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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와 나폴레옹

고요한 평원, 영웅의 명운을 가른 전투의 현장

by 꿈꾸는 시시포스


브뤼셀 칠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에 우클레(Uccle)의 집을 나서서 워털루로 향했습니다. 브뤼셀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있는 워털루는 1815년 영국의 웰링턴 장군과 프로이센의 블뤼허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과 나폴레옹 프랑스군이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를 치른 격전지였습니다.


브뤼셀 우클레에서 출발해서 트램으로 Jacob까지 가서, 부근의 Port Jacob 정류소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도심을 벗어나자, 사방으로 드넓게 펼쳐진 평원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합니다. 약 30분을 달려서 워털루 전투 기념관에 도착하니, 맞기에 좋을 만큼 간간이 비가 뿌리고 있습니다.


피라미드처럼 원추형으로 쌓은 거대한 ‘사자의 언덕(Butte du Lion)’꼭대기에 사자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자의 언덕 (Butte du Lion)은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 빌럼 1세의 명으로, 네덜란드군을 이끌고 영국 동맹군으로 참전한 왕태자 오렌지공(후일 빌럼 2세)이 부상당한 자리에 1820~1826년에 걸쳐 조성한 것이라 합니다.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한 나폴레옹 군의 대포를 녹여서 만들었다는 속설이 전하는 거대한 사자상은 ‘어디 한 번 더 쳐들어와봐!’라는 듯 프랑스 쪽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워털루 전투(@photo: google)

나폴레옹(Napoléon, 1769~1821)은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 패배와 1814년 3월 31일 파리 함락으로, 그해 4월에 폐위되어 엘바섬으로 추방되었습니다. 1815년 2월 26일 엘바섬을 탈출한 그는 동조하는 군대 7천 명을 이끌고 3월 20일 파리에 입성했습니다. 1815년 3월,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가 되자, 수많은 유럽 국가들은 그에 대항해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을 맺었습니다.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는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워털루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 북부군은 이 전투에서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1769-1852)가 이끄는 영국 주축의 연합군과 게브하르트 폰 블뤼허(Gebhard von Blücher, 1742-1819)가 이끄는 프로이센 군에게 패배했습니다. 그 결과 나폴레옹은 폐위되었고, 7월 7일 연합군은 파리로 입성했습니다. 실각한 나폴레옹은 남대서양의 오지 세인트 헬레나섬으로 유배되어 1821년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웨즐리 넬슨 블뤼허

영국의 군사사가 풀러는 <서양 군사>에서 워털루 전투를 “트라팔가 해전이 집을 짓기 위한 주춧돌이었다면, 워털루 전투는 마지막 지붕을 덮기 위한 서까래였다.”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의 지브롤터 해협 인근 해상에서 벌어진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에서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이 지휘하는 영국 해군은 프랑스-스페인 해군 연합함대를 격파했습니다. 유럽 대륙을 거의 제패하고 영국으로 상륙하려던 나폴레옹은 이 해전에서의 패배로 영국 점령의 꿈을 접었다고 합니다.


교전 중 총탄에 피격된 넬슨은 피격 후에도 4시간 동안 지휘를 계속했지만, 전투가 승리로 끝나기 직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코르시카섬 점령 전투에서 오른쪽 눈, 산타크루스데 테네리페 해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넬슨은 운명하기 전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임무를 다했습니다.(Thank God I have done my duty)”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戰方急慎勿言我死)_류성룡의 <징비록>”고 했던 충무공 이순신의 마지막 말이 떠오르게 하는 장면입니다.


테네리페 해전에서 오른팔을 잃는 넬슨(좌)/ 워털루 전투를 지휘하는 블뤼허(우)
영국 20파운드짜리 지폐 속의 웰링턴 공작 웨즐리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이 전 함대에 보낸 깃발 신호 "England expects that every man will do his duty."

나폴레옹과 같은 해인 175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1769-1852)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육군 최고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는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하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시대를 끝낸 명장으로, 이후 영국의 제25대와 28대 총리를 지냈습니다. 그는 1813년 이베리아 반도 전쟁 당시 스페인에서 스페인-포르투갈 동맹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맞서 싸운 비토리아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파노라마관과 영상관에서는 워털루 전투의 전모를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빰~ 빰빰빰 빰~빰~” 마침 영상관에는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Wellingtons Sieg Op.91, 1813.12.8일 Wien에서 초연>’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기실 '전쟁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곡은 워털루 전투에 앞선 1813년 6월 21일, 영국과 스페인의 연합군 수장 웰링턴 장군(Arthur Wellesley, 1769-1852)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를 격퇴시킨 비토리아 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작곡된 곡입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 1만 5,000명, 프로이센 군 7,000여 명, 프랑스군 2만 5,000명이 각각 전사했다니, 사자의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워털루 평원은 그야말로 온통 시체로 뒤덮였을 것입니다. 웰링턴의 승리를 기리는 베토벤의 곡은 일면 병사들을 위한 진혼곡이나 다름없게 느껴졌습니다.​


다비드 作 <나폴레옹 대관식> 일부

스웨덴의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ABBA)는 노래 <워털루(Waterloo)>에서 사랑에 빠진 것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것에 비유했습니다.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아바에게 우승을 안긴 경쾌한 리듬의 이 노래는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한 것처럼 역사는 항상 되풀이되나요.”라고 묻습니다.


My, my, at Waterloo Napoleon did surrender

Oh yeah, and I have met my destiny in quite a similar way

The history book on the shelf

Is always repeating itself


나 나의, 나폴레옹이 항복한 워털루에서

오, 나는 비슷하게 나의 운명을 만났네.

선반에 있는 역사책

역사는 항상 되풀이되나요.

_아바의 <워털루(Waterloo)> 중


역사는 수많은 나라를 제패했던 영웅이나 드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국가도 흥망성쇠는 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 중에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영웅이라 칭송되는 나폴레옹도 지난날을 뒤돌아보면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며 자책을 했나 봅니다. 하물며 필부(匹夫)인 우리들이야 후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 오죽 많겠습니까!


어쨌거나,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면서 워털루 전투에 빗대어 생겨난 숙어인 ‘meet one's waterloo(큰 패배를 맛보다)’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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