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완연한 봄날씨입니다. 바야흐로 도로변 벚나무들도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퇴근길에 영일대 해변을 거쳐 환호공원까지 산책을 했습니다.
파도가 잔잔한 해변가는 평일이라 인적이 드물고 차도 옆 산책로에도 산보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일뿐 한산한 편입니다. 갈매기도 몇 마리만 눈에 띌 뿐 해변의 그 많던 갈매기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요트 계류장 부근에서 해안로를 건너 환호공원으로 향하다가 언덕배기 기슭 절집 지붕에 불상이 보여 그쪽으로걸음을 옮겨 보았습니다.
호암사사라는 자그마한 그 사찰의 스님은 보살님 한 분을 배웅하면서 낯선 객에게 석가모니를 모신 법당도 둘러볼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인자한 얼굴의 스님이 지붕 위 불상은 관음보살이라 알려줍니다. 스님은 머지않아 초파일이 돌아오니 일손과 함께 마음도 바빠질 거라며 시간이 나면 봉축일에 한 번 들르라고 합니다.
스님은 출가한 지 30년이 되었다고 했고 나는 서울 부산 인천 등을 떠돌다 이곳에서 퇴직을 맞이할 거라고 했습니다. 이제 막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는 봄다운 봄이 시작되었지만 스님과 나는 세월의 무상함에 공감했습니다.
스님과 마주 보며 한 번 합장을 하고 발길을 돌려 언덕배기 위 환호공원으로 올랐습니다. 공원 위에 자리한 스페이스워크는 하절기인 4~10월에는 오후 8시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개방을 합니다. 높은 기둥 위에 좁은 철계단을 올려놓은 스페이스워크는 밑에서 보기에도 아찔합니다. 제일 높은 곳까지 걸어서 올라가려고 두세 번 시도를 했지만 오금이 저려와서 매번 중간쯤에서 그만두곤 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보지 않은 골목으로 길을 잡아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 부근 슈퍼에서 친구가 극찬하며 추천했던 '느린 마을' 막걸리 한 병을 집어 들었습니다. 장수(長壽)나 지평(祗平) 등 다른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그 맛이 궁금했습니다. 마침 집 냉장고 속에는 반건조 오징어 한 마리가 남아있습니다.
프라이팬에 오징어를 굽고 막걸리 뚜껑을 열었습니다. 반만 비우려던 막걸리 병은 바닥을 보이려고 합니다. 오징어 다리와 바닥에 깔린 한 잔은 내일을 위해 아껴두었습니다. 고개를 드는 객수는 여전히 낯설고 고독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호젓한 봄날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