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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월산 가람과 대왕암

@사진: 겸재 정선의 「골굴석굴(骨窟石窟)」

by 꿈꾸는 시시포스

경주 K호텔에서 일박이일 워크숍을 마쳤다. 큰 지진이 일어난 지 두 해가 지났지만 피해를 입은 지역 경제에 작으나마 도움을 주고자 이곳으로 장소를 정했다고 한다.


늦가을 동해안 바닷가를 따라 부산으로 향할 예정이다. 경주 보문단지 안에 있는 호텔을 출발해서 덕동호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앞쪽 함월산은 능선 마루에 하얀 눈을 이고 있다. 소설 대설 모두 지났으니 대수로울 것도 없겠지만 왠지 신비로워 보인다.

한국의 둔황석굴로 불리는 골굴사


토함산과 함월산 줄기가 맞닿은 곳 추령터널을 지나면 양북면이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점프스키 트랙처럼 좁고 가파른 계곡 위로 난 추령교를 미끄러지듯 내리 달리다가 대종천을 만나 함께 동남쪽으로 향한다.

함월산 기슭에 있는 골굴사와 기림사는 인도 스님 광유성인이 창건했다고 한다. 불국사보다 200여 년 앞서 건립된 골굴사는 인도 사원 양식을 본떠 지은 석굴사원으로 한국의 둔황석굴로 불린다고 한다.

골굴사 입구 길옆에 서있는 다양한 선무도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동상들

함월산이 동쪽으로 내리 뻗은 줄기들 사이 긴 오르막 협곡에 안겨 있는 골굴사, 선무도 자세의 동상들이 도열한 오르막을 지나 인왕상이 양쪽에 버티고 선 일주문으로 들어서서 경내로 오르는 길 바람 소리가 매섭다. 청량한 공기는 코 입 기도를 지나 폐부로, 식도를 지나 오장육부로 깊숙이 파고들며 진저리를 치게 했다.

대적광전에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좌우로 하고 중간에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이 가부좌하고 있다. 맨 뒤쪽 가파른 절벽에는 보물 581호 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해서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나한굴 칠성단 산신당 등이 들어서 있다.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국의 기림사


골굴사는 범어사 양익 스님이 체계화한 무술이라는 선무도의 총본산으로 선무도 대학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골굴사 옆 골짜기에 들어서 있는 선무도 대학은 텅 비어 있고 수련관인 원효원 뒤에는 말 세 필이 울타리가 둘러쳐진 마당에서 한가롭다.

선덕여왕 때인 642년 광유성인이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국의 함월산 자락 계곡 옆에 건립했다는 기림사가 골굴사 북쪽 십 여 리 지점에 자리한다.

함월산 기림사 일주문

비탈 위에 서있어 더 높아 보이는 일주문으로 등산복 차림의 탐방객 일단이 쏟아져 나왔다. 사천왕문을 지나 진남루 명부전 응진전 대적광전 약사전 관음전 삼천불전 삼성각 등을 둘러봤다.

단청이 없는 진남루와 대적광전은 규모가 크고 중후하면서도 단아하다. 겨울에도 화단에는 화초가 만발하고 마당엔 늘어진 가지마다 빨간 홍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 등 정원처럼 아름답게 잘 단장된 경내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을 봉안

경내에 특이하게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을 봉안한 사당이 있다. 7년간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지은 남산 용장골에 있던 사당이 훼절되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란다.

보물 제415호로 지정된 유려한 모습의 건칠보살반가상은 나무로 된 골격에 삼베를 감고 옻칠을 반복하는 기법으로 만든 불상으로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유물 중 가장 인상적이다. 대좌에 남아 있는 묵서가 연산군 때인 1501년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상임을 알려준다고 한다.

일주문을 나서며 가람 배치를 보니, 옆에 호암천을 끼고 일주문을 머리, 성보박물관을 등줄기로 해서 양쪽에 여러 전각들이 거북의 몸통처럼 배치되어 있는 것이 말 그대로 '거북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다.

기림사 스님과 견공

다시 동남쪽으로 차를 달려 감은사지로 향했다. 감은사는 대종천이 동해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에 펼쳐 놓은 너른 들이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 넉넉한 언덕 위에 자리한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절터를 국보 제112호로 지정된 13.2미터 높이의 장중한 두 삼층석탑이 덩그러니 동과 서에 지키고 서있다.

로열 패밀리의 오블리스 노블리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문무대왕, 불력으로 왜구를 격퇴하려 한 그는 죽어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고자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 바다 가운데 대왕암에 묻혔고, 그의 아들 신문왕은 부친의 뜻을 받들어 감은사를 지었다고 한다.

경주에 남아있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 중에서 신라 로열패밀리의 나라와 백성에 대한 지고한 사랑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이곳 감은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옛 감은사 터에 서있으니 절로 감동이 밀려온다.

감은사지 동탑과 서탑

문무대왕릉은 대종천 하구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자리한다. 대왕암 앞 툭 터인 해변으로 파도가 연신 우뢰 소리를 내며 밀려와서 부서진다. 바다 위에 은빛 진주알들을 흩뿌려 놓은 듯 갈매기들이 무리 지어 점점이 떠 있고, 해변에 내려앉은 갈매기들은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날갯짓하며 날아오른다.

인적이 드물어 쓸쓸해 보이는 봉길 대왕암 해변과는 달리 대왕암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촌 마을에 늘어선 식당 여기저기 바다를 향해 제상을 차려놓고 용신굿에 정성을 쏟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역사, 스토리, 감동, 그리고 삶의 위안


우리의 발길도 누군가에게 저런 흔적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서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마음속에도 감포 바다처럼 서늘하지만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고 있을 터인데...

역사, 스토리, 감동이 있는 곳, 그리고 고달픈 삶에 위안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경주 함월산과 대왕암 해변을 아쉬운 마음으로 뒤로하고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경주 #골굴사 #기림사 #감은사 #대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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