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강물 따라 라이딩, 회귀하는 연어처럼

경안천 발원지로의 라이딩

by 꿈꾸는 시시포스

일주일째 한낮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며 초여름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오늘도 더위는 꺾일 줄 모르지만,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하천을 거슬러 그 발원지까지 페달을 밟는 라이딩을 해보기로 했다.

오늘 라이딩 코스는 용인시 문수산 서북쪽 용해곡에서 발원하여, 그 양옆 산군들 사이에 터를 잡은 마을과 논밭들 사이로 조용히 물줄기를 이어가며, 용인시와 광주시를 지나 팔당호로 흘러드는 경안천이다. 금학천이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곳, 그 부근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꺼냈다.

지척에 조선시대부터 장터로 번성했던 용인중앙시장이 자리한다. 오늘 라이딩이 끝나면 시장 순대골목에서 순댓국 한 그릇으로 허기진 몸을 달래볼 요량이다.

오늘 예정 라이딩 코스는 경안천이 금학천을 맞이하는 곳에서 출발해, 경안천의 발원지까지 거슬러 올랐다가 다시 돌아오는 왕복 40여 킬로미터 남짓 거리이다.


천변 자전거길을 따라 페달을 밟아가자 풍경은 금세 시가지에서 논과 밭, 산과 들이 어우러진 전원의 얼굴로 바뀌었다. 오른편 함박산 능선을 타고 비죽비죽 솟은 송전탑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마치 공룡의 등뼈에 비수를 깊이 박아 넣은 듯 흉측해 보인다.

기선교 다리 아래 수중보에 갇힌 물 위에는 손바닥만 한 수련이 온통 수면을 뒤덮고 있다.

제방에는 텃밭으로 기어오르려다 자전거길에 가로막힌 칡넝쿨이 풀꽃들과 서로 기대어 엉켜 있다. 매밀봉과 경안천 사이에 조성해 놓는 길업습지의 연못에는 갓 깨어난 오리 새끼들이 헤엄을 배우고 있고, 너른 습지를 가득 메운 키 큰 풀숲은 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다.

연못가를 부모와 걷던 한 아이가 곤충 채집망을 흔들며 "저 말벌 봤어요!" 하고 자랑스럽게 외친다. 아이를 지켜보는 젊은 부부는 흐뭇한 표정이다.


이곳에서 스치는 라이더들은 한강변에서 보던, 몸에 착 달라붙는 라이크라 유니폼 차림에 긴 줄을 이루며 화살같이 달려가는 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천변 풍경과 한 몸이 되어 느릿느릿 페달을 밟는 모습은, 어쩌면 강을 따라 천천히 숨을 고르는 나와도 닮았다. 길옆 밭에는 옥수수가 통통히 영글어가고, 이따금 검은 차광막을 인 인삼밭도 눈에 띈다.

문득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해실로 46번 길' 표지판과 함께 '경안천 발원지'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바로 옆에는 ‘김대건 신부의 길’이라는 표지도 서 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이자 순교자인 그의 발자취가 이곳에 닿아 있는 것이다.

기왕에 나선 길, 지도 앱에 푸른색 물줄기로 표시된 경안천의 시발점인 발원지를 보고자 해실리 마을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페달을 밟자 소리는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한다. 그 소리는 몇 해 전 이맘때 한창나이에 세상을 버린 시골 친구들을 부르는 초혼가처럼 구슬프면서도 아릿하다.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히 안긴 작은 마을 해실리에는 번듯한 신축 주택들과 함께 지붕이 무너져 내린 채 방치된 폐가도 눈에 띈다. GPS를 보니 경안천 물길에서 살짝 벗어났다.

해실로로 되돌아 나오는 길 작은 다리 가장자리에 ‘청년 김대건 길’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다리 아래 좁아질 대로 좁아진 물줄기가 바로 경안천으로 다리 옆으로 난 천변길은 채 백 미터도 되지 않아 나무덤불에 막혀 있다. 그 덤불 속에서 새순을 뜯던 어린 고라니 한 마리가 놀란 듯 급히 몸을 숨긴다.

해실리 마을 입구까지 되돌아 나오니 길옆 표지판이 은이성지, 와우정사, 미리내성지를 이쪽저쪽으로 가리키고 있다.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사목 하던 곳, 와우정사는 거대한 와불로 유명한 불교의 대도량, 미리내 성지는 박해를 피해서 모여든 신자들의 교우촌이 있던 곳으로 김대건 신부가 잠들어 있는 천주교의 성지이다. 이 작은 고장에 천주교와 불교의 성지요 순례지가 이웃처럼 어깨를 맞대고 있는 것이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땀냄새를 좇아 날벌레 두어 마리가 얼굴 주위를 성가시게 맴돈다. 경안천 물줄기를 따라 문수봉과 바래기산 사이로 난 오르막길은 ‘대한석유공사 용인지사’ 철문에 막혀 끝이 났다. 그 앞엔 ‘경안천 자전거길 쉼터’ 표지판과 벤치 두 개가 놓여 있다. 지도상의 경안천도 그곳 도로 아래에서 사라진다.

번천 직리천 중대천 오산천 금학천 상미천 초하천 목현천 양지천 운학천 등 20여 개 지천을 거느리며 한강으로 흘러드는 유로연장 49.3㎞ 하천의 발원지에 기념비는커녕 접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허무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 아래 무성한 풀숲에 숨은 발원지를 슬쩍 내려다보고 핸들을 돌렸다.

하천길을 따라 하류로 려가는 느슨한 내리막길은 올라올 때와 같은 길인데도 훨씬 수월하다. 인생도 이처럼 모르는 사이 어느새 정점에 올랐다가 완만한 비탈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레 내려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수풀 사이 오리들이 먹이를 찾고, 자전거길 위로 까치와 말잠자리가 스친다. 길업마을 언저리엔 느티나무 고목이 예닐곱 그루 서 있어 마치 마을의 수호신 같다. 문득 아늑한 그 마을의 품에 안겨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호동 1교 옆에는 말머리 석상이 길손을 맞이하고, 이정표가 ‘용인경안천 종점까지 20.7km’라고 알려준다. 아마 용인과 광주시의 경계까지 거리일 것이다. 운학동 자전거길 옆 작은 숲에 서 있는 돌 조각상 몇 기가 행인의 발길을 잠시 붙든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며 라이딩을 마치고, 용인중앙시장을 찾았다. 일설에 용인중앙시장은 그 역사가 2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용인은 조선시대 때 영남대로의 주요 길목으로, 한양을 오가던 과객들이 쉬어가며 자연스레 생겨난 주막촌이 김량장이요, 김량장은 용인중앙시장의 옛 이름이라는 것이다.

금학천 자전거길에 접해 있는 시장 순대골목으로 들어섰다. 어수선한 듯 나름의 질서로 움직이는 시장 골목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용*순대'라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 에어컨 바람의 냉기가 몸을 엄습해 온다.

맞은편 탁자에는 부부와 아들딸로 보이는 가족이 족발과 순대를 앞에 두고 단란하게 저녁을 들고 있었다. 주고받는 말은 중국어인 듯 몽골어인 듯 모호하다. 행복해 보이는 저 가족의 코리안 드림이 자못 아름다워 보인다.

장단기 체류 외국의 수가 전체 인구의 5%를 넘어 270만 명에 육박하는 우리나라는 다민족·다문화 국가 나아가고 있다. 단일민족 국가라는 자부심과 정체성을 어떤 가치로 대신 채워가야 할지는 우리 사회의 과제이기도 하다.


순댓국 국물이 지친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며 포만감이 들었다. 식당을 나서며, “식당마다 순댓국 맛이 다르냐?”라고 묻자, 주인은 “같은 순대를 쓰지만 맛은 조금씩 다를 수 있죠.” 하고 대답한다.

문득 6년 전 영남길을 걷다 들렀던 이 순대골목의 ‘평*집’이라는 식당 이름이 뒤늦게 생각났다.

특별했던 맛을 잊지 않는 이 기억의 회로는, 어쩌면 옛 물맛을 좇아 먼 물길을 되밟는 연어의 습성과도 닮았는지 모르겠다.

초여름의 무더위를 마다하지 않고, 대체 나는 무엇을 좇아 경안천 발원지를 향해 페달을 밟았을까. 바람결에 스치는 풀냄새, 들꽃과 풀숲의 잔치, 개천의 물살 소리, 얕은 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 내 속 깊이 내려앉아 있는 먼 기억을 되살려주는 이런 것들과의 조우.

이런 기대치 않은 것들에 대한 기대가 내 마음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 모호한 기대에 어김없이 화답하는 우리의 하천과 자연이 거기에 있기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