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에서 지척인 충주로 차를 몰았다. 어제부터 열린 워크숍은 오후 한 시경에 끝나고 오후 자투리 시간을 빌어 계명산 산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충주댐 아래쪽 남한강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슈퍼에서 삶은 계란 등 요깃거리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슈퍼 주인장은 댐 반대쪽의 마즈막재에서 오르는 코스를 권한다. 댐에 갇힌 강물은 산줄기 사이 계곡을 채웠고 계명산 자락이 충주호와 만나는 가장자리를 따라 난 '충주호수로'는 구불구불 마즈막재로 이어진다.
충주시 안림 목벌 종민 세 개의 동을 연결하는 마즈막재는 청풍과 단양의 사형수들이 형 집행을 받으러 충주로 들어올 때 넘던 고개라고 한다. 이 고개만 넘으면 살아 돌아갈 수 없어 이름 붙여졌다는 애처로운 전설이 있단다.
두 시경 고개 삼거리 옆 텅 빈 너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채비를 한다. 계명산은 백제시대 이 산 남쪽 마고성 성주의 딸이 산기슭에서 지네에 물려 죽게 되자 산신령이 일러준 대로 닭을 산에 풀어놓아 지네를 퇴치했다고 해서 지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들머리 계단을 오르면 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 언덕 위에 대몽항쟁 전승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1253년 이 지역 군관 승려 농민 노비 등이 방호별감 김윤후의 지휘 하에 혼연일체로 결사 항전하여 몽고군의 제5차 침입을 격퇴시킨 쾌거를 전하는 탑이다. 김윤후는 1232년 몽고의 제2차 침입 때에도 용인 처인성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한 영웅이다.
죽고 죽이고 뺏고 빼앗기는 전쟁의 역사가 곧 인간 역사이듯 우리 산하도 침략의 상처와 국난극복의 흉터가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전쟁뿐 아니라 불교 도래기나 초기 천주교 발아기 때 순교자들의 고귀한 피가 서린 곳도 한두 곳이 아니다. 그래서 산행은 때로 순례의 길이 되고 때로 추모나 참배의 길도 된다.
사람 발길이 드문 가파른 등산로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였고 잎을 떨군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능선 마루에 올라서고 제1,2 전망대가 차례로 나타나면서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충주 시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편으로는 충주호가 물 빠진 갯벌 이랑에 고인 바닷물처럼 산 능선 고랑 사이를 채우고 있다.
평일 오후 충청도 충주의 진산, 계명산 산행은 오르다 멈추다 걷다 쉬다 고개 들어 올려다보다 뒤돌아 굽어보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산행이다.
제2전망대에 닿을 무렵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시간은 여유로워 마음엔 그다지 조급증이 일지 않았다. 정상까지 2.3km 남짓 길지 않은 산행이지만 정상은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서 너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수고를 감내하고 나서야 해발 775미터 정상과 마주했다.
산정에는 다가올 겨울 앞에 억새들이 어정쩡 정신을 놓았고 멀리 충주호 너머로는 산들이 얕게 깔린 운무 위로 겹겹 끝없이 늘어섰다.
계명산(鷄鳴山), 그 이름과 달리 산행 내내 닭 울음소리는 고사하고 인적이나 새소리도 한 번 들리지 않았다. 하산길은 한결 빠르고 수월하다. 고사리손을 한 애기 단풍들이 겨울이 눈 앞에 와 있다고 일러준다.
지난 수요일엔 포항발 강도 5.4 지진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발 빠른 지원과 복구로 지진 이재민들이 다가올 겨울을 따뜻하게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17-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