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올레 갈매 누비, 순례의 길

성남 누비길 제3구간, 태재에서 갈마치(+이배재)까지

by 꿈꾸는 시시포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자 일요일이다. 높고 파란빛 하늘을 수놓은 하얀 구름이 탐스럽다. 마을 앞 탄천공원에는 여유로운 걸음들이 가을 햇살을 맞으며 길었지만 아쉬운 듯 휴일의 끝자락을 음미하고 있다.

이매동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옛 태재 고개에서 내려 영장산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성남시와 광주시를 가르는 능선을 따라 성남누비길이 이어진다.


광주시 쪽은 능선 바로 아래부터 골프연습장 전원주택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다. 등산로 이정표는 인공물을 피해 성남 쪽 9부 능선으로 길을 안내한다.


인간의 욕심은 산 밑자락으론 턱없이 부족하여 산 능선 턱밑까지 치달았다. 영장산 쪽으로 오를수록 시계(市界) 능선을 따라 빼곡히 주택이 들어섰고 비탈을 깎아 평평하게 터를 잡아 집 지을 준비에 부산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산중이 아니라 개발 바람이 거센 어느 동네 뒷골목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경기도 광주의 난개발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저께 새벽까지 내린 비는 등산로 흙길을 라텍스처럼 차분하고 폭신하게 다져놓았다.

산을 오를수록 차량이 다니는 길이 멀어지며 아스팔트 길을 내닫는 차량 소음도 경쟁하듯 치열하게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묻혔다. 태재고개 아래 듬직히 들어앉은 요한성당의 종소리가 바람을 타고 나직하게 들려온다.

숲 속에서 알밤을 줍는 아낙들의 수다 소리에 섞여 나오는 까르르 웃음소리가 높고 경쾌하다. 숲에서 자란 밤은 하나 같이 크기가 도토리 키 재기하듯 엄지손가락 끝 마디 만하다. 비료나 거름을 듬뿍 받은 농장의 밤나무에서 나는 큼직한 밤톨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거친 야생에서 돌보는 이 하나 없이 스스로 자란 저 밤나무들도 저마다 작지만 소담스러운 저들의 열매에 자랑스러워할 자격은 충분하다.

수북하게 산을 덮은 참나무 잎사귀 틈 사이로 이름 모를 버섯들이 붉은빛의 삿갓을 쓰고 고개를 내밀었다. 원색 화려한 빛깔의 버섯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이 드물고 필시 독버섯이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로 공자께서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고 경계의 말씀을 남기지 않았던가. 번드르르한 외모나 말씨의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드물다고.

며칠 전 TV 세계기행 프로그램에 친구가 부부동반으로 다녀왔다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소개되었었다. 스페인의 수호자가 되고자 했던 성 야곱 Saint Jacob의 여정에서 유래했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요즘 우리들 주변에도 둘레길 올레길 누비길 갈매길 등 각양각색 이름의 길이 많고 또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굳이 멀리 해외로 나갈 것도 없이 언제든 나서서 홀로 자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를 수 있다.

태재에서 영장산을 거쳐 갈마치 이배재 고개로 가는 산행 길은 여러 개의 높고 낮은 고개를 지나야 한다. 성남시 갈현동과 광주시 직동을 시원스레 뚫어 연결하는 새로 난 중원터널 위 고갯길을 지나고 작은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서면 또다시 작은 고갯길이 나온다.


표지판이 왼쪽 방향을 '영생 관리소'라 표기하고 있다. 죽은 자들에게 이생 너머에 있을 영생으로 인도하겠다는 살아 있는 자들의 염원과 정성이 배어있는 이름일까? 조금은 건방지거나 오지랖 넓어 보이기도 하다.


산행 중 만나는 고갯길은 변곡점이다. 그 변곡점은 산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통로인 동시에 산객에겐 산정에서 내리막 길을 내려와서 다시 또 다른 정상을 향해 비탈길을 오르는 시발점이다. 인생에서도 여러 고갯길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고갯길이 때론 고빗길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어려운 도전인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송전탑이 자주 눈에 띄는데 송전탑 아래 주위엔 어김없이 칡넝쿨이 무성하다.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 일부러 심은 것인지 타고 오르기 좋은 구조물이 있어 칡 나무가 스스로 찾아와 뿌리를 내린 것인지 궁금증이 인다.


세상사 칡넝쿨처럼 온통 복잡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지만 대학(大學)의 가르침대로라면 격물치지(格物 致知)야말로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로 나아가는 기본이라 하니 궁금증은 많고 치밀할수록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산길은 두터운 무명 이불에 누비질한 실처럼 숲 아래로 내려갔다 위로 오르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산행 종착점 이배재 고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다가 기와집 용머리가 허공으로 높게 내달리다 갑자기 주저앉듯 여섯 시간여 만에 홀연히 모습을 나타냈다.


이배재 고개 위를 가로질러 남한산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고갯길로 내려섰다. 한숨을 돌리려던 참에 3-3번 모란행 버스가 숨 가쁜 듯 헐떡이며 가파른 비탈길을 타고 고갯마루로 올라온다. 여기에서 순례의 길을 멈추고 또 그 언제쯤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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