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마드리드 레티로 공원(Parque del Retiro)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10여 시간의 비행 끝에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Charles de Gaulle)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지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공항 중 하나답게, 드골 공항은 환승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두어 시간 뒤,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어 파리에서 약 1,000km 거리의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했다.
마드리드 바라하스(Barajas) 공항에서 셔틀버스에 올라 숙소인 Auditorium 호텔에 도착했다. 회의장은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회의장 겸 호텔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복합시설이었다. 체크인 후 짐을 풀고, 서둘러 택시를 타고 마드리드 구시가지 중심부인 마요르 광장(Plaza Mayor)으로 달려갔다. 이 광장은 15세기에는 시장(Mercado del Arrabal)이 서던 곳으로, 1617년 펠리페 3세가 대대적으로 재건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펠리페 3세(1578-1621)와 4세(1605-1665) 치세는 스페인이 유럽 최강국의 지위를 구가하던 시기로 벨라스케스, 엘그리코 등이 활동한 문화 예술의 황금기였다.
넓은 사각형 광장 쪽으로 200여 개의 발코니가 나 있는 3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이 광장의 중앙엔 말을 탄 펠리페 3세 동상이 서있다. 이곳은 과거 투우, 공개재판, 종교심문, 왕실 결혼식 같은 대규모 행사가 열리던 스페인의 ‘도심 무대’이기도 했다. 지금은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들이 아케이드를 따라 자리 잡아 낮에는 관광객들로, 밤에는 현지인들로 가득 찬다고 한다.
우리는 광장을 한 바퀴 돌며 아치 밑을 걷다가 한 식당으로 들어가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명물, 하몽(Jamón)을 주문했다.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길게는 3년까지 자연숙성시킨 것으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고기가 아니라, 로마시대부터 이어온 음식문화와 자부심의 결정체 같은 존재라고 한다. 얇게 저민 하몽이 입안에서 천천히 녹으며 고소하고 짭짤한 향이 퍼졌다. 다소 느끼한 맛이긴 해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안주를 삼으니 긴 여로의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회의 첫날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백 명이 참석하는 회의의 등록데스크가 설치된 호텔 로비는 이른 아침부터 일찌감치 북적였다. 국제대회의 본질은 어찌 보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명함을 주고받는 짧은 순간들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의장 밖에는 각 지역별 대표단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기념촬영을 하고 나니 약간은 사무적인 긴장감이 풀렸다.
마드리드를 벗어나 세고비아 외곽 여름별궁(팔라시오 데 베라노)으로 초대된 회의 참석자들을 위한 플라멩코(Flamenco) 공연이 회의 마지막 날 밤에 펼쳐졌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태어난 이 정열의 춤은 집시, 무어인, 유대인, 이베리아인의 음악과 춤이 섞여 탄생했다고 한다.
애잔하고도 격정적인 노래(cante), 현란한 기타(toque), 남녀 한 쌍이 어우러져 펼치는 열정적인 몸동작과 발 구름(zapateado)이 한데 어울려 마치 무대 위에서 삶의 비극과 희망을 모두 쏟아내놓는 듯했다. 좁은 공연장의 관객들과 숨결을 나누며, 온몸으로 감상하는 기타 연주와 춤꾼의 빠르게 바닥을 두드리는 구두 굽 소리는 절로 가슴이 뛰게 했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과 함께 세르반테스 기념비가 있는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과 프라도 미술관을 짧게나마 둘러보는 행운도 따랐다. 1819년에 개관한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플랑드르,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특히 벨라스케스(Velázquez)와 고야(Goya)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펠리페 4세의 공주 마르가리타와 시녀들, 그리고 화가 자신이 등장하는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 1656)》, 고야의 그 유명한《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야》, 그리고 나폴레옹 군에 저항하다 처형당하는 스페인 시민들을 그린 처절한 역사화 《1808년 5월 3일》까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만나고, 하몽을 맛보고, 플라멩코에 흠뻑 빠져들고, 고야와 벨라스케스의 대표작도 감상했으니, 겉핥기식으로나마 스페인 문화의 정수들을 음미한 셈이다. 되돌아보면, 자투리 시간을 버리지 않고 부지런을 떤 보상치고는 너무나도 과분한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