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불곡산 산행에 나섰다. 양주에도 불곡산이 있지만 이곳 분당에도 불곡산이 자리한다. 들머리인 구미동 석촌공원으로 향한다. 구미 어린이공원과 구미초교 뒤편 좁은 길 양편에 늘어선 가로수는 하늘에 닿을 듯 키가 크다.
들머리 불곡산 자락으로 올라섰다. 들머리에서 250여 미터를 지나 불곡산 정상 태재 영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성남, 용인 그리고 광주를 가르는 시계를 이룬다. 들머리에서 시작된 능선은 30여 분간 양쪽에 안겨있는 마을에 들어선 높고 낮은 아파트의 허리나 옥상 높이로 난 평탄한 길이다.
완만한 길이 끝나고 정상으로 가는 길목 경사진 능선 마루는 옛 전장터다. 6.25 때 한국군 미국 등 UN군과 북중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 국군 병사들의 유해와 유품들이 발굴되었다는 안내문이 서있다.
국군과 유엔군은 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과 9.28 서울수복 후 북진하여 10월 26일 초산 압록강 가에 다달았다. 수통에 압록강 물을 떠 담던 국군 제6보병사단 병사들은 통일이 코앞에 있는 듯했을 것이다.
그 통일의 꿈은 중공군의 개입과 1.4 후퇴로 눈앞에서 물거품이 되었다. 팽덕회가 이끄는 중공군에게 서울까지 내어주게 되는데, 51년 1월 25일 수도권 일대 산악지대에서 반격작전이 개시되었다. '천둥번개' 즉 '썬더볼트' 작전에 따라 이곳 불곡산 일대에서도 한미 연합군과 북중 연합군 간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수세이던 전세를 공세로 전환하는 전기가 되었다고 한다.
매 순간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그 전투에서 수많은 적군과 아군 젊은 병사들이 전사했다고 한다. 그들의 넋은 아직도 바람만 넘나드는 이곳 어딘가 여기저기에 외로이 누워서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돌고 도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불곡산 정상으로 가는 길엔 떡봉 고개, 휘남에 고개, 부천당 고개 등이 능선을 가로질러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다.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친절하게 세워져 있는데 그중 여러 곳에 둥근 벽시계를 달아놓은 것이 이채롭다.
누군가에게 이 산길은 일상의 산보요 또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잠시나마 답답하고 번잡한 일상에서의 탈출일 수도 있을 것인데, 이정표 기둥에 매달아 놓은 벽시계들은 산객을 일상의 시간으로 돌려놓으려는 메멘토 모리 마냥 시원해졌던 머리를 무겁게 한다.
해발 335미터 불곡산 바로 옆 300미터쯤 봉오리에 높이 20여 미터쯤 되어 보이는 산불감시탑이 서있다. 울타리 문을 열고 철제 계단을 올라가니 밑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한참 동안 오금이 저리고 머리카락이 쭈뼛거린다. 탑 위 한 평 남짓 벽과 지붕이 있는 감시소에는 마침 산불감시원 한 분이 근무 중인데 매일 상주하지는 않는단다.
오늘은 날이 맑아 난간을 두른 탑 위에서 보면 가까이 남에서 북으로 누워있는 탄천, 멀리 북으로 공터처럼 드러난 성남 비행장과 그 뒤 잠실 롯데빌딩이 우뚝하고, 헌릉과 인릉을 품은 인릉산 너머로 남산타워와 인왕산,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이 하늘과 흐릿한 경계를 귿고있다.
왼쪽으로 천천히 눈길을 돌리면 청계산, 바래봉, 백운산이 차례로 늘어섰고 이어 광교산의 긴 능선이 도시의 아파트 숲 사이로 내려앉는다. 남쪽으로는 지난 4일 화재로 인명피해가 있었던 66층 249미터 높이의 동탄 메타폴리스 빌딩이 얕은 산들이 만들어낸 일렁이는 파도 위에 잠길듯 솟아있다.
동쪽으로는 태화산에서 백마산으로 이어지는 산맥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높지는 않지만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뜻하지 않게 오늘 산행의 백미가 되었다.
앙증맞은 표지석과 정자가 있는 불곡산 정상을 지나 '명상의 숲' 길로 접어들었다. 얼음이 풀리는 우수답게 곳곳에 눈이 녹아 질퍽여 낙엽이 쌓여 있는 길 가장자리로 걷기가 편하다. 성남과 광주를 잇는 태재고개의 신현리로 내려서며 짧은 산행을 마무리한다.
야탑 모란 가락시장을 지나 잠실까지 가는 노선의 17-1번 버스를 타고 낯익은 고갯길을 지나 아트센터에서 내렸다. 탄천변 넉넉한 햇살을 맞으며 사람들이 걷고 물속 잉어들은 헤엄치고 물 위 오리와 헤오라기는 먹이 찾기에 분주하다.
불곡산 곳곳에 매달린 벽시계처럼 일상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라고 채근하는 성가신 존재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시간도 삶도 죽음도 걱정도 조바심도 없이 그냥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싶은 호젓한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