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엔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중부 이북은 맑고 뜨거운 날씨다. 기상 예보는 때 이른 장마와 그 어느 해보다 더 뜨거운 본격적인 여름을 점치고 있다.
동홍천 IC에서 내려 홍천강을 따라 난 44번 국도 설악로로 들어섰다. 양양까지 고속도로가 놓이기 전까지 피서철마다 이 길을 통해 미시령을 넘곤 했었다.
철정 터널 지나 군복 주머니에 휴가증을 넣고 집으로 향할 때 헌병이 버스에 올라서면 괜스레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옛 철정 검문소도 쏜살같이 지나면 금세 두촌면이다.
가리산 골짜기에서 내려온 평천이 홍천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에서 설악로를 뒤로하고 가리산길로 들어섰다. 평천을 따라 난 길을 따라 한참만에 가리산 품속에 안긴 자연 휴양림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통나무집, 야영장, 체육시설 등이 자리한 휴양림은 온통 녹음의 숲에 둘러싸여 있다.
예상과 달리 산행 버스 두어 대와 여러 대의 승용차가 주차해 있는 주차장에서 많은 산객들이 배낭을 여미고 스틱을 펴고 등산화 끈을 조이고 스트레칭을 하는 등 산행 채비에 한창이다. 코로나 19 여파로 휴양림은 운영을 중단했지만 산을 찾는 이는 여전한가 보다.
초록 숲 너머 멀리 장성처럼 높고 평평한 청록빛 능선 위에 춤추는 학처럼 피어오르는 옅은 구름을 인 비취색 하늘을 배경으로 가리산 암봉 셋이 오뚝 솟아 있다.
만발한 장미꽃이 기대어 선 주차장 난간 너머 지나온 계곡 쪽 하늘은 양털 구름을 펼쳐놓았다.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 주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순수 자연의 매력이 산과 들, 강과 바다를 찾는 이유가 아닐까.
홍천군 관광안내도, 홍천 9경 중 제2 경이라는 안내판, 가리산 표지석, 각종 시설물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 계곡을 따라 아스팔트를 오른다. 강우레이더 관측소 관리동 옆 안내판을 훑어봤다.
국토교통부 한강 홍수통제소에서 관리하는 이 관측소는 '레이더 반사파를 분석, 강우량 산정을 위한 홍수예방용 국가재난대책시설'이라고 한다. 가리산 남쪽 944미터 봉우리 위의 지상 9층 관측소까지는 2.3km 업무용 모노레일이 놓여있다. 강우레이더 관측소는 이곳을 비롯 소백산 비슬산 임진강 예봉산 모후산 서대산 등 전국 7곳에 있다는 설명이다.
관측소 관리동을 뒤로하고 가리산 품속을 향해 발을 옮긴다. 본격적인 산행은 무쇠말재와 가삽고개 쪽으로 나뉘는 합수곡에서 시작된다. 졸졸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 가파른 능선 사면으로 비스듬히 난 길을 따라 오른다. 계곡을 내려다보며 능선을 휘돌면 능선 마루로 난 가파르고 긴 숲길이 이어진다.
바람 없는 비알 길은 연신 이마의 땀을 손으로 훔치게 하지만 하늘을 향해 쭉쭉 곧게 뻗은 성긴 참나무 숲은 시원스럽기만 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산객들을 피해 침목 계단에 앉거나 바람이 이는 비탈 나무에 기대어 서서 숨을 돌렸다. 기대었다 떼는 나무줄기에 땀이 흥건히 묻어난다.
"그리 높지도 않은데 왜 이리 힘들지요?" "계속 치고 올라 그럴 겁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옆 산객도 힘들어 보인다. 일상에서도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듯 산행 중에도 피로를 풀고 에너지를 모으기 위한 휴식을 간간이 가져야 한다.
위도 아래도 끝이 없을 듯한 가파른 비탈길이다. 고도가 상당한 지 잠시 고막이 멍멍 머리가 핑 돈다. 지루하고 긴 비탈을 따라 시시각각 밀려드는 고통을 참으며 산정으로 오르는 까닭에 문득문득 회의가 들기도 한다.
“긴 세월을 평범하게 살며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높은 데서는 한 달 사이에 체험한다.”라고 했던 폴란드 알피니스트 예지 쿠쿠츠카(1948~1989)의 경지는 너무 가팔라서 오르지 못할 지경이다.
1986년 한국 K2 원정대 대장으로 성공적인 원정을 이끈 산악인 김병준도 원정기에서 등반 행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히말라야 원정에서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대자연 속에서 등반하며 지내는 몇 달 동안이 결코 시간이나 돈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값지고 풍요로운 삶의 깊이를 이처럼 짧은 시간에 많이 깨닫게 되는 경우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 <K2 하늘의 절대군주> 中 -
등산을 '무상(無償)의 행위'라고 한 프랑스의 등반가 리오넬 테레이(1921-1965)의 말은 보다 쉬이 수긍이 가지만, 정상에 섰을 때 가슴 가득 밀려드는 벅찬 감정 그 자체가 이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의 보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쇠말재 능선 마루에 올라서서 가쁜 숨을 골랐다. 해발 860여 미터로 산행 기점에서 400여 미터를 올랐고 정상까지는 200여 미터가 남은 셈이다. 처음으로 내놓는 정상 아래쪽까지 이어지는 평탄한 능선길이 고맙게 느껴진다. 1.24km 떨어진 강우 관측소 반대편 긴 성곽처럼 평탄한 능선 위에 오똑 솟아 있을 정상까지는 900미터 거리다.
평탄하던 능선 숲길 앞을 갑자기 사막의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암봉이 우뚝 막아선다. 정상 아래 샘터와 제1봉, 그리고 2,3봉의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제1봉으로 난 암벽을 오른다. 암벽길 중간에서 발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본다. 연초록빛 수풀로 덮인 완만하고 시원스러운 능선과 그 정점 944m 봉 위의 기상관측소가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먼저 올라오세요." "예 고맙습니다." 제1봉 암벽에 박힌 철심을 밟고 가드 줄을 잡으며 산객들이 교대로 정상에서 내려오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서로 소통하고 양보하며 차례를 지키는 모습은 산행의 아름다운 미덕 중 하나다.
해발 1051미터 제1봉 정상에 올라섰다. 특이하게 표지석과 함께 국군 해병대 제1연대와 북한군 6사단 예하부대 간에 벌어졌던 가리산 전투 기념비가 서있다. 1951.3.19~3.25일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서 가리산을 확보하여 총반격 작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사방이 툭 터인 정상 바로 옆으로 100여 미터 사이를 두고 제2봉과 제3봉이 형제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앞쪽으로 첩첩 밀려들고 밀려나는 산군과 산줄기 사이를 비집고 마을이 들어섰고 표지석 뒤로는 산줄기 사이로 소양호가 띄엄띄엄 수면을 드러내고 있다.
필드에서야 목청껏 굿샷을 외쳐도 나무랄 이 없지만 예전과 달리 요즘엔 산정에서는 야호 소리 한 번 지를 수 없다. 산중에서 또 다른 내 목소리, 메아리를 듣는 소소한 행복이라도 느껴보려면 아예 인적 끈긴 첩첩산중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다.
제2봉 쪽으로 가려 내려서는 길도 오르던 길과 마찬가지로 가파른 암벽이다. 세 개의 봉 가운데 어느 하나에 올라서면 다른 두 봉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제2봉 위에 참조팝나무가 송이송이 꽃을 피웠고 가장자리 절벽에 고사목 한 그루가 서있다. 그 옆 안내판은 영조 때 한 선비가 이곳에서 책 읽고 호연지기를 키워 나이 스물에 장원급제를 하고 판서까지 올랐는데, 그 후 바위가 차츰 사람 얼굴을 닮아 갔다는 전설을 알린다. 제2봉 '큰 바위 얼굴'이라는 그 모습은 정작 제3봉에서 또렷이 윤곽이 보인다.
제2봉을 거쳐 암벽을 내려서면 가삽고개 쪽으로 평탄한 흙길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정오를 넘긴 시각 정상에서 내려와 나무가 울창한 숲길 여기저기에 산객들이 자리를 틀고 앉아 허기를 달래고 있다.
라텍스처럼 폭신한 흙길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울창한 숲 나무 잎사귀를 뚫고 들어온 햇빛이 길바닥에 물그림자처럼 기하학적 문양으로 어른거린다. 느슨한 비탈에도 번번이 멈추어서며 내미는 등짝을 산길 옆 나무들은 마다하지 않고 말없이 받아준다.
숲의 바닷속에서 턱턱 잠기는 숨을 긴 휘파람으로 두어 번 내뱉고 들이쉬며 숨을 골라본다.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했다가 수면으로 오르며 턱까지 차오른 숨을 내뿜는 해녀의 숨비소리가 이럴까?
대부분 산객들의 하산 기점인 가삽고개 갈림길을 지나 새득이봉과 등골산 쪽 능선은 오가는 산객은 그림자조차 없다. 산길로 삐쳐 나온 가지와 넝쿨이 등로를 가로막았고 날벌레는 가쁜 숨을 몰아쉬려 크게 벌린 입속으로 날아들어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멧돼지들은 근데 군데 한 무더기씩 배설물로 영역을 표시해 놓았다.
무성한 숲길을 혼자서 걸을 때면 마음이 편안하지만, 한편 호랑이는 말할 것도 없고 곰이나 똬리 튼 독사와 같은 짐승도 나타날 리 만무하겠지만 두려운 마음도 꼼틀대기 마련이다. 가끔 돌부리를 일부러 스틱으로 탁탁 치며 두려움을 물리치고 혹여 어디서 달려들지도 모를 멧돼지도 경계했다.
아무런 표식도 없는 해발 901미터 등골산 정상을 지도 앱으로 확인했다. 그 정상 주위에서 예상했던 휴양림 쪽으로의 등로를 찾아 앞뒤를 오가며 20여분 알바를 했다. 직하강 등로 찾기를 단념하고 평내등골산 쪽으로 코스를 고쳐 잡고 등골산 정상을 세 번째로 지나며 생수 한 모금으로 쓴 입속을 달랬다.
정상까지가 레크리에이션 산행이라면 등골산을 거쳐 수풀이 가린 희미한 등로를 헤치며 내려온 하산 코스야말로 진정한 산행답다는 생각도 든다.
등골산을 뒤로하고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성긴 숲이 나타나며 길도 산뜻해진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끈을 조여 매니 등산화가 발등을 잡아주어 발가락이 한결 편하다.
해발 611미터 평내등골산 정상을 뒤로하고 내려서려는데 붉은 머리 검은 몸통의 딱따구리 한 쌍이 무슨 영문인지 한참 동안 뒤를 따르오며 맹렬히 짹짹거린다. 보기 드문 산객을 반기는 걸까? 산길 부근 나무 위 둥지에 새끼라도 튼 것일까?
등로가 없는 곧게 뻗은 낙엽송 숲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개울 옆 주차장 펜스를 비껴 넘어 주차장으로 올라섰다. 먼저 산행을 마친 산객들이 땀을 씻고 그늘에 모여 앉아 달아오른 몸을 식히며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가리산을 뒤로하고 긴 계곡을 빠져나오는 길, 목은 여전히 갈증으로 타지만 마음은 비췻빛 하늘을 이고 있는 가리산처럼 그지없이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