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명징한 라 트리콜로르로 기억되는 파리

@그림: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by 꿈꾸는 시시포스

파리와 프랑스를 생각할 때면, 세로로 균등하게 삼분된 파란색 하얀색 빨간색이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는 삼색기(La Tricolore; 라 트리콜로르)가 떠오른다.

파리로 향하는 빨간색의 급행열차 Thalys에 몸을 실었을 때, 며칠째 비와 구름에 젖던 브뤼셀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두 시간 남짓, 파리 북역에 내려 기차역 플랫폼에 내려서니 새삼 멀리 온 기분이 들었다.

낯설지 않은 이름, 수없이 듣고 책과 영화로 만났던 도시였지만 파리는 직접 마주한 그것만으로 새삼 마음이 설렜다. 라데팡스(La Défense)에서 동행한 L의 친구 K 씨의 아파트를 찾았다. 파리 북서부, 고층 빌딩들이 숲처럼 솟아 있는 현대적 업무 지구. 사각형의 액자 같이 서있는 '신개선문’이라 불리는 순백색의 거대한 건축물 그랑드 아르슈(Grande Arche)는 그 너머로 펼쳐 있는 하늘을 구경하라는 창틀 같았다. 흰 뭉게구름이 드리운 그 파란 하늘은 라 트리콜로르처럼 명징했다.

파리 북역에 정차해 있는 고속열차 Thalys(@photo: alamy)

우리는 K 씨로부터 양배추 김치와 양배추 고기 국으로 뜻밖의 한국의 맛을 대접받았다. 멀리 타향에서 만난 따뜻한 밥 한 끼가 까칠하게만 느껴지던 낯선 도시에서 한국의 푸근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두 주일 후 다시 찾은 파리의 어느 한국식당에서 ‘유로타임즈’라는 한인 소식지에서 KAL기 괌 추락 사고, LA 다저스 박찬호 선수의 10승 등의 소식을 접했던 기억도 가물거린다.

점심을 마치고 라데팡스의 쇼핑센터를 둘러보고 나서 7A번 버스를 타고 파리 중심부로 향했다. 창밖으로 샹젤리제(Champs-Élysées)가 펼쳐졌다. 이름만으로도 한없이 낭만적인 그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가지 사이로 햇빛을 투과하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여행자이거나 연인이거나, 혹은 그 둘 다 같아 보였다.

버스가 개선문(Arc de Triomphe)을 휘돌며 달렸다. 나폴레옹이 전쟁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문, 샹젤리제 끝자락에 높이 50미터로 묵직하게 자리하는 위용은 마치 찬란한 예술과 문화를 꽃피운 프랑스 역사를 웅변하고 있는 듯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들어 아치를 바라보는 사람들, 누구나 그 앞에 서면 나처럼 절로 감탄과 찬사가 입 밖으로 흘러나올 듯싶다.

신개선문 앞 전경/개선문/콩코르드 광장

'화합의 광장'이라는 뜻의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에서는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던 곳. 고대 이집트 왕조 태양신앙의 상징이던 오벨리스크가 프랑스의 자부심을 상징하듯 광장을 지키며 파란 하늘 아래 유유히 솟아 있었다. 사람들은 역사의 피냄새를 잊은 듯 분수 주변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웃음소리를 흘렸다. 도시는 언제나 살아남는 자의 것이다.

우리는 센강(Seine) 유람선에 올랐다. 흐르는 강물 위에서 양안을 따라 늘어선 파리의 건물들을 바라보니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 같았다. 루브르, 오르세, 노트르담, 앙발리드... 흐르는 시간 속에 쌓고 다듬어 이룩한 기념비적 건축물과 그 안에 담긴 역사를 무심히 흐르는 혼탁한 저 강물은 기억하고 있을까.

해가 기울자 유람선의 조명등이 하나씩 켜졌다. 에펠탑도, 다리 위 가로등도, 강변의 작은 술집들도 모두 밤을 기다렸다는 듯 조명에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유람선에서 내려 에펠탑(Tour Eiffel) 쪽으로 걸었다. 철골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 거대한 탑이 조명에 빛나며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에펠탑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늘어선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어 우린 그저 탑 아래를 거닐며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듯싶었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황금빛을 토해내는 에펠탑은 어떤 화려한 불꽃놀이보다 더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에펠탑/몽마르트 언덕/세느강

그날 밤, 우리는 K 씨가 집에서 마련해 준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저녁밥을 감사히 비우고 파리에서의 첫 밤을 맞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창밖에 여전히 살아있는 파리의 숨결이 우리를 좀체 잠들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다.

다음 날 아침,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으로 향했다. 유리 피라미드 앞에는 벌써부터 줄지어 선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었다. 루브르는 그 크기만으로도 이미 압도적이었다. 그리스 로마의 조각들, 이집트의 파라오와 신들의 흔적, 근대 화가들의 불후의 명작들이 끝없는 복도를 따라 이어졌다.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은 캔버스 너머로 진짜 궁중 의식이 펼쳐지는 것 같았고, 모나리자는 작은 미소 하나로 사람들의 발길을 그 앞에 붙잡아 두며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앞에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8등신 황금비율의 미를 간직한 이 대리석상은 이 박물관의 3대 작품 중 하나로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것이다. 그리스 파로스섬에서 나는 순백의 파리안 대리석(Parian Marble)을 깎아서 만든 석고처럼 희디 흰 빛깔이 인상적이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세계 각지에서 약탈 혹은 수집된 인류의 보물들도 가득했다. 그 화려함이 한편으론 씁쓸했다. 두어 시간 만에 박물관을 빠져나와 광장에서 빵으로 요기를 했다.

루브르박물관의 3대 컬렉션으로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 사모트라케의 니케

지하철을 타고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으로 향했다. 272년 성 드니와 2명의 제자가 순교한 곳으로, ‘순교자(martre)의 언덕(Mont)’이라는 뜻으로 흔히 예술과 낭만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언덕 위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의 상업화된 모습과 혼잡한 인파는 잔뜩 품었던 기대를 접게 했다.

이젤을 세우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은 예술가라기보다는 관광객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듯 보였고, 언덕 위 흰 대리석 건물인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 “성심 대성당) 앞 계단엔 햇살을 즐기며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쩌면 예술은 낭만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불후의 명작을 남겼지만 평생 가난과 궁핍에 시달렸던 거장들도 숱하게 많지 않았던가.

언덕 아래 계단 가로수 그늘에 앉아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돌길 위를 스치는 바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분주히 나뭇가지로 오르락내리락 참새들,... 잠시만 눈을 감으니 이 모든 것이 꿈인 듯했다.

브뤼셀로 돌아가는 저녁, 파리 북역에서 간단히 햄버거를 먹으며, 여행 중 만난 한국인 가족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들도, 우리처럼 오늘 하루 낯선 이 도시를 분주히 헤매었을 것이다. 7시 40분 다시 급행열차 Thaly에 올랐다. 브뤼셀에서 파리, 암스테르담, 쾰른을 연결하던 빨간 색깔의 급행열차 Thalys는 2023년 10월부터 유로스타로 통합되었다고 하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두 시간 뒤면 다소 소심해 보이는 행인들이 좁고 눅눅한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 그려지는 브뤼셀에 도착할 것이다. 아쉬운 마음 한편에는 센강 위를 밝히던 불빛과 에펠탑의 황금빛 실루엣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97-0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드리드, 짧지만 강렬했던 문화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