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스타지크(Istiqlal) 모스크
그 해 팔월 말, 적도 바로 아래 남반구에 자리한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다녀왔다.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때, 적도 아래 남반구에 자리한 열대 도시로 출장이라니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에 우기와 건기 단 두 계절만이 존재한다는 곳, 낯선 도시와의 첫 만남에 대한 작은 기대와 설렘을 안고 자카르타행 가루다항공에 몸을 실었다.
여섯 시간 반을 훌쩍 날아 도착한 수카르노 하타 공항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우리 일행이 묵을 호텔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든 안내원을 따라 실버버드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인구가 천만 명을 넘는데도 지하철이 없는 도시, 창밖으로 보이는 자카르타의 풍경은 내 상상과는 달리 생경했다. 해안에 세워진 도시라 지하를 파면 바닷물이 스며들어 공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시의 뼈대는 전부 지상에 얹혀 있는 모양새다. 그러고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화산이 폭발했다는 뉴스도 종종 들려오던 기억이 떠오른다.
택시, 오토바이, 버스가 뒤섞인 도로 위를 달리며 호텔로 가는 길, 가끔은 옆 차선을 비집고 들어오기도 하고,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와 매캐한 매연이 자카르타의 숨결 같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동료 K와 백화점 지하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든 후, 홀로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도 없이 이 도시의 모습을 조금 더 탐색해 보기로 했다. 택시 창문을 반쯤 내리자 무겁고 습한 공기가 들이쳤다. 휘황한 간판 밑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좁은 길목에서 곡예하듯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는 오토바이 라이더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공간을 가득 채운 뜨거운 공기.
다음 날 시작된 회의에는 UNODC 방콕지부 사람들과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에서 온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낯선 도시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조금 마음도 느긋해졌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내 발표가 있었고, 첫날 회의가 종료되고 저녁이 되어 K와 함께 골동품 거리를 찾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문을 닫는 가게들이 대부분이라,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중국음식점을 찾아서 택시를 타고 시내의 외진 북쪽까지 올라가서 더위에 지치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회의가 끝난 날, K의 제안으로 'Block M'이라는 쇼핑몰에 들렀다. 나름 이름난 곳이라고 했지만, 가게마다 유명 브랜드를 흉내 낸 모조품과 조잡한 잡화들이 즐비했다. 셔츠 한 벌 등 두어 가지를 구입했는데, 귀국한 지 며칠 후 카드사로부터 ‘도용 의심’ 문자가 날아왔다. 자정 무렵 영국 런던에서 백만 원 넘는 결제가 시도됐다고 했다. 아무래도 자카르타의 그 쇼핑몰에서 결제를 할 때 누군가에 의해 카드가 해킹을 당했던 모양이다.
귀국일 오전에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모나스(Monas), 이스타지크 모스크, 국립박물관을 둘러볼 계획이었다. 모나스(Monas; 'Monumen Nasional')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높이 약 132m의 기념탑으로, 탑 꼭대기에 높이 14m, 무게 35kg의 금박을 입힌 불꽃 모양 ‘Flame of Independence’가 독립의 자부심과 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다.
자카르타 중심부인 메르데카(Merdeka) 광장 근처에 자리한 이스타지크(Istiqlal: 아랍어로 ‘독립’을 의미) 사원은 1945년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착공 17년 만인 1978년에 준공되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최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이 이슬람 사원은 규모만 컷을 뿐, 그 내부는 인상 깊은 그 무엇도 없이 휑한 모습이라 다소 실망스러웠다.
‘코끼리 박물관(Gedung Gajah)’이라는 별칭을 가진 국립박물관에 도착했을 땐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전면 광장에 있는 태국 왕이 기증했다는 청동 코끼리 상을 지나 닫힌 문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결국 사리판 백화점 식품코너로 발길을 돌야만 했다.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바라보며, 자카르타에서 느낀 가장 선명한 감각은 결국 ‘배고픔’과 ‘더위’가 아니었을까 싶어 헛헛한 웃음만 흘러나왔다.
호텔로 돌아와서 땀을 씻어내고, 부근 일식집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은 뒤 공항으로 향했다. 자카르타 공항 면세점은 물품이 다양하지도, 가격이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기대마저 체념으로 바꿔버리는 그 모습이 자카르타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밤 열 시경 이륙한 인천공항 행 대한항공은 거의 만석이다. 기내 모니터를 통하여 당시 한창 인기 있던 ‘콘서트 7080’을 시청하고, 자다 깨다 하며 다음날 아침 7시경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자카르타를 떠올릴 때면, 일방통행 도로를 질주하던 차량들, 폐부 깊숙이 스며들던 무더운 공기, 그리고 아스팔트 골목골목 피어오르던 열기가 함께 떠오른다. 매연에 그을린 그 도시의 사람들은 오늘도 열대의 뜨거운 공기를 마시며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을까. 자카르타에 대한 빈약한 기억은 짧은 체류 시간과 관심의 부족 탓인지도 모른다.
호기심이란 결국 다시 떠나기 위해 마음속에 묻어두는 작은 씨앗 같은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계절, 또 다른 이유로 자카르타를 찾게 된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더 느긋하게 그 도시의 골목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빅 두리안(The Big Durian)'이라는 도시의 별칭처럼, 강렬하고 혼란스러움 속에 중독성 있는 그 무언가를 감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