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느린 라이딩

by 약천

일출 전 아직 빛이 완전히 퍼지지 않은 시간입니다. 이 도시의 이른 아침은 유독 까치들이 분주합니다. 나무 사이를 오르내리며 아침을 여는 모습이 이 도시의 시조(市鳥)로서의 역할에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배낭을 챙겨서 메고 자전거를 끌고 탄천으로 내려섰습니다. 탄천, 무명천, 오포천, 신현천, 분당천을 따라 불곡산 가장자리 둘레를 온전히 한 바퀴 휘도는 코스를 마음속에 그려보았습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제법 쌀쌀합니다. 봄이 문턱에 와 있다지만, 이른 시간의 공기는 아직 겨울의 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탄천 공원에 들어서니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러너들이 드문드문 눈에 뜁니다. 두툼한 옷차림의 산책객과 리듬감 있게 발걸음을 옮기는 러너들, 각자의 속도로 아침을 맞이하는 풍경이 차분합니다.


탄천변 수내습지생태공원은 아직 긴 동면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수초가 무성했던 연못 가장자리는 휑하고 무채색 수면은 고요합니다. 겨울의 잠자락을 아직 떨쳐내지 못한 풍경 속에서,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의 섭리가 느껴집니다. 금곡교 아래를 지나며 다리 섬돌 사이로 흐르는 물을 바라봅니다. 하얗게 부서지며 흘러내리는 물살이 고요한 아침에 생동감의 리듬을 넣고 있습니다.

궁내교를 지나 제방 쪽으로 눈을 돌리자, 노란빛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개나리 군락이다. 노란 꽃망울을 맺는 산수유와 함께,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며 가장 먼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전령입니다.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새로운 계절은 분명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입니다.

정자교 부근을 지나며 탄천 건너편을 바라보니 아파트 공사 현장이 한창입니다. 수많은 크레인들이 높이 쌓아 올린 빌딩 옥상 위로 솟아 있는 모습이 생경합니다.

둥근 아치형 교각이 인상적인 금곡교 아래를 지날 즈음,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질서 정연한 듯 자유롭게 머리 위를 선회합니다. 잠시 원을 그리다 다시 흩어지며 아침의 고요에 파동을 일으킴니다.

밝은 녹색 조끼를 입은 수지 마라톤 클럽 러너들이 무리를 지어 스쳐 지나갑니다. 탁구, 골프, 야구, 테니스, 낚시, 러닝, 라이딩 등 각 종목이 한때의 붐을 계기로 마니아층을 넓혀가며, 생활 스포츠가 다양해지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해 보입니다.

동막천 하구를 지나 무지개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리교 아래를 지나며 성남의 경계를 넘어 용인으로 들어섭니다. 행정구역이 바뀌었을 뿐, 이어지는 길과 풍경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대지교 아래를 지나 인도교를 건너며 법화산과 대지산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이름 없는 물줄기를 따라 대지고개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고갯마루에 이르기 전, 죽전1동 하늘문성당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체적인 형태가 마치 노아의 방주를 닮아 있어 이채롭습니다. 성당 경내로 들어서자 성모자상 옆 촛불 봉헌대에서 두 노 신도가 조용히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올해로 설립 20 주년을 맞이했다는 이 성당은 하루에 세 번 미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건물 벽면에 걸린 '경기도 건축 문화상' 수상 기념 현판이 이 건축 양식의 독특함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대지고개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좌측으로 눈 아래 대지 마을이 넓게 펼쳐지며, 멀리 청계산까지 시야가 멀리 트입니다. 길 건너편에는 망자들을 평안한 쉼터로 인도할 장례식장 건물이 보입니다. 삶과 죽음이 같은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포은대로에게 통행의 주역을 내어준 옛길 왕복 2차선 대지로는 자전거 도로가 넓게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눈아래 포은대로를 굽어보며 고개를 넘는다. 이어지는 내리막길, 찬 바람을 가르며 속도가 붙습니다. 몸이 가벼워지는 순간의 쾌감과 동시에 브레이크를 의식하는 긴장감이 교차합니다.

고갯길 비탈을 다 내려서서 포은대로 아래로 뚫린 굴다리를 지나 유턴했습니다. 대지산 자락에 자리한 삼학사 중 한 분인 오달재 선생의 묘역을 둘러볼 요량입니다.

묘역 초입의 주택가에 황갈색 털의 개 한 마리가 긴 목줄을 늘어 떨인 채 조용히 낯선 객을 쳐다봅이다. 점잖고 위엄스러운 그 그 모습이 마치 묘를 지키는 수호자처럼 보입니다. 이 주변에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윤겸과 오희문 등의 묘도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오래된 문중의 터전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오산천변으로 내려서니, 작년 오월 라이딩 때의 봄과 달리 아직은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자연은 조바심을 내는 법이 없이 제 시각을 지키며 어김없이 찾아올 것입니다. 능원 1리 충렬서원에 들러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대지산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이곳은 포은 정몽주를 비롯한 선현들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비탈진 경사면에 단을 지어 강학당과 사당이 들어선 우리나라 전형적인 서원으로 마당과 건물은 소담하지만 단아합니다.

능원리에서 지척인 문수산 중턱에 자리한 포은의 묘역은 작년에 자전거를 지쳐 찾아가 보았던 터라 이번엔 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산천 위에 걸린

섬세한 조각으로 난간이 장식된 아치형 모현 선죽교(慕賢 善竹橋)를 건너면 포은의 묘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교량 입구 옆에 자리한 포은의 단심가 비석을 훑어보고 선죽교를 건너 오산천변 골목길로 들었습니다. 라이딩을 할 때면 운전을 할 때와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자연과 어우러진 마을의 표정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모현읍 동림리, 오산천변 소담한 주택의 낮은 담장 너머 빨랫줄에 걸린 갖가지 옷가지가 가족들의 모습을 살짝 짐작케 합니다.

왕림교를 건너 신현천변 능평로로 접어들었습니다. 비탈진 능평로를 따라 태재로로 올라설 것입니다. 한낮이 가까워지며 공기가 더욱 포근해지자 신현천과 능평로 좌우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제법 많이 눈에 뜁니다.

능원리와 능평리 일대에는 마을을 지키고 서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많습니다. 굵은 줄기와 하늘로 넓게 펼친 줄기가 이들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줍니다.

태재로로 접어들 무렵 문형산 자락에 자리한 부모님 묘역 눈에 들어와 반갑기도 하고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신현천은 태재로를 따라 태재고개 부근까지 이어집니다. 불곡산과 영장산은 태재고개에서 남북으로 뻗은 줄기가 서로 맞닿으며, 동서로 광주시와 성남시의 경계를 이룹니다. 그 고갯마루 인근 순대국밥집에 들러 목청껏 차오른 허기를 달랬습니다. 손님이 몰리자 여주인장은 서빙 로봇을 호출합니다. 사람과 기계가 함께 일하는 풍경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율동공원 쪽을 향해 영장산 자락을 휘도는 태재고개의 급경사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달리는 속도감에 온몸의 감각이 일어나는 짜릿함이 밀려듭니다. 율동공원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분당호 주변 산책로를 느긋하게 걷거나 벤치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습니다. 호수에는 백조와 커다란 잉어들이 한가롭게 떠다닙니다.

분당호 제방 아래에서 시작하는 분당천을 따라 중앙공원을 거쳐 탄천으로 회귀했습니다.

한강 쪽에서 부는 맞바람을 옴몸으로 맞으며 페달을 밟았다. 이른 아침과 달리 바람은 한결 부드럽습니다. 동방삭 인도교를 건너 탄천운동장 쪽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이렇게 약 5시간, 40km에 걸친 느린 라이딩을 마칩니다.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페달을 밟았기에 그저 스쳐지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더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 위에서, 사람과 자연,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 반나절의 라이딩이었습니다. 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