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조고도(八朝古都) 카이펑(2/3)

개봉부와 포청천

by 꿈꾸는 시시포스

개봉부는 후량 카이핑(开平) 원년(서기 907년)에 처음 건설되어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 재건된 현재의 개봉부는 대지 4만㎡, 건축면적 13,600㎡에 정문, 의문, 정청, 의사청, 매화당을 중심축으로 하여 좌우로 천경관, 명례원, 잠룡궁(潜龙宫), 청심루, 옥사, 영무루 등 50여 동의 전당과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의문(儀門), 좌우측에 비정이 하나씩, 비정 뒤에 부사서옥(府舍西獄)과 포공사법박물관이 각각 위치한다. 비정의 개봉부윤제명기비(開封府尹題名記碑)는 송나라 태조 원년 960년부터 휘종 4년 1105년까지 146년 기간 중 카이펑 부윤 183명의 이름과 관작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비석 어디쯤에 구양순, 범중엄, 사마광을 비롯해서 '판관 포청천'이라는 드라마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포증(包曾) 등의 이름도 들어 있을 것이다. 명나라 말 황하가 또다시 범람해서 카이펑 관청이 유실되었지만 이 비석은 건사되어 원본이 카이펑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 카이펑과 뤄양 등 황하 중하류 지역은 너른 황화의 품에서 황화문명을 탄생시킨 곳이지만 잦은 홍수로 제방이 천 수백여 차례나 무너지고 물길이 26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물이 넘쳐 모래와 진흙이 덮친 도시에 다시 도시를 세우기를 반복하여 카이펑의 땅 속에는 전국시대 위나라, 당나라, 북송, 금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도시가 아래에서 위로 차례로 차곡차곡 잠자고 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질 않는다.


죄인들을 가두어 두는 장소인 부사서옥(府舍西獄) 내부는 한두 평 남짓 크기로 나누어진 좁고 어두운 수감소가 칸칸이 구획되어 있다. 그 벽면에는 각양각종 형태의 고문과 형벌을 그림과 함께 상세히 설명하는 자료가 붙어 있다.


코를 자르는 의형(劓刑), 곤장으로 치는 장형(杖刑), 눈을 도려내는 결목(抉目), 허리를 자르는 요참(腰斬), 독을 주입하는 짐독(鴆毒), 끓는 물에 끓이는 탕확(湯镬), 발을 자르는 월형(刖刑), 녹은 주석이나 납 물을 입으로 주입하는 관연(灌铅), 단어 뜻 그대로 언덕을 천천히 오르내리듯 고통을 서서히 최대한으로 느끼면서 죽어가도록 하는 능지(陵遲) 등 종류별 형 집행을 묘사한 잔혹한 그림들이 소름을 돋게 한다.

범죄인에 대한 각종 형벌 모습

뜰 한가운데 포공의 전신 동상이 자리하고 '집법여산(集法如山)'이라 쓰인 편액이 걸린 건물 안에 포공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전시하고 있는 포공사법문화박물관을 잠시 둘러보고 의문으로 들어섰다. 청사(厅事) 마당 한가운데 '공생명(公生明)'이라 쓰인 계석(戒石)이 놓여 있고 그 좌우에 좌청과 우청이 자리한다.


청사 안에는 정면 벽 높이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이 걸렸 있다. 그 아래 황금빛 성난 파도 그림을 배경으로 큰 집무 탁자와 의자가 놓였고 그 앞에 용(龍), 호(虎), 개(狗) 두상의 큼지막한 작두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앞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주위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 않고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쳐들고 허리를 연신 굽혔다 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무언가 하소연을 토로하고 있다. 무슨 풀지 못한 억울함이 있었길래 천 년 전 판관의 집무실에 들어와서 저리 간절히 호소하는 것인지 궁금증과 함께 측은한 마음이 인다.


정청(正厅) 뒤쪽으로 의사청(議事廳), 제민당(濟民堂), 매화루(梅花楼), 그리고 '대송남아(大宋南衙)'라는 각자가 적힌 조벽(照壁)이 차례로 자리한다. 매대 위에 기념품 등 잡화가 가득한 제민당에서 발길을 돌려 그 뒤편 매화당으로 들어섰다.


포공이 민소(民訴)를 듣던 곳이라는 말처럼 공손책(公孙策)과 마한(馬漢), 왕조(王朝), 조호(趙虎), 장룡(張龍) 등 부관들이 늠름한 자세로 양옆에 시립하고 있고 무릎을 끊은 채 포공에게 억울함을 아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귀 기울여 듣는 포공 등의 밀랍인형 조각상이 당시의 모습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개봉부 정문 앞 공연을 준비중인 사람들

개봉부의 맨 뒤쪽 조벽(照壁)은 담장역할을 겸하고 있다. 매화당과 조벽 사이 뒤뜰엔 '봄의 전령'이라 불리는 황매화 라메이(腊梅)가 가지마다 앙증맞은 작은 꽃을 틔웠다.


개봉부 경내 좌측 맨 뒤쪽 깊숙이 천경관(天慶觀)을 지나 태상노군으로 추앙받는 노자 등 천존(天尊) 세 위의 조상을 모신 삼청전(三清殿)이 자리한다. 그 좌우 벽면은 공자문도도(孔子问道图)와 노자화호도(老子化胡图) 부조가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서 도(道)를 묻는 장면과 노자가 함곡관을 벗어나서 서역으로 가서 서역인과 천축인을 교화했다는 전설을 각각 묘사하고 있다. 자못 도교가 유교나 불교 보다 위상이 높다는 것을 은연히 어필하고 있다.


삼청전 앞마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송 인종 등 황제 5위의 신주를 모신 복우전(福佑殿)과 송 태조 등 황제 3인의 신위를 모신 성조전(聖祖殿)이 각각 자리한다. 사찰 맨 뒤쪽 높고 깊숙한 곳에 조사당을 조성하는 것과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삼청전 옆 벽면에 '연기원 휴식실(演员休息室)'이라는 팻말이 걸린 통로 안쪽에서 옛 관복 차림 한 무리 사람들이 옷매무새와 얼굴 분장을 고치고 있다. 아홉 시가 가까워지자 일렬로 서서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그들 뒤를 따라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


영무루 앞마당 양쪽의 장랑에 걸린 개봉 부윤의 부조도를 둘러볼 때, 관람객을 위해 이곳에서 여섯 가지 공연을 각기 하루 두 세 차례 연출한다는 안내문을 보았던 터였다. 공연 프로그램 목록에는 개아영빈(开衙迎宾), 포공단안(包公断案), 태극 쿵후(太极功夫), 방전촉서(榜前捉婿), 민간 잡예(民间杂艺), 연무장 영빈(演武场迎宾)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정문 앞 광장에는 언제 몰려들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운집해 있다. 부관들과 수십 명 관졸들이 양옆에 시립한 가운데 포증이 고소인의 얘기를 경청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10여 분간 지켜보았다. 일면 연기자의 과장된 제스처와 톤을 높인 목소리가 '산처럼 엄중하고 사사로움 없는 법 집행(执法如山 铁面无私)'으로 아직껏 칭송받고 있는 포증의 실제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하다.


개봉부 내 오른편 명경호(明镜湖)를 끼고 자리한 명례원, 잠룡궁(潜龙宫), 청심루 등은 둘러보지 못하고 남겨둔 채 개봉부를 뒤로하고 대상국사(大上国寺)로 걸음을 옮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팔조고도(八朝古都) 카이펑(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