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세일링의 꿈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환상이 아니었다.
은퇴 후 세계를 여행하는 가장 자유롭고도 본질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라는 오랜 질문 끝에 도달한 결론이었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내가 직접 삶을 설계하고 항해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나는 요트 세일링, 더 정확히는 솔로 세일링(solo sailing)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숙소와 식사, 교통과 일정이 모두 배 안에서 해결되는 자기 완결형 삶이다. 요트 안에는 침실, 키친, 욕실, 그리고 바다가 있다. 정박지에서 한적한 마을을 산책하고, 다시 닻을 올려 떠나는 삶. 호텔비도, 교통편도 필요 없는 그야말로 이동하는 집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큰 메리트가 있었다.
특히 나는 한여름의 북대서양을 지나 노바스코샤 해안을 따라 북극항로(Northwest Passage)를 항해하는 나 자신을 상상했다. 때로는 샌디에고를 떠나 태평양을 횡단하며 한 달 가까이 고요한 바다 위에서 혼자의 삶을 사는 순간들. 캬라비안의 섬들을 지나 대서양을 건너 지중해의 한적한 섬에 도착하는 장면. 지중해에서의 장기 세일링, 그 모든 여정은 나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다. 기상과 해류, 바람을 철저히 분석하고 허리케인을 피하는 시기를 선택한다면, 그 항해는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요즘의 요트는 자동 항법 시스템, GPS 항해 지도, AIS, 레이다 감지기 등이 기본 장착되어 있다. 솔로 세일링을 위한 필수 안전장치이자, 내가 혼자서도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기술적 동반자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었다.
진짜 핵심은 내가 이 모든 시스템을 이해하고, 필요시 직접 손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항해 도중 디젤 엔진이 멈춘다면? 전기 배선이 타버리거나, 정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면? 누구도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이 모든 기술적 문제를 선장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2년 반 동안 요트 시스템을 공부했다. 디젤과 가솔린 엔진, 전기와 배터리, 수처리와 솔라 시스템까지. 내 배는 내 손으로 지켜야 하는 ‘생존의 집’이었다.
요트 세일러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요트 선장은 항해하지 않는 날 대부분을 요트를 고치며 보낸다.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항해는 화려한 순간이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준비와 점검, 수리와 관리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솔로 세일링은 모든 결정, 모든 책임, 모든 고장이 나 혼자에게 돌아온다. 나는 그것조차 매력으로 느꼈다. 오롯이 내 힘으로 바다를 건넌다는 자립의 성취. 그리고 그 고독을 견디며 나만의 항해를 완성하는 진짜 자유.
솔로 세일링은 혼자여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혼자이기에 더 깊이 나를 만나게 된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혼자 만든 식사를 하고, 라디오로 기상 정보를 듣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조용히 항해하는 그 시간은, 세상의 어떤 번잡한 자유보다도 더 순수하고 강렬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 꿈을 가슴에 잠시 접어두고 있을 뿐이다.
그 꿈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나는 여전히 바다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세일링의 삶은 어쩌면 바다 위가 아닌, 육지에서도 가능하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고, 홀로 살아가는 삶. 그것은 요트가 아니라도 실현 가능한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