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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직장인의 정년-정해진 나이는 없다

by 라온재


한국에서 직장인들에게 정년은 익숙한 단어입니다. 60세, 이르면 50대에 자연스럽게 회사를 떠나는 것이 당연한 문화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에는 정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합니다. 법적으로 퇴직해야 하는 나이도, 사회적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압박도 한국만큼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일을 그만두고 은퇴를 맞이할까요?


미국에는 법정 정년(Mandatory Retirement Age) 이 없습니다. 물론 과거에는 항공 조종사, 소방관, 경찰 등 일부 고위험 직종에서 법정 정년이 있었지만, 1986년 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 (ADEA) 개정 이후 대부분 폐지되었습니다. 나이를 이유로 퇴직을 강요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죠. 기업 입장에서도 경력직을 억지로 내보내기보다는 성과와 능력을 기준으로 고용 여부를 판단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70세, 75세까지도 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일하는 즐거움과 사회적 연결을 이유로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법적으로 정년이 없다 해도,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실제로 일을 그만두는 평균 나이는 존재합니다. 2023년 기준, 미국인의 평균 은퇴 연령은 64세입니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경제력, 직업, 건강 상태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금융 자산이 충분한 고소득층은 60세 이전에도 여유롭게 은퇴하지만, 생활비를 위해 70세까지 일하는 중하위 계층도 많습니다.


또한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 Benefits) 수령 시점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미국에서는 62세부터 조기 수령이 가능하지만, 정액 수령 연령(Full Retirement Age) 은 66-67세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은퇴 시기를 조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70세까지 연기하면 월 수령액이 최대 32%까지 늘어나기에, 이 시점을 목표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은퇴의 성격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자발적 은퇴입니다. 경제적 준비가 되었거나, 더 이상 일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 스스로 결단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은퇴 후 여행, 자원봉사, 창업, 취미 활동 등 제2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설계합니다. 다른 하나는 불가피한 은퇴입니다. 건강 악화, 고용 불안, 기술 변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 등이 이유입니다. 특히 제조업, 육체노동,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원치 않는 시점에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적으로 정년이 없다 해도, 기업들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은퇴를 유도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기 은퇴 인센티브(Early Retirement Package) 입니다. 일정 금액의 퇴직금을 제공하거나, 의료보험 혜택을 유지해주는 조건으로 자발적 퇴사를 권유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파트타임 전환, 자문역(Position of Counsel) 형태의 유연한 고용을 제안해 은퇴를 점진적으로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은 개인에게도 부담을 덜어주고, 기업 입장에서도 경력직의 노하우를 유지할 수 있는 윈-윈 전략으로 활용됩니다.


결국 미국의 정년은 제도적 강제가 아닌 개인의 선택에 가깝습니다. 경제적 준비, 건강 상태, 일에 대한 열정 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은퇴 시점이 결정됩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의 은퇴 문화는 각자도생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은퇴를 인생의 또 다른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해진 틀 없이, 스스로 은퇴 시점을 고르고, 은퇴 후 삶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미국식 은퇴 문화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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