돌아와서 땀을 씻고 배낭을 챙겨 호텔을 나서서 지척에 있는 지하철 1호선으로 가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푸저우 북쪽 샹펑(象峰)에서 출발하여 우롱강(乌龙江)과 민강(闽江)의 합수 지점인 산쟝커우(三江口)까지 연결하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역으로 가면서 기차표 예매 앱(铁路12306)으로 12:22발 취안저우행 열차표를 예매했다. 곧이어 "취안저우 맑음, 최고기온 32도, 최저기온 25도,... 세계문화유산 푸젠 토루(土樓) 건축의 전범 텐뤄컹(田螺坑; 우렁갱이) 토루 군" 등 홍보성 메시지가 휴대폰으로 날아온다.


푸저우 남역의 규모와 탑승 수속에 소요되는 시간을 짐작할 수 없어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역 규모는 중국의 성도급(省都級) 도시의 여느 역과 달리 아담한 편이고 코로나19 녹색코드 확인, 휴대품 엑스레이 검색과 신변 검색, 여권 스캔을 통한 검표 등의 탑승 수속도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었다. 열한 개의 플랫폼을 가진 역내 탑승장으로 가서 D3653호 열차에 오르니 열차 칸은 빈 좌석이 절반이 넘어 여유롭고 몸을 좌석에 앉히니 마음이 놓인다. 기존 역사 옆에 짓고 있는 새 역사는 고속철도를 위한 것일 터이다. 열차는 출발 후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취안저우에 도착할 것이다.


남쪽으로 향하는 열차가 푸저우를 벗어나 푸티엔(莆田)으로 접어들자 산간 지형이 드넓은 평지로 바뀌며 푸저우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푸티엔 역을 지나자 열차는 왼쪽 창 밖 멀리 육지로 깊숙이 파고든 남중국해 바다를 잠깐 동안 살짝 내비친다. 열차가 취안저우 경내로 접어들자 휴대폰에 "천년고도, 해상 실크로드 취안저우가 당신을 환영합니다!(千年古城、海丝泉州欢迎您!)"라는 메시지와 함께 방역수칙 안내문이 날아든다.


화교의 본향 취안저우

리청(鲤城)이라고도 불리는 취안저우는 2020년 11월 기준 상주인구가 878만여 명이며, 그중 외국인이 204만 명이라고 한다. 주진(周秦) 시기에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었고 오나라 때인 260년에는 지금의 펑저우진(豊州鎭)에 치소를 두었다고 하니 오랜 역사의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서진 말기 전란에 휩싸인 중원의 사족들이 대거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고 송원(宋元) 시대, 취안저우(一度州)는 한때 세계 제일의 항구이자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취안저우는 화교의 본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본관을 이곳에 둔 화교가 750만 명으로 홍콩과 마카오에 거주하는 76만 명 등 전 세계 129개 국가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곳과 마주하고 있는 타이완에 거주하는 한족의 44.8%인 약 900만 명도 이곳이 본향이라고 한다.


시간 등 많은 제약을 받는 여행지에서는 번번이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두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면 좋으련만, “박물관이라면 당연히 민타이위엔 박물관이지요.”라는 기사 양반의 주관적인 의견도 작용했겠지만, 당초 푸젠성의 푸저우와 취안저우로의 출행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화교의 본향’이자 ‘고대 해상무역의 중심 도시’를 둘러보자는 것이었기에 어쩌면 출행의 취지에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여 민타이위엔(閔台緣) 박물관으로 발길을 잡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박물관도 푸젠 박물관처럼 동일한 이름의 호수인 ‘서호(西湖)를 끼고 자리하고 있다. 높은 계단을 올라 입구로 들어서면 곧바로 2층 전시로 연결되는 구조로 설계되어 더 웅장하고 높아 보이는 효과를 의도한 듯 보이는 건물의 형태도 서로 닮았다.


푸지엔-타이완 친족 박물관

우리말로 '푸지엔-타이완 친족 박물관(China Museum for Fujian-Taiwan Kinship)'이란 의미의 민타이위엔 박물관은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에 따르면 “조국 대륙(푸젠)과 보물섬 대만의 역사적 관계를 반영한 국가급 테마 박물관으로 2006년 5월에 건립”되었다. 또한, “대만 기층민을 주요 대상으로 독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촉진(反獨促统)을 목표로 하는 국가급 애국주의 교육기지이자 타이완 홍보 장소”라는 설명도 곁들여 있다.


박물관 앞 너른 광장 가운데에 장방형으로 발목 높이까지 물을 채운 풀이 조성되어 있고 입구 양쪽에 각각 하나씩 높이 19미터 지름 2미터의 구룡주(九龍柱) 한 쌍이 우뚝 솟아 있다. 박물관은 4층 43미터 높이로 주홍색 너른 계단 위 건물 전면 벽면의 “중국민타이위엔박물관(中國閔台缘博物館) 강택민(江澤民)”이라는 번자체 이름이 멀리서도 단박에 눈에 들어온다.   


입구로 연결된 2층이 종합 주제관으로 박물관의 핵심 전시실이고, 지하실처럼 계단으로 내려가는 1층은 국제학술 보고관과 임시 전시실 등이며, 3층은 민타이 향토관, 4층은 정보 및 연구센터 사무실이라고 한다.


입구로 들어서니 거미줄처럼 보이는 돔형 유리천장 아래 중앙 홀 맞은편 벽면에 높이 18미터, 폭 9미터, 162 평방미터 크기의 대형 그림이 한 폭 걸려 있다. 이곳 출신 화가인 차이궈창(蔡国强, 1957-)이 박물관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헌정한  <동문동종 동근생(同文 同種 同根生)>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특수 제작한 대마 종이에 화약을 터뜨려 불에 구워 그린 화약폭회(火药爆绘, gunpowder painting) 방식의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 속 줄기와 뿌리가 서로 엉긴 거대한 한 그루 용나무(榕樹: 뱅골 보리수)가 해협 양안의 동포들이 한 뿌리임을 표현한 작품임을 한눈에 눈치챌 수 있다.


종합 주제관은 일곱 개로 구분된 전시실에 선사시대 유물과 유적의 유사성, 민족 혈맥의 동질성, 정치적 예속과 공존, 농경과 수공업 등 산업의 유사성, 종교와 신앙의 공통성, 생로병사 통과의례와 민속의 연관성 등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원고국원(元古國園)’ 주제관으로 들어서니 선사시대부터 문화가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전래되고 많은 영향을 주어 서로 매우 가까운 문화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문이 맞이한다. 타이완 장빙(长滨), 원산(圆山) 문화의 석기, 도기와 장저우(漳洲) 등 푸지엔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나란히 비교 전시하며 관람자에게 그 유사성에 동의를 구하게 한다. 기실 석기시대의 유물이야 대륙이나 지역을 불문하고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타이완 펑비터우(凤鼻头) 문화의 채색된 도기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라 특별히 눈에 띈다.


‘혈맥 상친(血脈相親)’ 주제관에는 민타이(闽台) 양안 거주민은 혈맥(血脈)이 서로 이어지고 골육(骨肉)이 서로 가깝고 근본이 하나인 동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각 시기 타이완으로의 이주 역사, 대륙과 타이완 지역의 가묘, 종사, 사당, 신주, 족보 등에 대한 사료와 사진은 푸지엔 지역의 민월족(闽越族)이 타이완 섬으로 건너가서 원주민의 주요 성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예속과 공존’ 주제관은 대륙의 정권이 일관되게 타이완에 대한 행정 관할권을 유지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안은 이와 입술처럼 서로 의지(齒脣相依)하는 관계라는 익숙한 표현도 눈에 띄는데, 서로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할 때,  타이완 정권과 타이완 국민들도 같은 생각일지 자못 궁금하다.


타이완 약사(略史)

타이완 섬의 역사를 찾아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타이완 섬 최초의 인류 거주 흔적은 3만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라시아 동남쪽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민들이 역사 기록에 등장하게 된 것은 중국 삼국시대라고 한다. 오나라 때 손권은 당시 이주(夷州)라고 불리던 타이완에 병력 징발을 목적으로 위온(卫温) 장군의 병사 1만을 파병했다고 한다.


그 후 송원(宋元) 시기에는 해상 중계무역이 발달했으나 명나라 때의 해금 정책으로 해상무역이 쇠퇴하고, 몽골인들이 세운 원나라 때는 한족들이 섬의 서쪽 지대로 피난하여 거주했다고 한다. 여러 원주민 부족이 연합하여 세운 다두 왕국(大肚, ?~1732)은 외부와의 교류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대항해 시대 서구 열강이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네덜란드가 타이난, 가오슝, 핑둥, 타이둥 등을 1624-1662년 기간 지배하였고, 스페인은 타이베이, 신베이, 지룽, 단수이 등을 1626-1642년 기간 지배했다. 명나라 말기 관리이자 해적이었던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정성공(郑成功, 1624-1662)은 네덜란드인을 몰아내고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치 아래 타이완에 정 씨 왕국(1661-1683)을 세운다. 1683년 7월, 정 씨 왕조가 펑후 해전(澎湖海战)에서 패하면서 타이완은 청(淸)의 영토가 되고, 1732년까지 존속하던 다두(大肚) 왕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근세 들어 1874년 5월, 일본군이 류큐 어민이 타이완의 파이완(排湾) 족에게 살해당했다는 핑계로 공격하다가 원주민들의 반격으로 물러난 "모란사(牡丹社)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청 정부는 해상 방어를 강화하고 해군을 창설하며 타이완 방어를 공고히 했다고 한다.

그 후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타이완 섬을 합병한 후 1945년 일제 패망 때까지 50년 동안 식민통치 시기인 소위 '대만일치시기(台湾日治时期)'를 거친다.

@Source: 네이버

1945년 10월 15일부터 중국 국민당 국민혁명군이 타이완 섬으로 진주하기 시작하고, 그해 10월 25일 안도 리키치 대만 총독이 중화민국 대만 행정관 친이에게 항복문서를 전달하면서 현대 타이완의 역사가 전개된다. 교과서적으로 진열되어 있는 일제 치하의 황민화 정책, 항일투쟁의 역사 등 관련 자료들을 훑어보고 ‘예속과 공존’ 주제관을 빠져나왔다.


반목과 공존

‘개발 동공(開發同功)’ 주제관에는 수리 경작 추수 등 농경과 농기구, 차 생산, 직조, 수공업, 상공업, 교육과 과거제도, 서원, 민간 음악, 전통극, 공예 등에서의 양안 간 유사성을 조명하고 있다. ‘제신 동사(諸神同祀)’ 주제관에서는 양안 주민들이 받들었던 신(神) 조차도 동일하다고 소개하고 있어 현세뿐 아니라 사후 세계도 같은 신의 가호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 전시관에는 개원사(開元寺) 관련 사진과 소형 목조 불상들이 진열되어 있고 양안 사이의 불교 교류 역사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다.


특히 중국 동해안 일대에서 널리 받들어지고 있는 마조(妈祖)를 비롯하여 삼산국왕(三山國王), 임수부인临水夫人), 왕부(王爷), 청산왕(青山王), 토지공(土地公), 복덕신(福德神), 보생대제(保生大帝), 개장성왕(開漳聖王), 광택존왕(廣澤尊王), 주창(周倉), 관공(關公) 등 수많은 신들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끌며, 생사가 오가는 험한 바다를 터전으로 삼던 이곳 사람들이 민간 신들에게 자신의 안전을 기원하고 의지하려 했던 간절한 마음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풍속상통(风俗相通)’ 주제관에서는 출생, 성년, 결혼 등 인생 시기별 통과의례나 늙고 병들고 죽는 일생을 통해 건강, 평안, 장수, 부귀 등을 구하는 습속이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전해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건축 양식, 의복, 명절, 의식주행(衣食住行) 등에 대한 전시 자료와 설명을 통해 타이완과 푸지엔 지역의 습속이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층 향토 민타이(乡土闽台) 주제 전시관은 푸지엔 성과 타이완 섬 지역민들의 정월대보름 풍속, 희극, 꼭두각시놀이, 주사위 놀이, 용선 경기 등 풍속과 집 안팎과 거리의 각종 상점 모형, 객잔 모형, 각종 신사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이싱(義興) 역대 자사(紫砂) 정품전’이 열리고 있어 넓은 중국 대륙의 지역 간 문화 문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팔월 상하이 서쪽 타이후(太湖) 근처에 자리한 이싱을 찾아 도자박물관을 둘러본 터라 먼 객지에서 낯익은 친구를 우연히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각종 형태의 차 주전자를 비롯해서 도기의 재료, 제작 도구 등 이싱에서 보았던 내용 외에 자사 주전자(紫砂壺)의 주둥이, 뚜껑과 그 꼭지, 몸통, 손잡이 등 각 부위별 명칭과 모양 등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다.


비밀 통로처럼 찾기 어려운 계단을 찾아 지하처럼 느껴지는 1층으로 내려가니 '서재(西齋)'라는 현판이 걸린 전시실로 들어섰다. 해협 양안 융합 발전을 위한 문화교류와 방문 등 성과에 대한 설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이 두어 명 밖에 보이지 않는 썰렁한 전시실의 분위기가 최근의 경색된 양안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 느껴진다.


'지척 천애(咫尺天涯)'라는 제하의 사진은 50년대 푸저우 리엔장(连江)의 황치(黄岐) 해안에서 인민해방군과 민병들이 타이완 쪽으로 총구를 겨눈 채 경계를 서고 있는 장면을 포착했다. 사진과 그에 곁들여진 글은 대립하고 있는 양안 두 정권의 현실과 이념이 갈라놓아 서로 단절된 양안 주민들의 바람을 잘 담아내고 있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국민당 정권이 타이완으로 퇴각한 후 양안은 정치적 대립, 군사적 대치, 교통 단절 상태에 놓여 있다. 얕은 해협이 조국 대륙과 타이완을 지척 천애(咫尺天涯)하게 만들었지만, 양측은 하나의 중국과 통일 실현을 도모한다는 묵계(默契)를 시종 견지하고 있다."


타이완 적십자회 주관으로 비자를 받은 타이완 주민 43명이 '구랑위(鼓浪屿)' 호를 타고 홍콩을 경유해서 1987년 11월 11일 샤먼에 도착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눈에 띈다. 가족 생이별의 비극이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푸지엔과 타이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던지는 박물관의 큰 줄거리를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보았다. 입장한 지 두어 시간 만에 박물관을 빠져나오니 더한층 달아오른 오후의 공기가 온몸으로 훅 하고 덮쳐온다. Lao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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