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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May 13. 2024

응봉산과 동해 일출

고래불 해변의 일출

우리 일행을 태운 친구 M의 수소동력 차량에 올라 포항을 출발해서 7번 국도로 올라탔다. 강원도 삼척시와 경상북도의 울진군과 봉화군의 경계에 자리한 응봉산 산행의 들머리인 덕구온천까지는 140km 여를 달려가야 할 것이다.


동해 해변에서 멀찍이 떨어진 내륙을 가로질러 달리던 엑소는 화진해수욕장 부근에서 해변으로 접근해서 지경, 부경, 장사 등을 거쳐 계속 북상한다. 구계항 포구 두 등대가 미명의 바다를 향해 붉은 불빛을 깜박인다. 강구 시장 앞을 스쳐 지나고 오십천을 건너갈 즈음 오른쪽 해변 땅과 하늘 사이에 붉은빛 여명이 완연해졌다.


달리는 차 안 조수석과 뒷자리에서 M과 나는 지도 앱을 켜들고 적당한 해맞이 장소를 물색하고 핸들을 잡은 M에게 고래불해수욕장을 향해 엑셀을 가속하도록 채근했다. 해돋이를 보아야 한다며 부산을 떠는 H의 성화에 못 이겨 네 시경 숙소를 출발했던 터였다.


고래불 남쪽 해변의 영리 해수욕장에 05:22 쯤 발을 내디뎠다. 보름달처럼 밝고 둥근 태양은 해면 위로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고 태양 주변 하늘은 온통 선홍색 핏빛이다. 핏빛 하늘과 무채색 해면이 검고 굵은 수평선으로 나뉜 모습이 붉은 막이 드리워진 무대를 보고 있는 듯하다.


영덕군 해변을 지나 울진군 후포로 들어서자 도로변 좌우로 아카시꽃이 숲을 이룬 산과 언덕이 스쳐 지난다. 아시안하이웨이 AH6 노선의 일부임을 알리는 교통표지판도 간간이 눈에 띈다. 이 도로를 따라 강릉과 원산을 지나고 블라디보스토크, 중국 하얼빈, 카자흐스탄, 모스크바를 거쳐 벨라루스까지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울진 왕피천 하구 남쪽 언덕배기에 자리한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으로 향했다. 망양정로를 따라서 신포 4리 해변 마을에 차를 새운 후 바다를 등지고 망양정이 자리한 언덕 위로 난 계단길을 올랐다. 쭉쭉 뻗은 금강송 등 수목이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가 경쾌하다.

 

북변의 왕피천공원과 함께 해맞이공원으로 단장된 망양정 주변은 정자 아래 거칠 것 없이 시원스레 펼쳐진 동해가 가슴을 툭 트이게 한다. 고려 때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진 망양정은 1471년 현종산 남쪽 기슭으로 이전되었다가 185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8년 중건하였고 2005년에는 완전 해체하여 새로 건립했다고 하니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고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관동명승첩> 속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 절벽 위에 위태롭게 자리한 망양정은 시기상 현종산 기슭에 있을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일 터이다.


정자 위로 오르면 망양정을 노래한 문인들의 시문(詩文)이 편액 되어 있다.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했다는 명성에 걸맞게 정조 임금을 비롯해서, 관동별곡을 지은 정철, 매월당 김시습 등 수많은 명사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고 감흥에 젖어 찬미하는 글을 남긴 것이리라.


뭇 봉우리 거듭거듭 서리서리 열리니

성낸 파도 거친 물결 하늘에 불어온다.

이 바다 변해서 술이 된다면

어찌 단지 삼백 잔만 기울이겠는가

列壑重重逶迤開 驚濤巨浪接天來

如今此海變成酒 奚但只傾三百盃

_숙종대왕 어제(御制)


새소리와 신록에 싸인 망양정 정자 주변의 소망나무전망탑, 울진대종 등 공원을 둘러보고 해변 마을로 내려서서 바람에 실려와 귀와 코 속으로 파고드는 해초 냄새와 파도 소리를 뒤로 했다.

망양정과 울진대종 누각


왕피천 위에 놓인 수산교 남단의 뷔페식 한정식 식당인 '성유식당'에서 아침을 들었다. 부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석회암 동굴인 불영계곡의 성유굴(聖留窟)이 있어서인지 이 식당을 비롯해서 근처에 '성유'라는 단어가 들어간 상점 간판이 여럿 눈에 띈다.


서예작품과 기이한 수석이 벽면과 장식대를 채우고 있는 식당은 다양한 메뉴가 갖춰져 있어 산행에 앞서 배가 듬직해졌다. 7번 국도를 버리고 울진북로, 남대천과 두천천을 따라 난 하죽로와 하당 1길을 거쳐 십이령로로 접어들었다. 도로 좌우로 화마가 핥퀴고 간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는 얕은 산과 언덕을 스쳐 지나며 5km 여를 더 달리자 산행 들머리인 덕구온천 주차장에 닿았다.


온천 리조트와 스파월드 사이에 자리한 덕구온천 지구 너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채비를 했다. 아직 갓 여덟 시가 지난 시각이라 대여섯 시간으로 예상되는 산행을 앞두고 마음은 느긋하다. 산행은 덕구계곡 북쪽의 긴 능선을 따라 응봉산 정상을 거쳐, 계곡의 상류 쪽의 13번째 다리 부근으로 내려서서 첫 번째 다리까지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얕은 능선 고갯마루 해발 200여 미터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등산로 초입 능선이 맨살을 드러내며 불에 타서 그슬린 자국이 완연한 노송 숲을 좌우로 내놓는다. 불에 타서 그을린 채 겨우 살아남은 노송들, 앙상한 가지로 벌목을 기다리는 노송군락, 일정한 크기로 잘려 한데 쌓여 있는 아름드리 통나무 등이 화마에 휩싸인 숲의 처참한 광경을 상상하게 한다. 등로 주변을 따라 식재한 한 뼘 남짓 크기의 어린 묘목들에게서 이 숲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본다.


등로 옆 울진 소방서에서 설치한 '현 위치 01'이라는 번호가 적힌 목각 기둥 형태의 위치 표시판이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소방청은 빅데이터 기반 GIS 분석을 통해 산악사고 다발 전국 주요 등산로에 위치표지판 11,762개, 간이구조구급함 1,116개, 경고표지판 1,251개 등 시설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2022년 전국 119 구조대의 산악사고 구조 건수는 11,978건으로 실족, 길 잃음, 부상 등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포항 북부소방서장은 위치표지판은 자신의 아이디어로 설치되기 시작한 것으로 산악사고 발생 시 구조시간을 단축시키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했었다.


등로 주변에서 끊임없이 눈에 띄는 산불의 상처는 능선이나 골의 위치나 방향, 임도로부터의 거리, 수목의 종류 등에 따라 각기 그 피해의 정도가 확연히 달랐음을 알려준다.


화마가 피해 간 능선에는 고목들이 온전한 자태로 숲을 이루고 있다. 고개를 쳐드니 푸른빛 선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노송 군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마치 다이버가 바닷속 무성히 자란 미역 숲에서 수면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저럴까 싶다.


능선 너머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한때 집집 벽에 걸려 어김없이 제 시각을 정확히 알리던 뻐꾸기시계처럼 곧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올 것이라고 알리고 있다. 지난 일요일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였으니 더디게 찾아온 듯싶었던 봄도 쉬이 빨리 지나가고 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_최영미의 시 <선운사에서> 中


모랫재 119 구조요청 제2지점 갈림길

제5지점 헬기장을 지나자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해발 559미터에 자리한 위치표지목 6 지점의 이정표가 정상까지 2.77km라고 알린다. 화마가 핥퀴고 간 상처에도 아랑곳 않고 꼿꼿하게 솟아 있는 두 그루 아름드리 금강송 모습이 늠름하다.


짧은 암릉이 시야가 트이고 좌측으로 크게 휘도는 능선을 바라다보며 응봉산 정상이 어디쯤인지 가늠해 본다. 완만한 경사의 등로를 따라 고도를 높여 가며 해발 700미터쯤 능선으로 올라서자 성긴 숲 고목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더없이 시원하다. 모자를 벗어서 손에 드니 능선을 타고 세차게 넘어오는 바람에 머릿속에 배인 땀이 모두 씻겨 나갈 듯하다.


해발 830미터 두 번째 헬기장에 도착하자 정상까지 거리는 1.3km로 가까워졌고, 등로 옆 좌측 사면은 깎아지른 절벽처럼 경사가 급하다. 정상 턱밑에 다다르자 능선은 오른편 강원도 삼척시 쪽으로도 시야를 내어주는데, 대양의 파도처럼 크고 작은 봉우리들 일으켜 세우고 있는 산군의 모습이 장쾌하다.


정상부 완만한 능선 앞에 응봉산 정상이 치켜든 매의 머리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 정점에 동해 쪽을 향해 서있는 응봉산 정상 표지석이 해발 998.5미터에 올라섰음을 알린다. 날이 맑아 사방으로 트인 전망은 시야가 멀리까지 닿는다. 멀리 동해 푸른빛 바다는 하늘과 그 경계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 하나처럼 보인다.


몇몇 산객들과 서로 인증 숏 남기기를 도와주며 사방을 둘러보며 정상에 올라선 기쁨을 만끽했다. 정오가 되기까지는 한 시간 여가 남았지만 배꼽시계의 채근에 못 이겨서 정상석 뒤편 벤치에 앉아 배낭에 담아 온 빵과 과일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겹겹 겹쳐 멀어지며 바다로 수렴하는  능선과 하늘을 가슴에 품으며 응봉산 정상을 뒤로하고 덕구계곡까지 급전직하 고도 600여 미터를 낮추는 가파른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숲 속에 산불에 온전히 산화하여 목탄처럼 검댕이가 된 고목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어떤 고목은 줄기 아랫부분이 거의 불에 타서 곧 넘어질 듯 위태하게 서 있고, 어떤 고목에는 불에 타들어간 부위에 산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놓았다. 기기한 모습을 살피며 성화, 날치, 매, 당간지주 등 모습에 걸맞은 이름을 즉석에서 지어주며 미끄러지듯 두 계곡 사이로 내려앉는 가파른 경사의 능선길을 내려갔다.


2022년 3월 4일부터 13일까지 약 9일간 울진에서 시작되어 강원도 삼척까지 확산된 울진·삼척 산불은 1986년 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이라고 한다. 이 산불로 인해 산림 2만 923ha와 주택 319채,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과 창고 154개소, 종교시설 등 31개소 등 총 643개소가 소실되고 337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고 한다. 고성, 삼척, 동해, 강릉, 울진 일대의 산림 23,794ha를 집어삼킨 2000년 동해안 산불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산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영원토록 깨지지 않으면 좋겠다.


능선 중간쯤에 나타나는 전망 데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발을 재촉했다. 다리의 근육을 잔뜩 긴장하며 가히 80도는 넘어 보이는 지그재그로 난 자연석 돌계단 길은 내려가자니 보이지 않는 아래쪽 계곡에서 희미한 물소리가 귀에 와닿는다.


산행 네 시간 만에 덕구계곡 본류로 내려서니 영국 스코틀랜드의 포스교를 본떠 만든 축소형 13 교량과 함께 힘찬 물소리가 반긴다. 브이자로 깊게 파인 계곡 따라 온천수가 발견된 지점으로 지금도 온천수가 용출되고 있는 '원탕' 쪽으로 향했다. 탐방객들을 위해 야외 족욕탕이 조성되어 있는 원탕에 도착하니 몇몇 나이 지긋한 남녀 일행이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재잘대며 즐거워하고 있다.


원탕 건너편의 응봉산 여신을 모신 산신각을 둘러보고 계곡에서 발을 씻은 후 족욕탕에 발을 담그니 산행의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듯하다. 온천수 용출구에서 덕구온천 마을까지는 온천수 송수용 굵은 파이프가 계곡을 따라 길게 연결되어 있다. 사냥꾼에게 상처 입은 난 멧되지가 온천수에 들어갔다가 나아서 도망쳤다는 온천의 유래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보고, 용천수 분출샘의 온천수도 한 모금받아 마셨다.


응봉산 덕구계곡에는 지나온 포스교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 나라 각지의 기념비적인 교량의 모양을 본뜬 축소 모형의 교량 열세 개가 놓여 있다. 누구의 발상으로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온천욕이나 산행을 위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다리를 하나하나 둘러볼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하는데, 실제 교량의 명세는 아래와 같다.


13교.. 스코틀랜드의 포스강 하구를 가로지르는 포스교(The Forth Bridge)는 다경간 캔틸레버(multi-span cantilever; 多徑間 외팔보) 공법을 적용한 총길이 2,529m의 세계 최초 철도교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 중 하나이다. 1890년에 개통된 이 다리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철의 괴물'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오늘날까지 승객과 화물을 운송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다리의 설계 및 건축에 있어 기념비적 의미를 인정하여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2 교량.. 중국 귀저우성 귀주의 장지에허교(Jiangjiehe Bridge; 江界河桥)는 진천동협곡(震天洞峡谷)에 설치된 길이 461m 상판과 계곡 수면까지 거리가 263m에 달하는 트러스트교로 1995년 완공되었다.


11 교량.. 토모에가와 교(Tomoegawa Bridge)는 일본 사이타마현 치치부시(Chichibu, Saitama)에 있는 길이 100m의 다리로 1996년 완공되었으며 일본 교량의 특징적인 형태를 갖춘 아치교이다.


10 교량.. 트리니티교(Trinity Footbridge)는 영국 맨체스터주 샐퍼드(Salford)의 어웰강(Irwell river)을 가로지르는 길이 78m의 사장교 형식 인도교로 명칭은 근처의 트리니티 교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9 교량... 청운교와 백운교는 국보 제23호로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인 751년에 완공된 경주 불국사 자하문의 다리 형식의 계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대웅전으로 통하는 중문(中門)으로 백운교와 청운교를 올라오면 이 문으로부터 부처님의 나라가 전개된다고 한다.


8 교량.. 1873년 고종이 명성황후를 위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남쪽에 향원지와 향원정을 조성하고 목조 다리인 취향교를 놓았다고 한다.


7 교량.. 알루미요 교(Alamillo Bridge)는 알폰소 13세 운하(Canal de Alfonso XIII)를 가로지르는 사장교 형식 250m의 교량으로 스페인이 세비야(Seville)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해 1992년 완공한 교량이다.

덕구계곡 위에 놓인 교량들
덕구온천 원탕 부근에 조성된 족욕탕
덕구계곡 교량들의 모델이 된 교량들


6 교량.. 모토웨이교(Motoway Bridge)는 1933년 스위스 쉐레의 고속도로상 건립된 아치형 교량이다.


5 교량.. 독일 뒤셀도르프의 라인 크니교(Rhine Kree Bridge; Rhein Knie Brücke)는 1956년 건설된 다리로 표지판의 260m 다리라는 설명과는 달리, 구글 등에서는 1969년에 완공된 전체 길이 1,519m 교량으로 확인된다.


4 교량... 하버 교(Harbor Bridge)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알려진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총연장 503m의 트러스트 아치교로 1932년 완공되었다.


3 교량.. 노르망디교(Normandy Bridge)는 1995년 건설된 총길이 2,143.21 m, 주탑 높이 202.74m의 사장교이다. 주경 간 거리 856m로 이 부문 세계 1위를 고수하다가 1999년 건설된 중간 경간 890미터인 일본 Tatara교에게 1위 자리를 빼앗겼다고 한다.


2 교량.. 총연장 1,320m 아치형 다리로 1999년 완공된 한강의 서강대교로 아치에 선홍색 채색을 하지 않아 아쉽다.


1 교량..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1937년 완공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金門橋; Golden Gatr Bridge)로 총길이 2,825m, 교각 간 거리 2,737m의 왕복 6차로 현수교이다. 금문교는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로도 유명하고 치사율도 높다고 하는데, 2000-2023년까지 23년 동안 약 2,000건의 투신 사건이 발생했고 확인된 사망자만 673명이라고 한다.


11 교량 토모에가와 교 부근의 명물 연리지 나무는 뿌리가 뽑혀 드러누워 있어 덕구계곡은 볼거리 하나를 잃은 셈이다. 5 교량 크니교 아래쪽에는 우윳빛 암곡 사이로 낙차 큰 물줄기기가 힘차게 떨어지는 용소폭포가 걸쳐 있다. 폭포 하단으로 내려서니 폭포 위에 걸린 교량과 어우러진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계곡에 걸린 여러 다리를 좌우로 건너며 길게 이어지던 등로가 지루해질 즈음 마지막으로 1 교량 금문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문교를 건너 주차장으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들릴 듯 말 듯 귓가에 맴돌던 뻐꾸기 소리는 더욱 멀어졌다. 봄이 언제 왔는지 제대로 음미할 틈도 없었는데 부지불식간에 훌쩍 지나가 버리는 것이 계절이요 세월이다.


초곡항 촛대바위와 황영조 기념관에 들른 후 영동고속도로로 올라서니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인생은 마라톤이다"라고 했지만,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에게는 마라톤이 인생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탈출로가 없는 인생이라는 마라톤 코스의 목적지는 어이고 우리는 지금 어디쯤을 달리고 있을까!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서쪽을 향해 달리자 흐리게 변한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관동의 명산과 명소들을 둘러본 감회를 한껏 돋우는 호우(好雨), 운전대를 잡은 M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 속을 달려가는 귀로는 더없이 호젓하다.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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