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산과 궁내동

누비길 5-1구간, 태봉산길

by 꿈꾸는 시시포스

달이 바뀌었다. 일기예보는 비를 예보했지만 날씨는 잔뜩 흐리기만 하다. 사오 년 전부터 걷기와 산행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이 4,50이면 무엇엔가 미쳐 빠져들지 않고는 이 미친 세상을 견뎌내기 어렵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미쳐야(狂) 미칠 수(及) 있다고도 했다.


인근 성남 누비길 제5구간인 태봉산 부근을 돌아보려 집을 나섰다. 미금역 6번 출구로 빠져나왔다. 과학기술한림원 빌딩 모퉁이의 장영실 동상과 그 뒤 건물 앞 이일호 作 '나들이'라는 조각상에 한동안 눈길을 주고 선배산 머내 과학공원으로 올라섰다.

고속도로와 동막천 그리고 차도에 갇혀 차량 소음으로 뒤덮인 자그마한 선배산이 마치 흐느껴 우는 듯하다. 얕은 산정을 지나 남쪽 자락에서 동막천 천변 길로 내려섰다. 좁은 하천의 물줄기가 활달하고 기운차다. 탄천으로 안겨드는 동막천을 거슬러 동막천 1,2교, 금곡교, 머내 2교 머내 고가교 촘촘히 늘어선 다리 밑을 차례로 지난다.


동원동으로 올라서서 경로당 옆 운재산 자락 '성남 누비길 태봉산길 구간'이라 적힌 아치형 게이트로 들어섰다. '안골정'이란 현판이 붙은 정자 옆 약수터 용머리 석조는 쉼 없이 굵은 물줄기를 뿜어낸다. 잔뜩 흐리던 하늘이 가는 비를 몇 방울 뿌리는가 싶더니 멈춘다.

"시원하시겠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주말은 이 맛이죠."

산에서 내려오는 부지런한 산객과 몇 마디 주고받고 능선으로 향한다. 팬츠 차림으로 능선 비탈을 내려오는 네댓 명의 산객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하나같이 건강해 보인다. 지나온 약수터 찬물에 머리라도 담그는지 등 뒤에서 연신 즐거운 비명이 들려온다. 정자에 어수선하게 널려있던 옷가지의 정체를 알 것 같다. 뒤이어 내려오는 산객은 주말 오전 6시에 맨몸으로 산을 오르는 모임이 있다고 귀띔한다. 여우동락(與友同樂)하며 덤으로 건강까지 챙기는 모습이 아름답다.

청계, 광교, 백운 등 유명세로 산객들 발길에 시달리는 인근의 산들과 달리 야트막한 운재산, 안산, 태봉산 등은 오로지 동네 사람들만의 뒷동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숲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사이좋게 어울렸고 산길은 폭신하고 평탄하다. 이름 모를 여러 버섯들은 제 철을 만나 제 소임을 다하려는 듯 우산처럼 갓을 활짝 펼쳤다.

운재산 기슭에 있는 이우학교 쪽을 알리는 표지판을 스쳐 지난다. '학문으로 벗을 모으고 벗과 함께 인덕을 돕고 더한다(以文會友 以友輔仁)'는 논어 「안연편(顔淵篇)」 구절에서 따왔다는 이름은 이 '대안'학교의 설립이념을 담고 있다. 몇몇 권력층의 자녀들이 입학해서 '그들만의 리그를 대물림하려 한다.'는 세간의 수군거림이 기우이길 바란다.

큰 바윗돌 몇 개와 이정표가 자리한 운재산 정상을 지나 태봉산으로 향한다. 누비길은 이리저리 갈래길을 내놓으며 갈래갈래 마음을 번잡하게 하는 높고 깊은 험한 산과 달리 걷는 내내 마음 푸근하다.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둘레길을 조성하게 만든 걷기 열풍처럼 순기능적 바람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밋밋한 능선의 대지산 정상을 지나면 태봉산 정상까지 1.5km다. 느슨한 경사의 내리막과 오르막을 거쳐 쇳골 삼거리를 지난다. 운재산과 진재산 능선 사이에 자리한 쇳골 마을은 쇠가 났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금곡리(金谷里)로도 불린다. 산길 옆 앉아 있는 아기 코끼리 모양의 바위 위에 누군가가 작은 돌로 성곽처럼 길게 탑을 쌓아 놓았다. 기발한 모양새와 쌓은 이의 정성이 묻어나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태봉산 정상은 해발 310.5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생각보다 제법 긴 능선을 가졌다. 정상 부근 태봉에 조선 인조의 태를 묻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태장산으로도 불린다. 흐린 날이라 그런지 땅바닥이 푸석하고 공기는 습하다. 수시로 육탄공세로 달려드는 날파리 떼의 무질서하고 어지러운 비행 편대를 헤치며 백현동 쪽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간다. 달려드는 성가신 날파리 떼처럼 인조는 혹독한 호란(胡亂)에 두 번이나 시달렸으니 어느 풍수가가 이곳을 태를 묻을 명당으로 보았는지 고개가 갸웃한다.

누비길 제5구간은 태봉산 정상에서 둔지봉, 응달산, 우담산 자락을 지나 하오재 고개로 내려서며 제6구간 청계산 자락으로 바통을 넘겨줄 것이다. 누비길 구간을 버리고 새능산을 거쳐 궁내동으로 내려설 요량이다.

산길 옆 드러누운 나무 둥치를 컬러풀한 밝은 초록의 이끼가 점령했다. 고도를 한껏 낮춘 능선은 새능산으로 평탄한 길을 내놓는다. 등산로 옆 나뭇가지에 '산여울'이라는 산객이 '오르고 싶은 10,000 산' 기치와 함께 '새능산 173m'라 적힌 리본을 달아 놓았다. '6,450'이란 숫자가 목표의 절반을 훌쩍 넘긴 것을 말해준다.

궁내동 북쪽을 둘러싼 새능산 기슭에는 중종의 다섯째 왕자 덕양군 이기, 그의 손자와 증손인 이수와 이형윤, 중종의 후궁 숙원 이 씨 등의 묘가 자리한다. 산 아래 이기의 사우(祠宇) 정희사가 있는 마을이 궁안 마을이라 불리는 이유다. 산 북쪽 기슭에는 골프장도 자리하고 있어 이 산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시공(時空)을 넘어 함께 거니는 공간이다.

낙생저수지와 낙생고교 등 태봉산 주변에 눈에 띄는 '낙생(樂生)'이란 이름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세조실록은 1460년 세조 6년 2월 5일, 병조에서 광주목 소속 낙생 역 등 23개 역을 경기좌도 찰방에서 관할케 하자고 사뢰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의 수도와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로 장터, 주막, 객사 등이 번창한 곳이었을 터이다.

내 고향 윗동네에 있었던 안곡역도 개령의 양천역과 상주의 청리역을 잇는 교통 결절지로 이용이 잦았다고 한다. 김종직, 주세붕, 이황 등 많은 이들이 그곳을 지나며 글을 남겼다고도 한다. 김종직(1431~1492)이 정강수에게 보낸 칠언율시는 개령 현감인 아버지 김숙자의 영으로 새벽녘 안곡역으로 절도사를 맞이하러 가는 모습과 심경을 생생히 담고 있다.

날라리 소리 속에 고삐 안장 정비하고
절도사 행차 맞이하려 하매 驛亭은 멀기만 하네
거친 마을 십리에 등불은 창을 뚫는데
이지러진 달 오경에 서리가 신발에 찼다
- 김종직, 「寄鄭剛叟」 中 -

명산의 절경을 찾아 멀리 가는 것도 일면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둘레길은 접근성이 좋아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고 시간과 경비도 아낄 수 있어 보배와도 같은 존재다. 드렁칡이 무성한 새능산 능선 끝자락 좁고 긴 골을 따라 궁내 마을로 내려간다. 긴 씨앗주머니를 수염처럼 길게 늘어뜨린 개오동나무 가지에 앉아 떼창을 하는 매미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빌딩이 숲을 이룬 고속도로 건너편과는 대조적으로 낮고 저마다 개성을 띤 빌라들이 모여있는 궁내 마을은 아늑하고 한적하다. 골목에서 스치는 사람들 얼굴에는 하나같이 이웃사촌처럼 푸근한 인정이 묻어 있다. 아담한 봉우리와 능선에 포근히 둘러싸인 쇳골과 궁안 마을은 옛 풍수가의 안목대로 내 눈에도 분명 명당의 입지로 보인다. 병법의 대가 손자도 지리(地理)가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소를 머금고 갖난 외손녀에게 눈길을 뗄 줄 모르는 젊은 할머니가 맞이하는 슈퍼에서 식혜 한 캔으로 갈증을 달랬다. 때마침 마을버스종점을 향해 정류소로 들어오는 마을버스 '누리 1'에 올랐다.

입추가 머지않았다. 주춤거리는 장마가 퇴각하고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되면 곡식들은 알알이 영근 가을을 기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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