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갑질
소규모 사무실, 예닐곱 명이 근무하는 공간. 팀원 세 명이 업무 토론을 하던 중 엘 팀장이 불쑥 끼어들며 한 팀원에게 언성을 높였습니다.
“K는 이해하는데, 당신은 잘 이해도 못하면서 그렇게 얘기해요.”
순식간에 사무실 분위기는 싸늘해졌습니다. 사실 이런 장면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엘 팀장은 이전에도 팀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질책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때마다 묵묵히 받아넘겼습니다.
일찍이 막스 베버(1864-1920)는 직업을 ‘신으로부터 부여된 소명’이라고 했고, '인간 욕구 5단계설'을 주장한 매슬로우(1908-1970)는 일터를 인간의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의 장’으로 보았습니다. 시몬 베유는 노동을 단순한 경제적 활동이 아닌 도덕적·형이상학적 행위로 보고, 일터를 ‘영적 충만함의 장소’라고 칭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요? 많은 근로자에게 일터는 더 이상 자아실현의 장이 아닙니다. 여전히 직업을 ‘신분’처럼 여기고, 권력의 우위를 이용한 갑질과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합니다.
그렇다면 엘 팀장의 발언은 직장 내 갑질일까요?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서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①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하여, ②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③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로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번 사례를 세 가지 기준으로 보면 답이 나옵니다.
1. 지위나 권한의 이용 여부
직접적인 지휘·감독 관계가 아니더라도, 조직 내 영향력이 큰 사람이 권한과 지위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업무상 적정 범위 초과 여부
“이해도 못하면서”라는 발언은 업무 피드백이 아니라, 인격을 깎아내리는 비난입니다. 논점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자체를 공격했습니다.
3. 근무환경 악화 및 정신적 고통 여부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고성과 모멸적 언사는, 팀원에게 명백한 정신적 고통을 주며 근무 분위기를 악화시킵니다.
단 한 번의 모욕적 발언이라도 ‘지위 우위 + 모욕적 언사 + 업무 범위 초과’가 충족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엘 팀장의 행위는 단순 감정 폭발이 아닌, 직장 내 괴롭힘의 전형적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명백하다면, 회사는 가해자에게 경고, 감봉, 정직, 보직해임, 직위해제, 해고 등 규정에 따른 징계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근로자 또한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 사실 기록: 날짜, 장소, 상황, 발언 내용
✔증거 확보: 문자, 녹음, 회의록, 목격자 진술
✔회사 내 절차 활용: 고충처리, 상담
✔관할 기관 신고: 노동청, 고용노동부
✔법적 조치: 정신적 손해배상청구 등
인간 세상에는 크고 작은 집단 어디를 막론하고 덜떨어진 인격의 빌런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결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조직 문화와 노동 환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악행으로 다같이 힘을 모아 근절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일터가 시몬 베유가 꿈꾼 '영적 충만함의 장소’는 되지 못할지언정, 막스 베버와 매슬로우가 말한 것처럼, 건강하고 화기애애한 ‘자아실현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