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즐거움을 주는 산
도드람산,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부근을 지날 때면 차창 너머로 도드라지게 눈에 띄던 산이다. 서이천 IC에서 빠져나오면 금세 그 산 언저리에 닿는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 봉긋 솟은 도드람산 그림자가 온전히 내려앉았다.
북서에서 남동으로 뻗어 있는 도드람산의 남동쪽 초입 도로 옆 들머리에는 인가가 없지만 편의점이 하나 있고 차를 세울 공간도 넉넉하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아카시아 내음이 진하게 밀려온다. 도드람산 이름 유래비와 함께 멧돼지 동상이 들머리 옆에 서있다. 머리와 꼬리를 치켜든 멧돼지는 먹이를 찾아 금방 산에서 뛰어 내려온 듯 생동감 있다.
산길은 어제 내린 비로 살짝 젖어 있지만 물기를 빨아들인 사토질 바닥이 발을 폭신하게 받아들인다. 맨손에 배낭도 메지 않은 동네 주민인 듯싶은 산객 몇몇은 벌써 산 초입으로 내려서고 있다.
채 100미터도 오르지 않아 벤치가 놓인 쉼터가 나오고 첫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시원스레 큰 키의 참나무는 살랑이는 바람에 못 이겨 잎사귀에 이고 있던 빗방울을 가끔씩 흩뿌린다.
빨강 파랑 색칠을 한 벤치 서넛이 놓인 작은 쉼터를 하나 더 지나고 가파른 길을 2-3백 여 미터 오르면 우측 위로 홀연히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나타난다. 비스듬히 기운 바위들이 서로 기대어 병풍처럼 늘어선 제1봉이다.
제1봉은 나무에 가려 조망이 없고 멀리 도로에서 내달리는 차량 소음만 능선을 타고 올라와 귀를 거슬린다. 좌측 능선으로 발을 옮기면 고도가 조금씩 더 높아진다. 중간중간 능선 좌우로 특이한 모양새의 바위들이 비탈에 위태롭게 서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1봉에서 지근거리의 제2봉 바위 봉우리를 지나고 가파른 비탈을 올라 제3봉에 닿았다. 바위 봉우리 위에서 여우(女性山友) 두 분이 배낭을 열고 때 이른 점심 채비를 한다. 방울토마토 사과 김밥 계란,... 손을 내저어도 자꾸 권해서 한쪽씩을 집어 들었다. 단팥 빵 하나로 답례하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자리를 일어섰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 올 요량으로 정상을 스쳐지나 돼지굴 방향으로 직행한다. 능선에서 2백여 미터를 비스듬히 내려서면 오른쪽 위로 거대한 바위들이 기대어 서서 봉우리를 만들고 있다. 바위들 틈새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위 부분에 큰 바윗돌이 덮개 마냥 끼어서 굴처럼 보이는 그 좁은 틈새, 돼지굴이다.
병든 노모를 위해 스님 말에 따라 밧줄에 의지해 이곳 절벽에서 석이버섯을 따던 효자. 멧돼지 울음소리를 듣고 절벽 위로 올라보니 바위 모서리에 긁혀 끊어져 가고 있는 밧줄. 지극한 효심에 감복한 산신령이 돼지를 보내 효자를 살렸다고 한다. 돈(돼지) 울음산, 즉 도드람산(猪鳴山)의 유래다.
돼지굴 위 철계단이 놓인 전망대로 오르면 목책에 밧줄로 안전망을 친 편편한 바위 가장자리 너머 절벽 아래로 잔물결 일렁대는 바다처럼 초록 숲이 펼쳐져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지나온 길을 거슬러 도드람산 정상인 효자봉으로 향한다.
"정렬하세요. 시-작" "자- 이제 그만"... 체육대회라도 열렸는지 장암리 쪽에서 확성기 소리가 울려온다. 곳곳 낭떠러지 위에 솟은 바위에 올라서면 아래로 툭 트인 전망과 위쪽 바위 봉우리들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바위로 덮인 정상에는 각각 '도드람산 349m' '효자봉'이라 쓰인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정상을 뒤로하고 다시 제3봉으로 내려오니 여우들은 떠나고 제1, 2봉의 것과 똑같은 모양새의 앙증맞은 크기의 사각 검은 대리석 표지석이 바위봉 아래서 맞이한다.
제2봉 바위로 오르는 길 바위틈에 뿌리내린 소나무에 매인 밧줄이 낡아 헤어져 위태롭다. 돼지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바위봉 위에서 위 쪽을 보면 제1봉이 당장이라도 덮쳐 올 듯하고 아래쪽으로는 갈라진 바위들이 흘러내릴 듯 위태롭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인데 자꾸 방향감각을 잃었다. 덕분에 오히려 효자봉과 전망대를 거쳐 제1, 2, 3봉으로 천천히 거슬러 돌아오며 다시 음미할 수 있어 좋았다. 얼핏 생각과는 달리 도드람산은 1, 2, 3봉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고 효자봉에서 정점을 이룬다.
제1봉에서 올라왔던 길을 피해 인적이 드물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영보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바위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그 길은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고 멧돼지가 지나간 듯 발굽 자욱이 선명하다. 멧돼지가 튀어나와서 왜 자기 길을 침범했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하지 싶다. 제1봉에서 뻗어 내린 그 바위 능선은 초식공룡의 등줄기처럼 길게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방향이 잘못된 것을 감지하고 바위 능선 너머로 방향을 틀어 바로잡았다.
제1봉이 올려다 보이는 비탈 절벽에 마지막 선물인양 등받이 의자처럼 생긴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너른 바위 절벽 아래로 연녹색 숲이 넓은 강처럼 휘둘러 쌓고 그 너머로 중부고속도로와 설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쪽 100미터 남짓한 곳에 영보사가 기와지붕을 보이며 나타난다.
절집 뒤쪽으로 들어서면 좌측 계단 위 마당에 장독들이 모여 있고 '큰 법당' 현판이 걸린 법당과 그 우측 계단 길 위에 한 평 남짓 아담한 신신각이 앉아 있다. 마당 우측에는 석등 2기, 범종각과 아름다운 자태의 미륵불도 자리한다.
검은 털이 섞인 시베리안 허스키 풍의 잘 생긴 견공은 '컹 컹 컹' 짖으며 낯선 산객이 절집을 나설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영보사를 나서면 출발했던 들머리까지는 잠깐이다.
짧지만 재미가 쏠쏠했던 콤팩트한 산행이었다. 아직도 머리 높이로 태양이 비추는 오후다. 저 앞에서 설봉산이 손짓하고 있지만 오늘 산행은 도드람산, '이천의 소금강' 하나만으로도 흡족하고 충분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