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알프스를 찾아서(II)

영남 알프스 간월 신불 영축

by 꿈꾸는 시시포스

영남 알프스 산행을 위해 언양을 전초기지 삼아 일박했다. 지난 오월에 이어 두 번째 영남 알프스 산행이다. 이번 산행은 배내고개를 출발해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지나서 통도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예정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부산을 떠는 친구들을 따라 단잠에서 깼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간단한 요기 후 모텔을 나섰다. 바깥공기는 서늘하다. 이른 새벽 상가건물들 사이 돔형 천장이 높은 '언양 알프스 시장'은 불빛만 덩그렇다.

산행 들머리 배내고개로


네 시경 탄 택시, 첫 손님이라며 우리를 반기는 기사분과 언양, 산행, 철도 등 여러 얘기를 주고받았다.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옛 울산역은 태화강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단다. 새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가 보다.

능동산과 배내봉 줄기가 만나는 고갯마루, 이 십여 분만에 생태통로 아래 짧은 배내터널을 지나 배내고개에 도착했다. 어둠이 깃든 배내봉 능선이 푸른빛 하늘과 또렷한 경계를 긋고 있다. 하늘 높이 뜬 하현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 마냥 작고 외로워 보인다.


해발 680미터 배내고개에서 배내봉까지 1.4km 구간은 긴 침목 계단이 놓인 오르막 길이다. 앞장을 선 H의 헤드렌턴과 달빛에 의지해 발을 옮긴다. 좌우 숲에서 부지런한 산새들이 새벽을 맞이하는 소리가 분주하고 멀리 능선 아래서 뻐꾸기 소리도 들려온다.

가지런히 놓인 계단길이 지루해질 무렵 해발 966미터 배내봉에 닿았다. 어둠이 걷힌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민 태양이 구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맞은편 멀리 서쪽 천황산 위 구름이 아침노을을 드리우며 화답한다. 능동산 너머 아스라히 지워질 듯 옅은 음영의 운문산이 신비롭다. 가지산은 12폭 병풍처럼 양쪽으로 능선을 길게 뻗고 있다.

배내봉에서 간월산까지는 2.6km 거리다. 하늘을 덮은 나무터널을 지나는데 내려앉은 이슬이 마르지 않은 잎과 가지가 팔을 스친다. 새하얀 꽃잎에 샛노란 수술을 품은 찔레꽃이 진한 내음을 뿜으며 인사한다.

하늘은 포말 이는 바다처럼 구름의 물결


숲을 벗어나니 산 아래 울산과 양산 마을들이 옅은 구름에 덮여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몽롱해 보인다. 높은 하늘은 포말이 이는 바다처럼 구름의 잔물결이 넓게 퍼져 있다.

간월산 못 미쳐 등짐을 진 채로 쉬었다는 해발 900미터 선짐재 곧 '선짐이 질등'이 나온다. 일흔아홉 고개를 넘어 이곳에 올랐다는 배내골 사람들, 그래서 '하늘에 걸린 사다리'라는 표현에는 과장이 아니라 삶의 고달픔이 배어 있다.


배내봉에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 왼쪽은 경사가 급하거나 깎아지른 절벽이고 오른쪽은 넓은 억새밭과 습지를 품은 완만한 지형이다.

찌이지 찌찌이지 찌니르르... 산길 내내 좀체 흉내 낼 수 없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끊이질 않는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광대한 영남 알프스 숲은 먹이 찾기와 번식에 더없이 좋은 낙원일 터이다.

광대한 영남 알프스 숲은 새들의 낙원


정상 바로 아래 3백여 미터 가파른 경사를 힘겹게 오르면 해발 1069m 간월산 표지석이 둥그스름하고 넉넉한 등을 내보인다. 우리를 뒤따라 정상에 도착한 산객 한 분이 인사를 건넨 후 신불산 쪽 능선을 따라 바람처럼 멀어져 간다.

간월산 정상에서 간월재로 내려가는 완만한 800여 미터 길은 너른 능선이 펼치는 장쾌한 풍경을 선사한다. 험한 바위로 덮인 정상 부근과는 달리 길고 완만한 능선은 어머니 품처럼 편하고 아늑하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사라 브라이트만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넬라판타지아 노랫가락이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들려올 듯하다.

'난 영혼이 늘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요'


말 등에 얹힌 안장처럼 편해 보이는 영남알프스의 관문 해발 900m 간월재, 옛적 이곳을 배내골 주민, 울산 소금장수, 언양 소장수, 장꾼 등이 줄지어 넘었다고 한다. 등억리와 배내골을 연결하는 포장도로가 간월재를 넘어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저번 석골사를 기점으로 처음부터 해발 1188미터 운문산을 치고 올라 깊은 고개를 오르내리며 가지산 천황봉으로 이어진 첫 산행은 힘들었었다. 해발 680m에서 출발한 이번 영남 알프스 2차 산행은 첫 산행에 비하면 '금수저' 산행이다.

산행이 출발점과 코스에 따라 편하고 힘든 차이가 이처럼 큰데 세상의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 그로 인해 야기되는 차별과 불공평은 따로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싶다.

첫 산행에 비하면 '금수저' 산행


간월재에서 1.6km 거리 신불산으로 가는 길은 나무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까마득해 보인다. 너른 초원처럼 그늘이 없는 길은 내려쬐는 햇볕이 따갑다. 벌 한 마리가 목책에 기댄 기린 꽃에 취해 있고 나는 그 모습에 취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길옆에 바짝 붙어 서서 산객에게 아양을 떠는 야생화가 있는가 하면, 남의 시선을 의식 않고 등산로 멀찍이서 소박한 꽃을 무던히 피워내는 꽃나무도 있다.


계단과 바윗길 1km여 평탄한 길 6백여 미터가 끝나면 해발 1159m 신불산 정상이다. 온전한 아침시간으로 접어들어서인지 산객들이 간간이 맞은편에서 스쳐 지나거나 뒤에서 추월해 간다.


신불산에는 정상 표지석과 더불어 돌을 쌓아 만든 지름 3~4미터의 원기둥형 탑과 삼남면 주민들이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며 '꿈과 희망' 성취를 기원하며 세운 빗돌이 놓여있다.


신불재로 내려가는 길 옆 바위에 걸터앉아 아침 겸 허기를 달랬다. 신불재 영축산 함박등으로 이어지는 앞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불재에서 영축산까지는 2.2km로 완만한 평원 위에 너른 침목이 놓인 계단길, 흙길, 사토질 속살을 드러낸 길 등 다채롭고 정상 부근은 큰 암반으로 덮인 바윗길이다.


신불재 부근 우측 능선 꽃을 떨군 빛바랜 억새밭이 그 너머 푸른 숲과 대조를 이루며 천상의 정원인양 일렁인다. 억새 군락지는 끝이 없을 듯 이어지고 능선을 돌고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다채로운 풍광을 펼쳐 보인다.

간간이 뒤를 돌아보면 시원스러운 능선길 우측으로 가파른 바위 절벽과 내리 뻗은 암릉이 장관이다. 평원에 이어 나타나는 숲에서는 유쾌한 새소리가 끊이질 않고 제철을 만난 뻐꾸기도 흥이 났는지 뻐꾹뻐꾹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50만 평 억새밭과 전쟁 치른 단조성


영축산 아래 50만 평 억새밭 신불평원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치른 단조성을 지나서 해발 1081m 영축산 정상에 올라섰다. 바위로 덮인 정상은 그늘이 없지만 바람이 불어 땀과 열기를 식혀주고 일망무제 조망은 마음마저 서늘하게 해 준다.

영축산 정상에서 여유롭게 머물다가 한 시간 거리 1.7km 떨어진 함박등으로 향했다. 영축산 정상에서 200여 미터 함박등으로 가는 길 능선 바로 아래 약수터에 들러 목을 축였다. 왼쪽으로 천애 절벽을 끼고 걷는 길은 짜릿하다. 해발 1052m 함박등은 다른 봉우리에 비해 까다로워 보이지만 산정에 서 있는 표지석은 작고 단순하여 겸손해 보인다.


먼 길을 걸었다. 발바닥은 뜨겁고 무릎은 뻐근하다. 여기부터 통도사로의 본격적인 하산길이 시작된다. 아름드리 노송이 그늘을 드리운 가파른 경사의 하산길은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질서 정연한 부처의 세계로 들어선 듯 편안하다.

나무계단 중간중간 벤치가 놓인 너른 쉼터나 숲 속 작은 공터에서 끼리끼리 자리를 틀고 음식과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모습이 정겹다.

함박재에서 내려가는 길 가장 먼저 신라 진성여왕 때 창건된 백운암을 만났다. 통도 팔경 중 하나라는 황혼 무렵 풍경과 북소리를 들어볼 수 없어 아쉽다.

백운암 아래 가파른 경사에 지그재그로 난 길로 대나무 지팡이로 땅을 치며 스님 네 분이 오른다. 영축산 팔부능선 해발 800여 미터 암자로 오르는 길은 그 자체가 수행의 길이지 싶다.


가파른 내리막이 끝나고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지나서 들른 비로암의 아름다운 비로자나불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고 일깨운다. 비로암과 이웃한 극락암 전각에는 김정희, 팔봉 거사, 경봉 스님, 서병오 등이 쓴 현판들이 걸려 있다. 추사의 '無量壽閣' '好快大活' 현판이 인상적이다.

통도사에 딸린 너른 논밭 사이로 난 길을 한참 걸었다. 암자 20개를 거느린 불보(佛寶) 통도사 경내는 남녀노소 방문객들로 번잡하다. 통도사 일주문을 나서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좌우로 늘어선 1 km 여의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가 나온다. 노송들은 제멋대로의 모양새로 하늘로 뻗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서로 어우러져 조화롭다.

세상 사람들은 일주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우리 일행은 영남알프스 품을 거닐고 통도의 자비에 푹 빠졌다가 일주문을 나서서 사바세계로 돌아왔다.



< 영남알프스 프롤로그 >

고속열차로 부산에서 출발해서 20여 분 만에 양산 통도사 역에 도착했다. 지난달 첫 영남알프스 산행에 이어 2탄 격으로 그때 그 친구들과 나머지 구간을 걷기로 한 것이다.

그때는 밀양에서 일박을 하고 새벽 5시에 운문산 자락에 안긴 석골사를 출발해서 운문산 가지산 능동산 천황산 천황재를 거쳐 표충사로 하산했었다.

이번에는 언양을 전초기지 삼아 짧은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새벽에 배내고개를 출발해서 영남알프스 동쪽의 주축을 이루는 배내재 간월산 간월재 신불산 신불재 영축산을 거쳐 통도사로 하산할 요량이다.


역에서 가까운 태화강은 가지산과 고헌산 등에서 발원하여 언양 울산 등지를 지나 백이십 여 리를 달려 울산만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울산 고속철도역을 빠져나와 태화강 위로 놓인 자전교를 건너 어둠이 내려앉은 강변을 따라 언양으로 발길을 옮겼다. 너른 태화강은 잡초가 무성히 덮였고 둑방길은 산책 나온 주민들만 간간이 보일뿐이다. 20여 분만에 읍내에 닿았다.

언양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불고기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도축장과 푸줏간이 있었다니 고개가 끄떡여진다. 60년대 말 고속도로 건설 노동자들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는 언양불고기, '굵게 채 썬 쇠고기를 배즙에 재웠다가 양념장에 버무려 물 묻힌 한지를 올린 석쇠에 구워 통깨를 뿌린 것'이라는 전통 향토음식 용어사전의 설명이다.

모텔에 짐을 내리고 내일 산행 중 요깃거리를 준비할 겸 언양읍성과 언양성당을 둘러보려고 나섰다. 과거 경주와 울산 등 주변을 잇는 교통 요충지였던 언양, 언양읍성의 남문 격인 영화루(映花樓)는 고적하고 정비된 주변 성곽은 말끔하다. 신라 때의 토성을 후에 돌로 다시 축성했다는데 14~15세기 축성법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한다. 누각 위에는 학생 몇몇이 담소하거나 생각에 잠겨있다.


발길을 언양성당 쪽으로 옮겼다. 고헌산 줄기 끝자락 언덕배기에 자리한 성당, 마당 쉼터와 그 옆 찻집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모습이 느긋해 보인다. 1936년 초대 신부 보드뱅이 건립한 언양성당은 울산지역 가장 오래된 고딕 양식 석조건물로 이 지역 천주교 신앙의 출발지이자 구심점이라고 한다.

경남 천주교 신앙은 1790년 첫 신자이자 신유박해 때 충청도에서 순교한 이 지역 출신 베드로 오한우(1760-1801), 그와 함께 영세를 받고 박해를 피해 간월 불당골로 피신해서 신앙을 전파한 프란치스코 김교희(1775-1834)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고헌산 간월산 일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충북과 경북 신자들의 피신처였다고 한다.

언양, 초기 가톨릭의 요람


간월산 정상 서쪽 아래 죽림굴 대재 공소公所(1840-1868)는 간월산 동편 간월 공소(1815-1860)에 이은 경남지역 두 번째 공소로 샤스땅 다블뤼 최양업 등 신부가 박해를 피해 사목을 하던 장소였단다. 이 지역은 초기 가톨릭의 요람이었다. 어둠에 묻혀 희미한 융곽만 보이는 성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슈퍼에 들러 과일 음료 빵 등을 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도로변 분수 수로와 생동감 넘치는 황소 동상이 눈길을 끈다. 만지면 지혜로워진다는 뿔과 행운이 온다는 코를 몇 번 쓰다듬었다. 득남 득녀한다는 거시기는 만져서 무었하랴.

세종과 일산에서 차례로 M과 H가 도착했다. 20여 킬로미터의 산행이 예정된 내일은 힘든 하루가 될 것이다. 짧으나마 달콤한 꿈이 찾아오는 밤이 되면 좋겠다.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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