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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Jun 10. 2024

태행지맥 태행산

일몰 비바크 명소

수인분당선 고색역에서 내려 수인선 인천방향으로 갈아탔다. 예전부터 일몰 비바크(Biwak)의 명소로 알려진 화성의 태산(泰行山)과 그 주변의 삼봉산 등을 올라볼 요량으로 나서는 길이다. 반팔 셔츠 차림으로 나선 이른 아침 일교차가 크고 전철 안은 냉방이 잘되어 셔츠 밖으로 드러난 팔뚝에 싸늘한 냉기마저 느껴진다.


오목천역에서 지상으로 나온 전철 좌우 차창 밖으로 자욱한 안개에 묻힌 마을과 산천이 스쳐 지난다. 어천역 북변 어천리 마을도 안개에 파묻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차량이 드문드문 질주하는 화성로를 따라 천불사 쪽으로 향했다. 어천교차로 부근 논에는 부지런한 농군 부부가 휴일 이른 아침부터 농작물을 둘러보고 있다. 사흘 전이 일 년 중 제일 바빠서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는 절기 망종(芒種)이었으니 농부들의 손과 마음이 바쁠 시기일 터이다.


동화천 위에 걸린 숙곡교를 건널 무렵 우측 너른 논에서 서로 어울려 부리질에 여념이 없는 백로와 오리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숙곡삼거리에서 들려오는 동남아계 언어와 뻐꾸기 울음이 섞인 소리를 뒤로하고 건널목을 건너 천불사 쪽으로 향했다. 본능이 시키는 탁란(托卵)의 소명을 여태껏 못다 한 까닭인지 뻐꾸기 한 쌍이 엿장수 가윗날 놀리듯 날갯짓하며 전깃줄로 내려앉았다가 날아오르곤 한다.


산행 들머리로 삼은 능선 아래 자리한 천불사에서 불기 2540년에 조성된 미륵불 석상에 합장을 하며 '일산일사(一山一寺)'의 모토 중 일찌감치 '일사(一寺)'의 고민을 덜었다. 지상에서 한 뼘 정도 떠오른 태양이 안개를 몰아내며 산천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천불사 뒤쪽에서 잡목을 헤치며 주 능선으로 올라섰다. 태행산은 수리산 남쪽에서 한남정맥(漢南正脈)으로부터 분기한 서봉지맥(棲鳳枝脈)에서 재차 분기한 태행지맥(太行枝脈)의 주봉이고, 오두지맥(烏頭枝脈)의 분기점이 되는 산이다. 지내산 옆을 비껴지나 태행산에 오른 후 지내산으로 되돌아와서 삼봉산을 거쳐 장안대학교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마음속으로 그렸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태행산과 태행지맥 한자를 각각 '泰行山', '太行枝脈'으로 표기


능선 위 벤치 옆에 남녀 등산화 한 켤레씩이 벗은 양말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다. 능선을 따라 난 폭신한 흙길에 맨발 자국이 눈에 띈다. 솔숲 사이로 오솔길처럼 아늑히 길게 이어진 능선길은 태행산까지 시계 방향으로 길게 뻗어 갈 것이다. 얼마 후 발아래에 시선을 둔 채 스틱을 하나씩 짚으며 사뿐사뿐 맨발로 흙길을 밟고 오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온다. 신발의 주인들로 보이는 노 부부는 나란히 놓여 있던 한 쌍의 신발처럼 서로 의지하며 긴 세월을 함께 동행했을 것이다.


갈림길에서 만난 첫 이정표가 지내산 4.01km, 태행산 5.22km 삼봉산 6.32km라고 알린다. 요란한 산새 소리와 함께 산 아래쪽에서는 뻐꾸기 울음이 그치지 않고 들려오고, 부지런한 거미들은 너른 등로를 가로질러 그물을 쳐놓았다. 그중 수고로움이 돋보이는 몇몇 정교한 거미줄을 만나서는 림보 춤을 추듯 다리를 쪼그리고 허리를 숙여 그 밑으로 지나갔다. 거미줄이 온전한 것으로 보아 갈림길쯤에서 돌아갔을 노부부를 빼곤 내가 오늘의 첫 산행자로 보인다.


고도 100여 미터 남짓 평탄한 능선길은 키 낮은 잡목 위로 우뚝우뚝 아 있는 솔숲 사이를 지난다. 개망초 금계국 등 들꽃으로 뒤덮인 비봉매송도시고속도로 위에 걸린 생태통로를 건넜다. 봉담읍 내리와 비봉읍 쌍학리를 잇는 덕고개로 내려서니 산행 이정표와 5067부대 부대장의 '군 소총사격장' 경고판이 나란히 서있고, 바이커 한 분이 쌍학리 쪽으로 페달을 밟으며 지나간다.


덕고개에서 태행산 정상까지는 3km 거리다. 숫자 '3'자 형태 산행코스의 가운데 변곡점을 돌아서자 우측으로 휘도는 능선 저편 2.5km 거리에 자리한 태행산이 눈에 들어온다. 공기는 선선하지만 얼굴과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능선길은 좌우로 더욱 울창한 노송 군락을 내놓으며 고도를 200미터 대로 높여 간다.


등로는 태행산 정상 1.57km 전방 지점에서 우측으로 90도 각도로  꺾어지며 내리막길을 내놓는다. 1~200미터 고도의 그리 높지 않은 능선길이지만 트인 조망도 없고 수시로 오르내리는 길은 내놓아 산객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산비둘기 울음이 큼큼한 밤꽃 내음에 실려왔다. 온통 초목으로 뒤덮인 고개 주변은 원시림으로 들어선 듯 색다른 풍광을 발한다.


고개에서 올라선 능선은 다시 저만치에 높이 솟아 있는 태행산과의 사이에 백학고개를 내놓으며 산객에게 느긋한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라고 타이른다. 산이 건네는 말을 귀담아 걸음을 늦추며 골을 내리고 올라 능선으로 올라섰다. 산정은 모습을 감춘 채  앞쪽을 향해 가지런히 놓인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능선마루 가장자리 정상으로 향했다. 그 길 옆에는 부부가 땅에 닿을 듯 머리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따느라 여념이 없다. 야자수 매트가 깔린 길옆 융단처럼 만개한 금계국이 레드카펫인양 산정으로 인도한다. 좌우로 시야가 트였고 전망대처럼 산정 위에 놓인 너른 데크로 올라서니 사방으로 툭 트인 전망에 긴 산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간 듯하다.


반대편에서 산객 한 분이 길게 놓인 나무계단을 따라 힘겹게 산정으로 올라선다. 이곳 화성이 고향이라는 환갑을 갓 넘겼다는 그 산객과 서로 부탁하여 인증 숏을 남겼다. 데크 가운데 놓인 흐릿한 안내도를 대신하여 사방을 가리키며 칠보산, 수리산, 광교산, 건달산 등 다 걷히지 않은 안개구름에 싸여 있는 산군을 소개하는 그 산객의 설명이 고맙기 그지없다.


건달산에 이어 화성시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이곳 태행산 산정은 그 남쪽의 자안리나 남서쪽 청요리 마을에서 지척 거리라 비바크족들에게는 그 명성에 걸맞은 더없이 좋은 비바크 장소로 보인다. 오후 늦게 올라 일몰을 음미하고 비바크를 한 후 다음날 새벽 일출을 맞이하기에 안성맞춤일 듯하다.


사방을 한 번 더 조망하고 나서 백학고개로 되돌아 내려와서 지내산 갈림길 쪽으로 난 비탈길을 타고 올랐다. 지내산으로 오르는 길은 급전직하 경사가 심하여 가파르다. 산정이라고 하기엔 특별할 것도 없고 나뭇가지에 '지내산(지네산) 정상 해발 295m'라는 나무 푯말이 걸려 있 뿐이다. 그 옆 다른 나무에 걸려 있는 <지네산의 유래>라는 표제의 안내판이 이 산에 얽힌 전설을 아래와 같은 전해주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밀려서 아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돌연 이 산에 안개가 퍼지기 시작하였고, 당황한 왜군은 혼란에 빠져서 엉뚱한 곳으로 총을 쏘아대며 갈팡질팡하였다.


그 사이 지형에 익숙한 아군이 안갯속에 몸을 감추어 가며 왜군을 반격하였고, 결국 왜군을 무찌르게 되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하여 한갓 미물인 지네가 자신의 독을 퍼트려 안개 같은 역할을 하였기에 아군이 쉽게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안골(내 1리) 사람들은 지네산을 당산(堂山)으로 모시고 2년에 한 번씩 당제(堂祭)를 지내기 시작하였으며, 안골은 아파트 건설로 인하여 마을이 없어졌지만 몇 대를 물려온 당산나무(회화나무)는 아직도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다."


'Da*m'과 '산*샘' 지도 앱 모두 지내산을 삼봉산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기실 삼봉산은 화성시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지내산에서 2.3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산객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삼봉산으로 가는 능선길에 뚜렷하게 찍힌 편자 자국들이 등로 곳곳에서 목격되었던 정체 모를 배설물의 주인이 말(馬) 임을 짐작케 한다. 그 짐작은 태행산 남쪽에 '산들래 승마클럽'이 있다고 상기시켜 주는 동행의 말에 확신으로 굳어졌다.


태행산 정상부터 두어 시간 호흡을 맞추며 산행을 함께 한 그 산객을 뒤로하고 고삐를 다잡아 삼봉산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완만한 내리막 길이 다하고  삼봉산 쪽으로 난 오르막길이 뻐꾸기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삼봉산과 상리 갈림길 능선에 올하서니 지척에 있는 팔각정이 눈에 들어온다.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날파리 소리 때문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산객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 삼봉산 정상의 이층 팔각정을 노부부가 온전히 독차지하고서 한가롭게 휴일 한 때를 보내고 계시다. 산행을 시작한 지 여섯 시간 만에 당초 계획했던 태행산, 지내산, 삼봉산 세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장안대학교 쪽으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능선과 다름없어 이정표가 없었더라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왕림봉'을 지나자 날머리인 상리 마을이 약 750미터 지척으로 다가왔다. 앞선 산행자의 산행 후기에서 보았던 송전탑과 능선 오른편 아래쪽에 장안대학교 교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과 대학교 사이를 지나는 철길로 고속열차가 굉음과 함께 쏜살같이 지나간다. 장안대 후문 정류장에서 30-1번 버스에 올라 오목천역으로 이동해서 수인분당선을 탑승하여 귀로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시절은 속절없 흘러 내일이면 바야흐로 단오절이다.


오늘 산행을 시작할 무렵 백구가 내려앉은 논에서 모를 돌보던 어천리 부부 농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전원에 묻혀 사는 장부의 마음을 노래한 단가 <백구가(白鷗歌)>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 본다.


"백구(白鷗)야 훨훨 나지 말어라. 너를 잡으려 내 안 간다. 일신이 한가허여 너와 노자고 찾았노라.


강산의 터 닦어 구목위소(構木爲巢)허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면, 장부 살림살이가 이만허면 넉넉헐까.


송백수양(松柏垂楊) 푸른 가지 높다랗게 그네 메고, 녹의홍상(綠衣紅裳) 미인들은 오고 가고, 가고 오고, 오락가락으 추천(鞦韆)을 허는디, 우리 벗님은 어디 가고, 단오 시절인 줄을 모르더라.


아서라, 모두 다 쓸 데 없네. 친구들아, 가자서라. 승지나 구경헐까보다."

_서정민, 『오선악보로 보는 단가』中 김연수 唱 <백구가(白鷗歌)>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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