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나는 카타마란 요트를 구입해 세계를 세일링하는 항해자가 되기를 꿈꿨다.
그 꿈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바쳐 준비한 하나의 '프로젝트'였다.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빌려 읽고, 전문 서적을 구입해 가며 요트와 세일링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디젤 엔진, 전기 시스템, 수처리 필터, 솔라 패널, 전자 항해 장비 등… 바다 위에서의 독립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기술들을 하나씩 익혀갔다. 솔로 세일링의 꿈을 품고, 나는 점점 깊은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요트를 알면 알수록, 이 삶은 점점 더 멀게 느껴졌다.
요트 위의 생활은 낭만적이지만, 동시에 극도로 실용적이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 등록되지 않은 선박의 접근, 엔진 고장, 전력 부족, 정박지 확보 문제… 그 모든 상황에 홀로 대응해야 하는 솔로 세일링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대서양이나 태평양 횡단과 같은 장거리 항해는 최소 3주에서 4주 동안 24시간 내내 요트를 항해하고 관리해야 한다. 체력의 부담이 절대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이 꿈을 품을 수 있었던 시점보다 지금은 10년이 늦었다.
60대의 몸으로 매일 밤낮 없는 세일링을 감당하기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회의가 드는 일이다. 바다는 한순간도 똑같지 않고,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육지처럼 즉각적인 구조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바다의 자연 환경이나, 장비의 고장등에 대해 응급 처치에 대한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경제적인 현실도 가볍지 않았다.
새 요트를 구매하려면 약 백만 달러가 필요하다. 새 요트라면 고장이 적을 수는 있지만, 그 역시 보장할 수 없다. 그리고 요트는 감가상각이 심한 자산이다. 4-5년이 지나면 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세일링을 마친 뒤 다시 육지로 돌아왔을 때 남는 것은 반쯤 가치가 사라진 배 한 척일 뿐일지도 모른다. 체력적 부담, 경제적 리스크,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바다의 리듬은 내 결정을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나는 2년 반 동안 준비해온 솔로 요트 라이프를 조용히 접었다.
슬프거나 후회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가능한 삶’과 ‘가능하지 않은 삶’을 구분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나에게 맞는 여행 방식을 선명히 찾게 되었다. 바다 위가 아니라 육지에서, 요트 대신 비행기와 기차, 버스를 타고 떠나는 '슬로매드' 여정이 내게 더 잘 맞는 삶의 형태였다.
요트는 포기했지만, 꿈을 좇았던 그 시간은 남는다.
그리고 이제, 항구의 벤치에 앉아 멀리 수평선 위로 떠나는 요트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 충분한 낭만이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