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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27. 2020

부산 속 과거로의 여행

매축지 마을과 자성대

태풍 '쁘라삐룬'이 지나간 하늘은 찌뿌둥하다. 비를 관장하는 '바루나' 신의 태국어 명칭이라는 쁘라삐룬은 2000년부터 6년 주기로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시아태풍위원회가 정한 대로 2000년부터 서양식 이름 대신 아시아 14개국에서 제출한 140개 고유 이름을 차례대로 번갈아가며 붙인다니 어림잡아 한 해 평균 23개의 태풍이 발생한 셈이다.


발생에서 소멸까지 10여 일 남짓 짧은 수명을 가진 태풍, 기실 생로병사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과는 달리 태풍은 사라졌다가 이름만 바꾼 채 다시 나타나는 이모탈(immortal)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좌천역 4번 출구로 나왔다. 좌천은 수정산과 증산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좌천(佐川)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좌천(左遷)과는 음만 같을 뿐인데 출퇴근 시 전철을 타고 지날 때 "이번 정차역은 좌천"이라고 알려주는 안내방송은 들을 때마다 껄끄럽다.


바로 옆을 지나는 경부선 철로 위로 놓인 육교를 건너면 동구 범일5동, 즉 매축지마을이다. 일제가 3차에 걸쳐 해안을 메워 전쟁물자와 말을 수용하는 막사와 마구간을 짓는 등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았던 곳이라 한다.


해방 후 6.25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촌락은 7,80년대 모습 그대로다. 주변 높은 아파트와 대조를 이루며 외로운 섬 마냥 옛 시간 속에 멈추어 있는 듯하다. 방앗간, 이발소, 목공소,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굴뚝을 가진 목욕탕, 약국, 공중화장실, 슈퍼 등 낮은 건물들이 허물어질 듯 힘겹게 버티고 있다. 비어있는 곳도 적지 않다.


좁은 골목 처마 밑엔 가스통이 놓였고, 골목 모퉁이마다 쓰레기와 폐가구가 수북하고, 연탄은행 건물 안에서는 연탄인지 쌀인지를 두고 서로 밀당이 한창이다.


자성대로 가는 길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찾은 이곳은 친구, 아저씨, 마더 등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여러 편 촬영된 장소라고 한다. 낮은 벽면 여기저기 그려 넣은 영화 속 인물들이 좁은 거리로 튀어나와 내달릴 것만 같다. 슬며시 '친구' 속 인물들 틈에 끼어들어 포즈를 한 번 잡아 본다.

영화 세트장처럼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매축지 마을


건물도 사람도 흑백사진 같이 시간이 멈춘듯한 이곳에도 철거와 재개발의 광풍이 비껴가지는 않을 것이다. 부지 일부라도 할애해서 잊지 못할 영화의 촬영지이자 이곳 주민들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배인 마을로 재현하면 어떨까.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처요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것들은 사라진 후 뒤늦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매축지마을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리면 이내 눈에 보이는 경계도 없는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시간의 담장 밖이다. 1941-1972 중 운행되던 옛 철로 문현선이 폐선된 공간에 조성한 '자성로 지하도 역사갤러리'를 지나고 100년 넘게 이어온 혼수용품 전문 부산진시장을 지나서 자성대로 발길을 옮겼다.


자성대(子城臺)는 좌천동 증산에 있던 모성(母城)인 부산진성에 딸린 지성(支城)으로 정상부에 있던 장대에서 유래했다. 원래 증산의 내성과 현 자성대의 외성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기존 외성을 허물고 축성한 왜성을 정유재란 때 왜장 나가요시가 증수축했다고 한다. 왜성 특유의 가파른 경사의 석축처럼 쌓아 올린 성의 일부가 정상부에 남아 있다.


조선수군은 임란 때 허물어진 증산의 진성을 대신하여 1607년 자성대를 부산진성으로 새롭게 수축했더란다. 임진왜란 때 주둔했던 왜장과 지원군 명장수의 이름을 따서 고니시 성(小西城)이나 만공대(萬公臺)로 불리기도 한다니 지나간 아픈 역사의 깊은 흉터 자국을 보는 듯 씁쓸하다.

외로운 섬처럼 도로와 주택가에 갇혀 있는 자성대

지금은 산책로와 운동시설을 갖춘 공원으로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된 자성대, 동서남북으로 진동문(鎭東門), 금루관(金壘關), 진남문(鎭南門), 구장루(龜藏樓) 등 네 개의 문이 있었다고 한다. 서쪽에 철로가 들어서고, 남쪽과 동쪽은 매축되고, 북쪽으론 도로와 시가지가 들어서는 등 옛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다만 정상부에 성벽 일부와 1974-75년에 복원한 동문 건춘문과 그 주위 성곽, 서문 금루관, 정상에 장대인 진남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산 진성에 딸린 지성(支城) 자성대는 도로와 주택가에 갇혀


자성대 동쪽 기슭에 단아한 사당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려말 혼란스러운 격변기에 창궐하던 왜구를 감만 수영 영도 자성대 등에서 신출귀몰한 지략으로 섬멸한 영웅 최영 장군, 이 지역 백성들이 그를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매년 단오절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정상 진남대 옆에는 임란 때의 명나라 천만리 장군을 기리는 천장군 기념비가 서있고, 일본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인조 때 범일동 진시장 뒤쪽에 건립되었던 영가대가 2003년 복원되어 조선통신사 역사관과 나란히 자성대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부산진 시장 건너 동편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한 부산진성의 지성, 자성대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 자그마한 성이 참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문인 금루관을 나섰다.


범일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조방 타운' 입구를 지났다. 1917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면방직 공장인 조선방직(朝鮮紡織)이 있던 자리다. 한복집 양장점 포목점 등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던 사유가 짐작된다. 또 다른 얘기를 간직하고 있을 조방 거리, 그 사연은 다음 기회에 들어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부산 #과거 #매축지 마을 #자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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