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제사 옆 승차장에서 20인승 셔틀버스에 올라 법우사(法雨寺)로 향했다. 탑승료 5위안은버스 좌석 등받이에 붙어 있는 큐알 코드로 위챗이나 즈푸바오로 각자 결재할 수 있어 편리하다.
보타산은 남북 8.6km, 동서 최대 4.3km 길이 아담한 섬이라 쉬엄쉬엄 걸어서 섬의 명소들을 모두 다 둘러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넉넉지 못한 여행자는 셔틀버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섬 동쪽 해변을 따라 난 도로를 10여 분 남짓 달려 법우사 승강장에 도착했다. '해천불국(海天佛国)' 현판이 달린 패루를 지나고 아름다운 사자상으로 장식된 아치형 석교를 지나서 '천화법우(天华法雨)' 글자가 적힌 정문으로 들어섰다.
법우사는 명나라 때인 1580년 창건되고 청나라 강희 28년(1689년)에 중수된 사찰로 3.3만 평방미터 면적에 여섯 층의 계단식 기단에 천왕전, 구룡관음전, 어비전, 대웅보전 등 주요 전당이 자리하고 있다.
용트림하듯 휘도는 주홍빛 담장 사잇길을 지나면 대형 향로, 동물과 인물상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석탑, 아름드리 장목(樟木)들이 어우러진 마당을 사이에 두고 구룡벽을 마주 보며 천왕전이 자리한다.
기단 위에 자리한 남다른 규모의 천왕전 앞마당에는 족히 높이가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형 철제 향로가 향장목 거목들에 둘러싸인 채 자리한다. 많은 사람들이 향로 위로 동전을 던지며 저마다의 복을 갈구한다.
철사줄을 꼬아서 만든 듯 골기를 뿜어 내는 향장목 가지가 마당 위 하늘을 덮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국에서 북경 고궁 후원 담벼락과 이곳 단 두 곳에만 있다는 구룡벽은 작은 연못 뒤에 자리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대는 돋은 새김 아홉 마리의 용이 다섯 개의 여의주를 두고 유희하는 모습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계단을 올라 천왕전을 지나고 좌우에 고루와 종루, 옥불전, 구룡관음전, 천수관음을 모신 제경단(諸經壇), 좌우에 공덕전과 삼성전을 거느린 대웅보전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구룡보전 관음상은 크기와 형태가 보제사 본당의 관음상과 흡사하고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은 규모가 아담하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법우사를 빠져나오니 시각은 정오로 치닫는다.
보타산의 최고봉 불정산이 800미터 거리에 있어 서둘러 다녀오기로 마음을 정했다. 산정으로 난 폭 2.5미터 넓이 돌계단으로 접어들었는데 대부분 내려오는 사람들이고 올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시 반대쪽의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걸어서 내려오는 것일 터이다.
가는 길 중턱에 자리한 관음보살을 모신 향운봉(香云蓬) 암자에서 잠시 다리를 쉬게 하며 한숨을 돌렸다. 계단길로 접어든 지 20여 분이 지나도록 머리 높이 놓인 계단길은 끝이 없고 산정은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헤일 수 없이 많은 돌계단을 삼보일배를 하며 오르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계단길을 내려가던 일단의 스님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인지 난간에 한참 동안 기대어 섰다가 발길을 옮긴다.
발걸음이 버거워질 즈음 '해천불국(海天佛国)' 한자 각인이 커다란 바위 위에서 산 아래쪽을 굽어보고 있다. 명나라 때 왜구 퇴치로 이름을 날린 후지계(侯继高, 1533-1602) 장군이 새겼다는 이 글귀는 보타산 승경을 잘 표현하고 있어 보타산의 별칭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바위 위에는 구름과 안개에 싸인채 견고하게 서있는 모습으로 인해 '운부석(云扶石)'이라 불리는 바윗돌도 하나 자리하고 있다.
사십여 분만에 해발 약 290여 미터 불정산(佛顶山) 정상에 올라서니 여러 명의 동자들이 큰 조롱박을 끄는 기념 조형물 맞이한다. 바윗돌에 새겨진 '올라오니 좋구나(上来就好)'라는 문구처럼 고된 발걸음의 수고로움 끝에 올라서는 산정은 높이를 떠나 감흥이 남다르기 마련이다.
여러 명의 동자들이 큰 조롱박을 끄는 기념 조형물 주변을 둘러보고 산정 뒤편에 자리한 혜제선원의 천왕전과 구릿빛 석가모니상을 모신 대웅보전 등을 살펴보았다. 이곳도 보타산 여느 명승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북적대기는 마찬가지다.
바다와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쪽으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의 동상이 서있다.
남송의 시인 육유(陆游, 1125-1210)가 83세 고령에 이곳을 방문해서 보타사(현 보제사) 주지 소암(小庵) 고선사와 함께 산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도를 논하고 <해산(海山)> 등의 시를 남겼다고 동상 앞 안내판이 설명한다.
여정의 끝, 화룡점정을 찍다
불정산도 훌쩍 둘러보았으니 이쯤에서 궁금증과 욕심을 내려놓고 귀로에 오르기로 했다. 되돌아 내려가는 길에 매점 한 곳에서 '보타산(普陀山)' 글자가 박음질된 면제 숄더백 하나를 기념품으로 챙겼다.
나무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오르며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시전을 구하는 티베트 전통복장 차림의 모녀로 보이는 두 여성에게 주머니 속 남아 있던 지폐 한 장을 건넸다.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 성지를 찾아 순례를 하지만 티베트 지역 불자들도 역으로 해외 불교성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지만 신심(信心)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성인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찾아 천리 먼 길도 마다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법우사 후문을 통해 구룡보전에 다시 들렀다. 보전 안 한쪽 공간에서 스님 한 분이 방문객들이 준비해 온 천 등에 기념 인장을 찍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숄더백을 내미니 젊은 스님이 손바닥 크기의 인장 세 개를 연이어 호쾌하게 내려 찍는다. 꿈속에 복사꽃 만발한 동산에서 노닌 듯 꿈같았던 일박이일 여정의 그림 폭에 화룡점정을 찍은 기분이다.
귀로는 보타산으로 올 때의 역순으로 같은 교통편을 이용하면 된다. 버스로 선착장으로 이동해서 배편으로 본 섬으로 들어왔다. 저우산 주쟈젠 우공쓰 선착장(朱家尖蜈蚣峙码头) 부근 길게 늘어선 가판대 가게나 건물 매장에서는 이 지방 특산 건어물, 양념이 된 어물, 한입 크기로 각개 포장된 어편육(鱼片肉) 등을 챙길 수도 있다.
선착장에서 보타 장거리 버스터미널까지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예매해 두었던 상하이행 버스표를 15:30으로 한 시간 반가량 앞당겼다.
발바닥은 욱신거리는데 Must go 중국 위시리스트 가운데 하나를 지웠으니 마음은 한결 가뿐하고 흐뭇하다. 새벽안갯속에 집을 나서 저녁노을이 질 때 돌아왔다는 서하객(徐霞客)도 힘든 여행 끝에 느끼는 이런 성취감 때문에 평생 중원 천하를 주유했을는지도 모르겠다.
버스는 어느덧 항저우만 바다를 가르 지르는 다리 위를 달리고 하늘 높이 뜬 달은 바다 위로 교교한 빛을 던지고 있다. Lao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