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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27. 2020

영종도 경칩 즈음

우리나라 제1의 관문 영종도의 어제와 오늘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은 명실상부 우리나라 제1의 관문이다. 용유도, 영종도, 삼목도, 신불도 등 네 섬 사이의 갯벌을 메운 매립지 위에 세운 공항이다. 2001년 3월 29일 개항 후 어느덧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람과 상품이 넘나드는 나라의 관문에는 어김없이 CIQ, 즉 세관검사(Customs), 출입국관리(Immigration), 검역(Quarantine)을 담당하는 기관이 들어서 있다. 천 국제공항 입주기관 가운데 인천세관의 경우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아우르는 전국 제1의 세관으로 직원 수가 19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영종도로 들어온 지도 벌써 일 년 하고도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구 도심에 자리한 인천항 쪽과는 달리 공항 개항과 더불어 아파트와 편의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한 신도시 영종도는 얼핏 역사가 일천해 보인다.


영종도 마시안 해변과 을왕리, 그리고 인근의 무의도나 장봉도 등 방문자는 계절 따라 해수욕장, 섬산, 해산물 먹거리 등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얼마 전 영종도서관 옆을 지나며 보았던 청동기 시대 고인돌은 이 지역 역사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강변하고 있었다. 1992년 펴낸 <영종용유지>는 "공민왕 원년, 29년, 30년에 왜구들이 자연도와 덕적도 등에 출몰했다", "조선 중기까지 궁궐에서 운영하는 말 목장이 있었다" 등의 옛 역사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매립으로 하나의 섬이 되기 전 영종도를 비롯한 네 개의 섬 지역은 '염전'이 경제의 주축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곡(1298~1351)이 남긴 기록 등은 고려시대 때부터 이 지역이 소금 산지였음을 알려준다. 늙목 염전, 왕산 염전, 삼목 염전, 금홍 염전, 홍대 염전, 정대 염전 등 과거 20여 개의 염전 가운데 동양 염전 하나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요즘, 지난주부터 차를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던 터라, 퇴근을 해서 숙소로 직행하기 전에 외딴 산중의 용궁사로 향했다. 염전과 더불어 영종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고찰이라 직접 한 번 찾아보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궁사 요사채 처마 밑에 걸린 흥선대원군의 '龍宮寺' 편액

백운산은 예전에 자연도(紫燕島)라 불린 영종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해발 256미터로 그다지 높지 않은 이 산 북동쪽 능선 아래 밀물과 썰물에 따라 갯벌을 드러냈다 바닷물로 찼다를 반복하는 바다 건너 육지를 바라보며 용궁사가 자리하고 있다.


뉘엿뉘엿 바다 아래로 지려는 해가 서쪽 하늘에 저녁놀을 드리웠다. 백운산에 포근히 안겨 있는 운남동 주택가 운남서로에서 북쪽 산자락으로 난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600여 미터 남짓 올라갔다. 도중에 마주오는 차량이라도 만나면 난감할 듯싶다. 주차장엔 사찰 소유로 보이는 차량 두 대만 보인다. 해그름 능선 너머에서 산사로 내리 부는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산사 입구 안내판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0년(670)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철종 5년(1854) 흥선대원군이 용궁사로 개칭했다.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원효, 의상, 자장 등이 창건했다는 설을 내세우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전국 각지에 부지기수다. 옛 고승의 이름을 빌어 은연중에 역사성과 정통성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용궁사의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지만, 경내의 느티나무 두 그루는 수령이 1300년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요사채로 쓰이는 건물 처마 밑에 걸린 '龍宮寺' 편액은 '石破'란 호와 함께 '甲寅正月二日重建'이라 적혀 있어 1854년 흥선이 이곳에 머물렀음을 확인해 준다.

 해강 김규진이 쓴 용궁사 관음전 기둥의 주련

1880년에 제작된 수월관음도를 모신 관음전에서 스님이 불단 옆 촛대에 막 촛불을 켜고 목탁을 두드리며 저녁 예불을 시작한다. 김규진(1864~1933)이 쓴 관음전 네 기둥의 주련은 활달하고 유려한데, 그중 맨 왼쪽 주련에 '海岡'이라는 그의 호가 또렷하다. 전 예 해 행 초 등 모든 서체와 그림에도 능했다는 그는 가야산 해인사, 전등사, 송광사, 정혜사 등 여러 고찰의 현판 글씨를 남겼다고 한다.


관음전 뒤쪽 언덕 위에 장대한 관음보살입상이 서 있는데 우직하고 근엄한 모습이 낯선 객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예불에 집중하고 있는 스님과 닮았다. 그 뒤 '소원바위' 기도처에는 갖가지 소원을 적은 시주 기왓장이 쌓여 있다. 경기도 시흥 사는 임자생 홍 모 씨는 '과장 진급'을 소원하는 글귀를 기왓장에 남겼다.


불을 켜지 않아 컴컴한 대웅전과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용황각을 건성건성 둘러본 후 찬 공기와 함께 밀려드는 어둠에 떠밀리듯 산사를 서둘러 빠져나왔다.


옛사람들이 머문 공간엔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고 시간은 내리는 어둠처럼 시나브로 흘러오고 흘러간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났고, 개구리가 잠을 깬다는 경칩이 내일이다. 시간의 물살은 거세어서 극성으로 치닫고 있는 코로나 19도 곧 씻겨 지나갈 것이다.


#영종도 #인천공항 #용유도 #용궁사 #백운산 #흥선대원군 #김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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